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역사저널

성황당(城隍堂)과 서낭당(西娘堂) 고찰 (1/2부)

한눌 한문수 | 기사입력 2026/08/19 [21:32]

성황당(城隍堂)과 서낭당(西娘堂) 고찰 (1/2부)

한눌 한문수 | 입력 : 2026/08/19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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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당(城隍堂)과 서낭당(西娘堂) 어느 표현이 맞는가?
아니면 성황당도 맞고, 서낭당도 맞는가?.

성황(城隍)의 첫 기록은 부도지 14장에서 시작된다.
그 뒤에 천년 사이에 성황이 전역에 널리 퍼지더라(爾來千年之間 城隍 遍滿於全域)”

성황과 서낭(西娘)의 차이를 역사적 관점에서 풀어 보면,

성황의 표기는 모화사상(慕華思想)에 기인된 것으로 서낭(西娘)의 오기로 보인다.

 


서낭의 낭()은 아가씨의 뜻 외에 어머니의 뜻도 갖고 있다.
어머니 쪽을 중심으로 혈통이나 상속이 이루어지는 사회,
즉 모계 사회(母系社會)로 서녘에서 오신 어머니 즉 마고이시며
삼신할미로 계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부도지 1장에서 마고(麻姑)는 희노의 감정이 없으므로
선천(先天)을 남자로 하고 후천(後天)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 없이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낳고

궁희는 황궁(黃穹)과 청궁(靑穹)소희(巢姬)는 백소(白巢)와 흑소(黑巢)

마고의 정을 받아서 배우자 없이 각기 두 천인과 천녀를 낳았다.” 하여

인류 최초 모계사회의 태동을 알리고 있다.

그 곳이 마고성(麻姑城)이며, 동이족이 웅거하던 대륙의 서녘지역이니
그 곳에서 오신 어머니인 삼신할머니가 아닌가.
생명을 잉태(孕胎)하는 모체(母體)가 여자였으며,
여자를 생명의 뿌리로 보았던 것이다.

참고로 의 글꼴 변천과정을 살펴보자. 

▲ 금문의 城자     ©

 

금문의 자는 성을 지키는 무기()와 성의 망루를 뜻(금문1)했는데  망루를 그리기 번거러워(금문2) ()으로 대치된 글자이다금문은 상주시대(商周時代) 청동기에 주조(鑄造)되어 있거나

새겨진 글자로 종정문(鐘鼎文)이라고도 부른다.

 

 

 

 

자의 소전을 보면 성 밖을 둘러 싼 못(垓子), 城池라고 설문은 풀이했다.
토성을 쌓기위해 파인 구덩이에 물을 채워 적의 접근을 차단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
해자이며 은 독음, ()로 뜻을 나타낸 것으로 진나라 때 만들어진 글자이다.

 

성황은 마을 뒷산에 쌓아 적군을 방비하던 축성(築城)의 뜻이며,
서낭은 마을 어귀에 지어져 마을의 안녕과 만민의 안녕을 기원하던 기도의 터이다.

의 고대어는 이다.
''은 순수 고유어지만 그 어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잣의 물체가 있거나 그것을 둘 수 있는 공간을 뜻하는 말이니,
공간적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풀이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757년 신라 경덕왕 때 지명을 개칭하면서 이전 사용하던
, ''의 뜻이 들어간 행정지명을 중국식으로 거의 모두 '()'자로 바꾸었다.
''의 원말은 ''의 뜻으로 지형을 나타낼 때는 '산꼭대기''등성마루'의 뜻으로
뒤에 표준말로 정착되고, , 재로 변하여 한재, 갈재, 새재 처럼 산이나,
'고개'의 뜻으로 변하였다.

예를 들면, 1428(세종 10) 우의정으로 물러난 유관(柳寬 1346-1433)이 삼성사(三聖祠)에 관한 상서(上書)내용에단군 조선 때는 아사달산(阿斯達山)이며, 신라 때에 궐산(闕山)이라고 고쳐 불렀다하여 그 유래를 밝혔다. 단군시대 도성이었던 아사달말미 은 원말인 에서 으로 변화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 쓰인 옛 지명에 잣안ㆍ잣미ㆍ잣골ㆍ잣실등이 있음을 볼 수 있고

성안(城內)을 뜻하는 잣안장안으로 쓰고 있다.
흔히 ()’과 연관 짓기도 하나, 실제로는 단순히
()’의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많음을 유념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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