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나오는 태원선우씨(太原鮮于氏)의 고향 태원은 중국 산서성 태원시이다. 중산국 북평현과 평주 북평군 조선현(1)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나오는 태원선우씨(太原鮮于氏)의 고향 태원은 중국 산서성 태원시이다. 중산국 북평현과 평주 북평군 조선현(1)
책으로 편찬하기까지는 아직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하여 새로 연재를 시작한다. [한서 권28 지리지] 중산국에 북평현이 나온다. 그리고 [(북)위서 지형지] 평주에는 요서군과 북평군 2개 군이 있고 북평군에는 2개 현이 있다. 그 중 1번 현이 놀랍게도 조선현이다. 중산국은 이전에는 선우국이라는 기록이 있다. 선우국의 선우는 ‘태원 선우씨’의 선우이다. 한국에 선우씨가 많이 있다.
[한서지리지 중산국] 中山國,縣十四:盧奴,北平,徐水東至高陽入博。又有盧水,亦至高陽入河。有鐵官。莽曰善和。(중략) 新市,〔七〕 후략. 〔七〕 應劭曰:「鮮虞子 國,今 鮮虞亭 是。」
다음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성友誠’에 대한 설명이다. 1995년 문경현 (경북대학교, 한국사) 교수가 2023년 02월 07일에 최종 수정한 것으로 되어 있다. ‘우성友誠’이라는 인물은 초기국가시대 덕양 기씨의 시조이다. “기자(箕子)의 후손인 준왕(準王)이 위만(衛滿)에게 쫓겨 마한으로 가서 한왕(韓王)이 되었다. 그 후손인 마한 원왕(元王)에게 3형제가 있었는데 나라가 망하매 아들 우평(友平)은 고구려로 가서 유리왕을 섬겨 벼슬하여 북원(北原) 선우씨(鮮于氏)의 시조가 되고, 우성은 백제에 항복하여 온조왕을 섬겨 덕양기씨의 시조가 되었고, 우량(友諒)은 신라로 가서 탈해왕조에 벼슬하여 상당한씨(上黨韓氏)의 시조가 되었다 한다.”
기자의 후손인 준왕이 위만에게 조선을 빼앗기고 ‘해海’ 지역에 있는 ‘한韓’ 지방에 들어가서 마한의 왕이 되었다는 기록이 중국 역사책 [삼국지 위서 권30 동이열전 한편]에 나온다. 侯準 既僭 號稱王,為 燕亡人衛滿 所攻奪,〔一〕 將其左右宮人 走入海,居韓地,自號韓王。〔二〕 其後絕滅,今韓人猶有奉其祭祀者。漢時屬樂浪郡,四時朝謁。〔三〕
‘국사편찬위원회’는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하였다. [삼국지] 원문에서 준왕이 세력들을 거느리고 들어간 ‘해海’ 지역을(走入海,居韓地) 중국과 한국 간의 황해 바다를 건너서 도착할 수 있는 한반도로 해석한 것이다. 사실은 ‘국사편찬위원회’는 “走入海,居韓地”를 적절히 해석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진짜 바다(sea)속으로 들어가서(走入海) 살 수는 없다. 더구나 바다(sea)속에 ‘한韓’이라는 땅이 있을 수가 없고 황해 바다에 그렇게 큰 섬도 없다.(居韓地) 황해 바다를 건너 강화도에 들어가서 살았다고 하면 같은 거짓말이라도 약간 신뢰도가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섬이 아닌 한반도로 포장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황해 바다를 건너 갔다고 해서는 도저히 낙랑군 등 한사군 설명을 할 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뒷문장에 “(한韓지역은) 한나라 때에는 낙랑군에 속했다.漢時屬樂浪郡”는 구절이 나온다. 마한이 낙랑군에 속했다고 해석하면 한반도 전역이 한사군으로 중국의 식민지인 시절이 있었다고 교육해야 할 판이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육지로 중국 지역 어디에서 지금의 요녕성을 거쳐 한반도 평양시까지 왔다고 소설을 썼다. 평양시가 중국 한사군 중 핵심인 낙랑군이라는 주장에도 합리성을 부여하게 되니 더욱 좋다. 그래서 ‘국사편찬위원회’는 조선왕 준은 지금의 한반도 평양시에 있던 조선을 위만에게 빼앗기고 남포 항에서 배를 타고 지금의 전주 익산까지 남하하여 지금의 호남지역에 도착해서 마한의 왕이 되었다고 멋지게 거짓말한 것이다.
