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역사저널

(7부) 개로왕이 쌓은 제방으로 본 백제 강역

崇山에서 사성(蛇城)까지의 河水변이 어디인가?

성헌식 컬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6/08/25 [10:11]

(7부) 개로왕이 쌓은 제방으로 본 백제 강역

崇山에서 사성(蛇城)까지의 河水변이 어디인가?

성헌식 컬럼니스트 | 입력 : 2026/08/25 [10:11]
  • 카카오톡
  • 네이버
  • 인쇄

 (6부) https://www.greatcorea.kr/366

 
 개로왕 때 나라의 재정이 파탄 날 정도로 큰 토목공사는 하수(河水)를 따라 벽돌로 쌓은 제방공사로 숭산(崇山)의 북쪽에서 사성(蛇城)의 동쪽에 이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반도사관에 심취된 식민사학계는 이 하수를 한강, 숭산을 하남시 검단산, 사성을 풍납토성으로 비정하고 있다. 이는 당시 백제 도읍 한성이 하남시라는 전제를 깔고 거기에 억지로 껴맞춘 엉터리 비정이다. 
참으로 이상한 점은 검단산 북쪽이면 팔당대교 부근이고 풍납토성은 올림픽대교 부근에 있는데, 그 거리가 겨우 14km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정도 규모의 제방공사를 했다고 나라의 창고가 텅 비고 백성들이 궁핍해져 백제가 휘청거렸다는 것은 그야말로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주변에 산이 많아 돌이 흔하고, 풍납토성은 흙을 쌓아 만든 토성이지 벽돌로 쌓은 성벽이 아니지 않은가!

 

하수(河水)는 황하(黃河)를 의미하기 때문에 개로왕이 쌓은 제방은 당연히 대륙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대륙에 있는 강들의 물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수경주>는 40권 30여 만자로 씌여진 방대한 분량의 책인데, 그 중 1권~5권이 하수(河水)의 본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그 하수가 바로 황하인 것이다. 참고로 <수경주>에는 한강에 대한 설명이 단 한 줄도 없다. 

 

 황하변에 있는 사성은 어디인가?  

 

그렇다면 황하변에 있어야 하는 사성(蛇城)은 과연 어디일까? 사성을 <중국고대지명대사전>으로 검색하면 나오지 않는다. 이럴 경우에는 그 지명이 가지고 있는 강이나 산 이름으로 찾는 것이 지명을 찾는 요령이다. 사성이면 사수(蛇水)나 사산(蛇山)이 있는 곳일 가능성이 높다.

 

사수를 검색하니 “사수는 현재 이름으로 비하(肥河)라는 강으로 사산 아래에 있다.”는 설명이다.

(원문) 蛇水 : 今名肥河,见肥河条。唐苏定言征高丽,园平壤,庞孝泰以岭南兵壁蛇水,见《唐忆高丽传》。山海经海内经有蛇水,在蛇山下

 

비하를 다시 <중국고대지명대사전>으로 검색하니 “산동성 비성(肥城)현 남쪽에 있는 강으로 고대 사수로 서류해 휘하가 되어 문수로 들어간다. <수경주>에 사수는 사구현 동북 대산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문양의 밭을 경유하고, 서남쪽으로 하휘성 남쪽을 경유하고, 역시 서남쪽에서 문수로 들어간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산동성 비성현은 태산의 서쪽과 아주 가까워 그 동쪽이라 함은 바로 태산 서쪽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말과도 같은 것이다. 

(원문) 肥河 : 在山东肥城县南,盖即古蛇水也,西流为汇河注于汶,《水经注》蛇水出蛇丘县东北大山,西南流迳汶阳之田,又西南迳夏晖城南,又西南注于汶。 

 

▲ 풍납토성(사성)에서 검단산(숭산)까지는 겨우 14km     ©고구려역사저널

 

▲ 풍납토성 발굴현장. 횡으로 절단해도 벽돌은 보이지 않았다>     ©

 

황하변에 있어야 하는 숭산은 어디일까?

 

현재 대륙에는 관광지로 유명한 호남성 장가계에 있는 숭산(崇山) 이외에 산동성 등에도 몇 군데 있으나, 이들 모두 황하변에 있지 않기 때문에 논외대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황하변에 있어야 하는 숭산은 과연 어디일까? 현재 가장 유명한 숭산은 무술로 유명한 소림사가 위치하고 있는 하남성 등봉시(낙양 동남쪽)에 있는 숭산인데, 그 북쪽에 황하가 있다.

