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역사저널

새 고려사는 더러운 역사(穢史)인가? (2/2부)

단군 기록이 유일하게 고려사에 남아 있는 부분 (2/2부

한눌 한문수 | 기사입력 2026/08/01 [12:07]

새 고려사는 더러운 역사(穢史)인가? (2/2부)

단군 기록이 유일하게 고려사에 남아 있는 부분 (2/2부

한눌 한문수 | 입력 : 2026/08/0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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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기록이 유일하게 고려사에 남아 있는 부분을 보기로 하자.

 

백문보(白文寶, 1303~1374)가 공민왕에게 올린 상소 내용에, “우리 동방은 단군으로부터 지금까지 이미 3,600년이 경과하여 주원(周元)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吾東方 自檀君至今 已三千六百年 乃爲周元之會, 고려사 열전 권 제25)라 했다. 삼국사기와 고려사를 통틀어 유일하게 단군에 대해 언급했고 단기를 계산하였다.

 

조선은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내세워 불교 교세의 인적 기반을 제약하여 불교를 억압하고 국가통치에 예속시키려는 목적으로 이용하였다. 불교를 배척할 것을 주장한 척불소(斥佛疏)는 조선 개국의 정당성 논리에 가장 적합했고, 백문보의 단군 기록을 넣어 합리화시켰음이다

 

1432년 세종은 유교와 반하는 불서는 불태웠다. (세종실록 55) “마리산 산꼭대기에 참성단(塹星壇)이 있다.” “왕이 묘지사로 거처를 옮기고 마리산 참성에 초제를 지내다” (고려사 권56, 고려사 권26)라는 일부 기록으로 고려도 단군을 국조로 모셨다는 일부의 평가가 안타깝다.

 

세종은 고려사 편찬자들에게 고려 역사를 왜곡하지 말라고 지시하는 반면 고려왕조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위선을 자행했다. 세종은 도화원(圖畵院)에 보관하던 고려 역대 군주들과 후비들의 초상화를 모두 불태우고 전국 각지의 어진들과 개국공신들의 영정을 땅에 묻도록 명한다. (세종실록 321426년 세종 8519), (60권 세종 151433615).

 

▲ 김부식의 이름으로 개작된 삼국사    

 

모화사관(慕華史觀)으로 기록되었다고 지탄 받는 삼국사기는 하윤(河崙)ㆍ이첨(李詹)ㆍ권근(權近) 등이 삼국사기에 수정을 가하여 속된 것과 번잡스러운 것을 삭제했다."고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54) 앙엽기(盎葉記)에 삼국사략(三國史略)을 설명하면서 기록한 부분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정하지 못해 더럽고 거짓말 투성이며, 뒤숭숭하고 복잡하다는 의미일 게다. 김부식을 매개로 하여 의도적으로 재 편찬, 위조하면서 단군 기록마져 삭제했다는 의미이다. 조선은 결코 고려를 승계(承繼)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관찬사서를 수정, 삭제하여 망신주고 때리고 부수었다. 김부식의 일부 유교사관(儒敎史觀)을 볼모삼아 사대(事大)에 편승한 사서로 변조(變造), 김부식에게 덤터기를 씌웠다는 뜻이 담겨있다. 삼국사기를 손질한 해가 1403(태종 3)이니, 고려사 편찬과정과 맞물려 있다. 김부식이 편찬했으되, 이름만 빌려 왔을 뿐 그의 작품이 아니게 되었다. 삼국사기나 고려사는 의도적으로 전면 개편, 개찬되어 날조되었다. 이 역사서를 어디까지 수긍해야 할까?.

 

사관은 삼장(三長) 즉 재()와 학(), ()을 겸비해야 한다는 말이 신당서 유자현전에 보인다. ‘는 문장력, ‘은 학문, ‘은 통찰력, 즉 사관(史觀)을 가리킨다고 했다. 고려사 편찬과정에서 이 세 가지 덕목에 단 하나라도 겸비된 부분이 있을까?.

 

 

동사강목에 기록된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 1712~1791) 한마디를 빌어 보자. 

정 하동(鄭河東 정인지(鄭麟趾)고려사(高麗史)동국통감(東國通鑑)은 의례(義例)가 많이 틀리고 호오(好惡)가 공평하지 않아 후인들이 또한 예사(穢史)라고 칭한다. 그러나 명색이 전사(全史)이고 다른 책은 상고할 만한 것이 없으므로 세상에서는 많이들 믿는다.” (순암집 제18) 라 했다.

 

예사(穢史)에 대해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는 앞서 계곡만필(谿谷漫筆)진수(陳壽)나 위수(魏收)가 역사를 팔아먹은 것을 예로 들었다. 이는 () 나라 진수가 지은 삼국지(三國志)는 사()로 공()을 폐하고 부당하게 포폄(褒貶)하는 등 사가(史家)의 직필(直筆)이 못 된다는 평을 받고, 북제(北齊)의 위수(魏收)가 지은 위서(魏書)는 자신의 원한을 사서(史書)에 마구 개입시켜 더러운 역사책[穢史]’이라는 극단적인 비평을 받고 있다.‘고 풀이했다

 

다산 정약용은 그의 시문집 제8권 지리책(地理策)에서 정인지의 고려사지리지는 잘못된 데를 이루 다 셀 수 없다고 비판했다. ()더러운 것을 뜻하는 말이다. 소중화사상(小中華思想)에 매몰된 조선 유학자들 마져 정확도나 공정성이 전체적으로 낮고 거칠고 왜곡이 많다는 평에 거침이 없다. 고려사와 그 지리지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하지만 이를 역인용하여 진실인양 호도하고 현실에 영합하려는 내용들이 참으로 두렵다.

 

이는 고려사가 근래 국가지정 보물이 된다하여 이를 세종의 숨은 통찰과 고뇌가 담긴 것이란 일부의 평가가 안타까운 것은 왜일까?. 시대적 배경에 편승해 세종을 성군화하려는 일말의 부화뇌동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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