그런데 원서 [삼국지]에 나오는 주석을 한번이라도 보면 차마 이 거짓말을 지지할 수가 없다. 일제 ‘조선사편수회’ 직원이었던 이병도가 죽은 지가 언제인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들이 아직도 이병도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 못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주석 〔二〕 는 [위략]이라는 책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고 말한다. 조선왕 준 및 같이 도망친 세력들의 아들과 친척들로서 새로운 나라인 ‘한韓’(마한)에 도착한 사람들은 우두머리 지배세력의 성(冒姓)을 ‘한韓’씨로 하였다. 준왕은 ‘해海’지역 중에(海中) 살면서 조선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魏略曰:其子 及 親 留在國者,因 冒姓 韓氏。準王 海中,不與朝鮮相往來。
아무리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이라 하더라도 ‘해중海中’을 바닷속이나 황해 한 가운데의 섬이라고 해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해중海中’이 한반도라고 끝까지 고집할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에 의하면 마한 즉 한성백제 즉 온조의 하남위례성은 평양지역과 경계를 닿고 있다. 마한의 왕이 된 조선왕 준이 고향 평양시와 전혀 왕래를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준은 하지 않았더라도 백성들은 서로 교류했을 것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설명을 다시 보자. “준왕(準王)의 후손인 마한 원왕(元王)에게 3형제가 있었는데 나라가 망하매 아들 우평(友平)은 고구려로 가서 유리왕을 섬겨 벼슬하여 북원(北原) 선우씨(鮮于氏)의 시조가 되고, 우성은 백제에 항복하여 온조왕을 섬겨 덕양기씨의 시조가 되었고, 우량(友諒)은 신라로 가서 탈해왕조에 벼슬하여 상당한씨(上黨韓氏)의 시조가 되었다 한다.”
준왕의 후손이라는데 어떻게 성씨가 ‘우友’인 듯하다. 하여튼 우평(友平)은 북원(北原) 선우씨(鮮于氏)가 되었고, 북원(北原) 선우씨(鮮于氏)는 중국 산서성 태원시 태원선우씨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말미에 참고문헌으로 『태원선우씨족보(太原鮮于氏族譜)』를 예시하고 있다. 고구려의 영토가 어디까지이길래 기원전 200년 경 한반도 호남지방까지 온 준왕의 후손이 기원후 10년경 고구려 유리왕 때 다시 수천 ㎞ 떨어진 산서성 태원시에 가서 새로 ‘선우鮮于’라는 성씨를 창설할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의 계속이다. “일설에는 기자가 조선에 봉해지고 기자의 작은아들 중(仲)이 우산국(于山國)에 봉해졌는데, 작은아들이 조선의 ‘선(鮮)’자와 우산의 ‘우(于)’자를 따서 선우라 이름하여 선우씨의 시조가 되었고, 기준왕이 마한으로 망명하여 한왕이 되매 기준의 아들 우친(友親)이 조선에 남아서 한씨의 시조가 되었다 한다. 또한 일설에는 마한의 말(末)에 기자의 후손 3인이 있어 친(親)은 그 뒤에 한씨의 시조가 되고, 평(平)은 기씨의 시조가 되고, 양(諒)은 용강(龍岡) 오석산(烏石山)에 들어가서 황룡국(黃龍國)을 세워 왕이 되어 선우씨의 시조가 되었다 한다. 참고문헌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행주기씨족보(幸州奇氏族譜)』 - 『청주한씨세보(淸州韓氏世譜)』 - 『태원선우씨족보(太原鮮于氏族譜)』”
아무리 그래도 ‘국사편찬위원회’는 기자의 작은아들 중(仲)이 봉해진 우산국(于山國)이 “신라 장군 이사부가 웃는다.”는 울릉도 우산국과는 다르다고 설명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참고문헌으로 제시된 4권의 책을 모두 믿을 수 없는 위서라고 할 것이다.
[북위서 지형지 평주] 平州晉置。治肥如城。領郡二 縣五 戶九百七十三 口三千七百四十一 1) 遼西郡 秦置。領縣三 戶五百三十七 口一千九百五 ①肥如 二漢、晉屬。有孤竹山祠、碣石、武王祠、令支城、黃山、濡河。 ②陽樂 二漢、晉屬,真君七年 併令支 含資屬焉。〔八二〕 有 武歷山、覆舟山、林榆山、太真山。 ③海陽 二漢、晉屬。有 橫山、新婦山、清水。 2) 北平郡 秦置。領縣二 戶四百三十 口一千八百三十六 ①朝鮮 二漢、晉屬樂浪,後罷。延和元年 徙朝鮮民 於肥如,復置,屬焉。 ②昌新 前漢 屬涿,後漢、晉屬遼東,後屬。〔八三〕 有 盧龍山。
[북위서 지형지 은주 조군 방자현]에 평주성平州城이 있다. 殷州 孝昌二年 分 定、相 二州置,治廣阿。 領郡三 縣十五 戶七萬七千九百四十三 口三十五萬七千一十六 趙郡 秦 邯鄲,漢高帝 為趙國,景帝又為 邯鄲,後漢建武中 復,〔五八〕後改。 領縣五 戶三萬一千八百九十九 口一十四萬八千三百一十四 ①平棘 二漢屬 常山,晉屬。有 平棘城。 ②房子 二漢屬 常山,晉屬。有 房子城、回車城、平州城、嶂洪祠。 ③元氏 二漢屬 常山,晉屬。有 元氏城、大嶺山。 ④高邑 二漢屬 常山。前漢曰 鄗,後漢光武 改,晉屬。有墠亭祠、漢光武即位碑。 有高邑城。 ⑤欒城 太和十一年 分 平棘置,治 關城。有 欒城。 <저작권자 ⓒ 고구려역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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