고구려역사저널

일본 왕가는 백제와 어떤 관계였을까? (3부)

성헌식 컬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6/05/04 [10:19]

일본 왕가는 백제와 어떤 관계였을까? (3부)

성헌식 컬럼니스트 | 입력 : 2026/05/0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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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가 국난의 위기에 처하자 왜가 대규모 지원군을 보내고, 안타깝게도 백강전투에서 대패하자 백제의 왕자가 왜군을 거느리고 당나라 군대에 투항했다는 기록도 있고, 백제의 주유성이 당나라에 항복하자 “백제의 이름은 오늘로 끊어졌다. 조상의 분묘가 있는 곳을 어찌 또 갈 수가 있겠는가?”라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남아있다. 그렇다면 당시 왜왕이 왜 그랬는지 그 정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부터 백제와 왜왕과의 관계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기로 하겠다. 

백제가 망할 당시 왜왕이었던 제명여왕의 남편은 서명(舒明)왕이었다. 서명은 민달왕의 손자이고, 민달왕은 계체왕의 손자이다. 직계계보를 정리해 보면, 26대 계체(繼體)왕 --> 29대 흠명(欽明)왕 --> 30대 민달(敏達)왕 --> (彦人大兄王子) --> 34대 서명(舒明)왕 --> 38대 천지(天智)왕으로 혈통이 이어지고 있다. 왜의 지원군을 백제에 파병한 천지왕은 계체왕의 5세손이며, 민달왕의 증손자이며, 서명왕의 아들이다.

 

일본 고대왕실의 족보인 <신찬성씨록>의 황족항목에 따르면, “대원진인은 민달왕의 손자이며 백제왕이다(大原眞人出自諡敏達孫 百濟王也).”라는 기록이 있다. 대원진인이 백제왕이면 민달왕도 당연히 백제왕족이다. 따라서 민달왕의 조부 계체왕과 손자 서명왕도 백제왕족인 것이다. 천지왕은 서명왕의 아들이므로 그도 역시 백제왕족이다.

 

▲ 계체왕과 흠명왕의 출자 계보도    

1) 26대 계체왕 (繼體, 507~531)

왜 왕가를 백제왕족으로 새로 연 인물이다. 일본의 국보 2호인 인물화상경에 새겨진 남제왕(男弟王)의 주인공이다. <일본서기>에는 82세로 죽었다고 기록되어있어 백제 무녕왕의 동생인지 여부는 확실치 않으나, 일본학자들도 남제왕이 곧 계체왕이라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형제관계로 동생나라의 왕인 것임은 틀림없다 하겠다.

 

2) 29대 흠명왕 (欽明 539-572)

백제 26대 성왕은 직접 백제와 왜국을 넘나들었으며, 554년 이후에는 왕자인 위덕왕에게 왕위를 계승시키고는 완전히 백제를 떠나 왜국으로 건너가 왜왕인 킨메이왕(欽明, 흠명왕)으로 군림했다는 주장이 있다. (홍윤기 교수 ‘일본 고대사 문제점의 새로운 규명’ [일본학] 24집, 동국대 일본학연구소 발행 논문집, 2005.12.)

 

그러나 <삼국사기>와 <일본서기> 공히 백제 26대 성왕은 신라와 전쟁을 하다가 554년에 매복에 걸려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일본서기>에는 백제 성왕이 신라 장수 고도에게 목이 베어져 신라왕궁의 북청 밑에 묻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밟히는 수모까지 당했다는 기록도 있다.

 

여하튼 <부상략기(扶桑略記)>와 일본 법륭사에 있는 <성예초(聖譽抄)>의 기록에 의하면, 백제 위덕왕(威德王, 525~598)은 부왕 성왕(聖王, 재위 523~554)을 추모하기 위해 구세관음상을 만들어 일본에 보냈으며, 이후 성왕이 환생해 성덕(聖德) 태자가 되었다고 한다.

  

3) 30대 민달왕 (敏達 572-585)

즉위하자마자 백제의 대정(大井)에 궁을 지었다. 홍윤기 교수에 따르면, 일본의 우에다 박사는 2007년 5월 14일 자택에서 815년 일본왕실에서 편찬한 <신찬성씨록>을 직접 꺼내 보여주며 “일본 제30대 민달왕의 생부는 백제 제26대 성왕이며, 민달왕은 백제 제27대 위덕왕의 친동생이다. 백제 제24대 동성왕과 제25대 무녕왕은 두 분 모두 일본에서 모국 백제로 귀국해 백제왕이 되었다고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다.”는 증언을 했다고 한다.

 

4) 33대 추고여왕 (推古 592-628)

흠명왕의 딸인 동시에 오빠인 민달왕의 왕후가 되고 나중에 추고여왕으로 등극한다. 스이코 여왕은 찬란한 백제의 불교문화인 일본의 '아스카 문화'를 일으킨다. 13세기에 편찬된 <부상략기>에 따르면, “여왕 원년 1월, 한창 건축 중이던 아스카데라 찰주를 세우는 법요 때 만조백관이 모두 백제 옷을 입었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기뻐했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있다.

 

5) 34대 서명왕 (舒明 629∼641)

민달왕의 손자로 의자왕의 누이인 부여보(훗날 제명여왕)를 왕후로 맞아들인다. 11년 7월 “금년에 대궁(百濟宮) 및 대사(百濟大寺)를 만들겠다.”고 말했고, 백제천(百濟川) 곁을 궁처로 했다. 13년 10월 백제궁에서 승하하고, 궁 북쪽에 빈궁을 설치하였다. 이를 백제의 대빈(大殯)이라 한다고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다.

 

일본의 저명한 사학자인 사에키 아리키요(佐伯有淸) 교수는 "조메이천황은 '구다라천황(百濟天皇)'이라고 불리었을 것이다." 라면서 「신찬성씨록 연구」를 1970년에 발표했다. 여하튼 위에서 보다시피 왜 왕실의 혈통이 계체왕 때부터 백제 왕족으로 확실히 바뀐 것으로 보아야 하며, 왜 왕가는 백제 왕실과 밀접한 혈통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왜왕가는 백제와 어떤 관계인가?

 

그런데 우리는 일본왕가의 혈통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2001년 일본의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옛 칸무(桓武: 781~806)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라고 공식 발언한 것이다.

 

이 발언은 만세일계(萬世一係)라고 믿고 있는 일본 왕가의 혈통에 대해 일왕 자신의 입으로 고대에 백제왕족의 피가 왜왕가와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확인시켜준 것이었다. 즉 무령왕의 아들인 순타태자의 직계후손 중 화을계는 일본조정에서 기록을 담당하는 중신이었고, 화을계의 딸이 고야신립으로 칸무왕의 생모라는 것이다.  

▲ 2001년 왕가의 혈통을 밝힌 아끼히도 일왕.  ©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끼히도 일왕의 발언대로 칸무왕의 생모가 백제 무녕왕의 자손이라는 것하고, 백제부흥운동을 도운 제명/천지왕하고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그 정도의 혈연관계 때문에 제명/천지왕이 군수물자도 저렇게 많이 보내고 대병을 보내 무조건 백제를 구원하려 했을까? 독자들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왕이 한 말 이외에도 백제왕실의 피가 일본 왕가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규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백제부흥운동을 도운 제명여왕과 그녀의 아들 천지(天智)왕인 것이다. 지금부터 제명여왕과 천지왕의 혈통을 찾아 가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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