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역사저널

기준왕이 달아난 海는 기자의 봉지 조선현 (9부)

성헌식 컬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6/06/09 [14:52]

기준왕이 달아난 海는 기자의 봉지 조선현 (9부)

성헌식 컬럼니스트 | 입력 : 2026/06/0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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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에게 패한 기준(箕準) 왕의 행적은 삼국지후한서의 동이열전에 궁인 수천 명을 거느리고 走入海하여 마한을 공격해 깨고 한의 땅에 살며 스스로 한왕이라 칭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북부여기에는 번조선 왕 기준이 떠돌이 도적떼인 위만에게 패망한 뒤 入于海하고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식민사학과 재야사학계에서는 이 走入海 또는 入于海바다를 경유하여로 해석해 기자조선의 마지막 준왕이 도읍지 평양에서 배를 타고 황해를 경유해 한반도 남부에 있던 한의 땅인 익산으로 달아났고, 그 땅은 나중에 삼한으로 갈라져 마한은 백제로 진한은 신라로 변한은 가야로 변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사학계는 사서에서 자만 보이면 무조건 모두 바다로 해석하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패수(하남성 제원시) 부근에 있던 기준이 위만에게 패해 한지인 상당군(산서성 장자현) 지역으로 갔으니 바다를 경유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해는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먼저 는 바다라는 해석이 가장 우선하며, 또한 발해(渤海)와 청해(靑海) 같이 큰 호수나 대평원을 라고도 했다. 여하튼 바다처럼 넓은 것을 라고 표현했는데, 인산인해(人山人海)와 운해(雲海) 등이 그것이다아울러 百川会聚之處(많은 하천이 만나 모이는 곳)’라는 뜻이 있는데, 바로 황하 같이 대륙을 가로지르는 큰 강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의 사서기록에 등장하는 의 뜻이 바다인 경우는 거의 없으며, 90% 이상이 바로 황하를 가르킨다. 나머지는 거의 중국의 동해였던 발해였다.

 

위에서 언급된 기준 왕이 走入海는 바다(황해)도 큰 호수(발해)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가 만일 진짜 바다였다면 갈 와 들어갈 자를 같이 쓸 수가 없다. 바다로 들어가 도망가면 익사(溺死) 밖에 더 하겠는가! 그렇다면 그 는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 패수 부근에 있던 기준이 한지인 상당군 지역으로 간 지도  © 고구려역사저널

 

필자의 견해로는 기준 왕이 달아난 한지가 당시 로 불리지 않았나 추정된다.

중국고대지명대사전의 설명에 의하면, 예의 북쪽에 접해있는 옥저 땅이 요나라 때부터 해성(海城) 또는 해주(海州)로 불렸다는 연혁이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곳이 예전에 라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해주) 본 옥저국의 땅으로 고구리 때 사비성 혹은 비사성이라 했고, 발해 때 남경남해부라 불렀고, 요나라 때 해주남해군을 설치했다. 금나라 때 등주로 이름을 바꿨다가, 원나라 때 주와 현이 모두 폐지되었고, 명나라 때 해주위가 설치되었다.

(海州) 本沃沮国地高丽为沙卑城亦曰卑沙城或讹为卑奢城渤海号南京产南海府都督沃晴椒三州辽置海州南海军又置临溟县为州治金改澄州元州县皆废明置海州卫于此即今辽宁省海城县治

 

(해성) 주나라와 진나라 때 조선에 속했고, 한나라 때는 현토에 속했다가 후에 낙랑으로 바꿔 속했다. 동한 때 도위를 설치해 옥저에 봉했다. (이하 해주의 연혁과 유사)

(海城) 周秦属朝鲜汉属玄菟后改属乐浪东汉置都尉以封沃沮魏属牟州晋及隋属高名骊唐平高玉,。属盖州入渤海为南海府辽置海州南海军金改澄州元属辽阳路明置少州卫隶辽东都指挥使司清顺治间置海城县属辽阳府寻改属奉天府民国因之属辽宁省辽沈道 

 

삼국지동이열전에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는데, 큰 바닷가에 접해 산다(濱大海而居). 북쪽은 읍루·부여와, 남쪽은 예맥(濊貊)과 접해있다.”는 기록과 예는 남쪽으로 진한과, 북쪽으로는 고구리·옥저와 접했고, 동쪽으로는 大海에 닿았으니, 오늘날 조선의 동쪽이 모두 그 지역이다.”는 기록으로부터 옥저 땅 즉 해주가 어디였는지를 추적할 수가 있다. 

▲ 조선 현령에 봉해진 기자를 조선의 왕으로 해석한 조선왕조  © 고구려역사저널

 

삼국지와 후한서를 요약하면 옥저는 고구리의 동쪽에, 예의 북쪽에 있으며, 황하변에 있고 낙랑군에 속했다고 한다. 역시 같은 낙랑군에 속하는 패수가 하남성 제원시를 흐르는 강이므로 옥저도 부근에서 찾아야 하는데,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는 다른 자료는 없는지 다음 연재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사안은 해성(海城)이 주()나라 때 조선(朝鮮)현에 속했다는 사실이다. 조선은 주 무왕이 기자를 봉한 곳이다그리고 기자의 묘도 상당(=장자현)에서 아주 가까운 로성(潞城)현에 있지 않은가? 게다가 기자가 은거했다는 기자산(箕子山)도 아주 가까운 능천(陵川)현에 있지 않은가! 이렇듯 기자 관련 지명들이 대부분 그 지역에 몰려 있었던 것이다. 이제사 중국이 그토록 기자에 대한 지명을 숨기려 했던 이유가 밝혀지게 되었다.

  

다음 연재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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