 

▲ 대륙에 있는 5악의 하나인 하남성 등봉시 소림사에 있는 숭산


하남성 등봉시 숭산(嵩山)은 한자가 약간 다르나 같은 崇山으로 보아도 된다. 왜냐하면 연혁에 “옛날엔 외방, 하·상 때 숭고 崇山으로 칭하고, 서주 때는 천보산, 기원전 770년 평왕이 낙양으로 천도한 후로는 ‘숭을 중앙, 대를 좌, 화를 우로 하는 하늘과 땅의 중간으로 하여 중악숭산이라 칭했다.”라는 설명이 있기 때문이다.

(원문) 古称“外方”,夏商时称“嵩高”、“崇山”,西周时称天室山。公元前770年平王迁都洛阳后,以“嵩为中央、左岱、右华”,为“天地之中”,称中岳嵩山.

 

이 외 황하변에 또 하나의 숭산이 있는데, 이에 대해 중국백과사전에서는 “장수절 정의를 인용해 장읍이 말하기를 ‘숭산은 적산이다’와 북위 때 역도원이 쓴 <수경주 호자하>에 ‘산해경에서 말하기를 요를 적산의 북쪽에 장사지냈다. 일명 숭산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어, 숭산은 요임금의 무덤이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원문) 张守节正义引张揖曰:“崇山, 狄山也.” 北魏郦道元《水经注·瓠子河》 “《山海经》曰 尧葬狄山之阳。一名 崇山.”

 

요왕묘(堯王墓) 또는 요릉(堯陵)으로 불리는 요임금의 진짜 무덤이 있는 곳은 산동성 하택시 견성현 성 남쪽 7리에 있는 부춘향 조천장촌 남쪽 곡림사(位于山东省菏泽市鄄城县城南7公里处 富春乡赵千庄村南谷林寺)이다. 그런데 이곳은 평야지대라 아마도 이곳 숭산은 작은 야산일 것이다. 현재 중국정부는 산서성 임분시에 또 하나의 요임금 무덤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는 역사왜곡을 위해 조성한 가짜 무덤이거나 우리 단군왕검의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 산동성 하택시견성현에 있는 진짜 요임금 묘


산동성 하택시 견성현 숭산이나 하남성 등봉시 숭산이나 둘 다 그 북쪽에 황하가 위치하고 있으므로 <삼국사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산들이다. 그렇다면 사성(비성현)에서 이 두 숭산까지의 거리는 과연 얼마나 될까? 사성에서 산동성 하택시 숭산까지는 약 150km이고, 사성에서 하남성 등봉시 소림사 숭산까지는 약 380km이다.

 

둘 중 어느 숭산이 개로왕이 제방을 쌓은 숭산인지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필자는 야산이라 그런지 기록에 잘 나오지 않는 견성현 숭산이라기 보다는 등봉시에 있는 유명한 중악숭산일 가능성이 훨씬 더 클 것으로 본다. 또한 사성에서 숭산까지 380km의 제방을 만들다보니 백제의 국력이 극도로 피폐해졌다는 것이 기록상으로 일리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로왕은 하남성 정주를 지나면서부터 물줄기를 어디로 바꿀지 모르는 황하가 자주 범람해 백성들의 집과 농토를 망가뜨리므로 황하변에 엄청난 길이의 벽돌제방을 만들었던 것이다. 개로왕이 이런 대규모 토목공사를 추진했기 때문에 국력이 소진되어 고구려 장수왕의 침입을 막지 못해 나라가 멸망 일보직전까지 몰렸던 것으로 보인다. 

 

▲ 개로왕이 황하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숭산~사수(비성) 벽돌 제방


제방의 서단인 숭산의 북쪽에서 동단인 사성(비성)의 동쪽까지 지도에 선을 긋고 보니 높은 산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평야지대이다. 그래서 백제에서는 돌을 구하기 힘들다보니 흙을 구워 벽돌을 만들어 제방과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남은 것이다. 따라서 당시 개로왕 때 백제의 강역은 북으로는 하남성과 산동성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의 초기 도읍인 하남 위례성과 한성은 지금의 한강 이남에 있는 강동구와 하남시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대륙에 있는 황하 남쪽 하남성 아니면 산동성 서부 어딘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확정지을 수는 없으나 위례성은 산서성 남부 문희(聞喜), 한성은 황하 남쪽 하남성 정주(鄭州) 또는 개봉(開封), 웅진과 사비는 공자묘가 있다는 산동성 곡부(曲阜) 일대가 유력해 보인다. 

 (백제 초기도읍지는 https://www.greatcorea.kr/184 참조) 

  • 카카오톡
  • 네이버
  • 인쇄
  • 도배방지 이미지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