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역사저널

선우씨가 조선의 후예이면 조선이 지금의 산서성 태원시나 하북성 중부 석가장시 이남 어디에 있었던 것이 증명된다. 중산국 북평현과 평주 북평군 조선현(3)

선우씨가 조선의 후예이면 조선이 지금의 산서성 태원시나 하북성 중부 석가장시 이남 어디에 있었던 것이 증명된다. 중산국 북평현과 평주 북평군 조선현(3)

이원환 | 입력 : 2026/08/3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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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씨가 조선의 후예이면 조선이 지금의 산서성 태원시나 하북성 중부 석가장시 이남 어디에 있었던 것이 증명된다. 중산국 북평현과 평주 북평군 조선현(3)

 

선우 씨의 원래 근거지는 선우국(선우나라)이다. 선우국의 이웃나라가 이다. 후대 역사가들은 비자肥子 과 같다고 설명했고, [한서지리지 요서군]의 비여(肥如 : 비나라와 같다)현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역사책 중 하나인 [좌전 소공 편 左傳 昭公]에 나오는 비자국’,‘선우국’, ‘고고국관련 기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기원전 530) 나라의 우두머리 순오(荀吳)는 이웃한 제()나라와 회합을 가진다는 핑계를 대고, 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던 선우(鮮虞)라는 나라에 길을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선우를 통과한 진나라 군대는 제()나라로 가지 않고 곧바로 의 도읍인 석양(昔陽)을 기습했다.

은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멸망했고, 당시 의 군주였던 비자肥子면고(綿皋)는 진나라의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

포로가 되지 않고 살아남은 비국의 왕족과 유민들은 진나라의 칼날을 피해 대거 탈출을 감행했다. 그들이 향한 곳은 진나라의 영향력이 비교적 덜 미치던 연()나라였다. 새로 추대되었거나 유민을 이끌던 의 우두머리(‘비자肥子’)는 연나라 조정에 귀순을 요청하며 몸을 의탁했다. 이것이 바로 비자가 연나라로 도망쳤다.”는 뜻의 비자분연(肥子奔燕)이다. 연나라는 망명해 온 비국의 유민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영지를 내려주었다. 이 지역을 비여(肥如 : 비나라와 같다)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비여국 선우국을 침공한 진나라는 근거지가 지금의 산서성 중부라고 통설은 설명한다. 지금의 산서성이 근거지인 진나라가 산서성 태원시나 임분시 부근에서 앞의 글에서 소개한 정형 고개를 넘어 지금의 하북성 석가장시에 있는 비여국 선우국을 침공했다는 것이다.

 

이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특히 ()나라의 순오(荀吳)가 제()나라 군대와 합류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선우(鮮虞)에게 길을 빌려, 마침내 석양(昔陽)으로 들어갔다. 가을 8월 임오일에 을 멸하고 비국의 왕 비자면고를 데리고 돌아왔다.晉荀吳 偽會齊 師者假道 於鮮虞遂入昔陽八月壬午滅肥以肥子綿皋 歸는 기록을 설명하기는 매우 힘들다. 아니 불가능하다.

 

당시 제()나라가 우선 지금의 어디에 있었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좌전 소공 편 左傳 昭公]의 진행 방향은 선우鮮虞석양昔陽 이다.

지금 하북성 석가장시 일대를 선우국으로 비정하고

를 지금의 산동성 지역이라 비정한다면,

비자가 도망친 연나라는 선우국(비국) 북쪽에 있을 수 밖에 없다.

남쪽은 진나라가 계속 공격할 루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의 를 지금의 산동성 서북부가 아니라 지금의 황하 북쪽 하남성으로 보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

 

[사기 조선열전][한서 조선전]에서는 한나라 루선장군 양복나라 병사 7천명을 데리고 에서부터 발해를 건너 조선의 왕험성 입구인 렬구에 닿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종제 부발해 從齊 浮 渤海라는 표현이다.

 

[사기 조선열전]에서 조선 멸망후 5제후가 봉지로 받은 곳은 원래 5제후의 근거지이다. 획청후와 온양후는 지역이라고 주석을 달고 있다.

온양후온양은 지금의 하남성 온현임이 [북위서 지형지 회주] 편에서 무덕군 온현에 패수가 있다.”는 기록으로 확정되었다.

획청후획청지역은 하남성 획가현이 유력한 후보 지역이다.

온양후와 획청후에 달린 주석에서 200년대 인물인 위소가 두 지역 모두 에 속한다고 한 것이다.

 

결국 산서성 태원시에 있던 진()나라는 직진 남하한 것이 되고 선우국, 비국(비여)은 지금의 직진방햐인 산서성 중남부지역이나 황하북쪽 하남성에 있게 된다.

비자가 도망친 연나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제 태원선우씨의 본향이 산서성 태원시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선우씨가 조선의 후예이면 조선은 지금의 산서성 태원시나 하북성 중부 석가장시 이남 어디에 있었던 것이 증명된다.

 

1 [사기 조선열전 획청후 온양후 속제]

以故 遂定朝鮮為四郡。〔封參 為 澅清侯,〔陰為 荻苴侯,〔唊為 平州侯,〔為 幾侯。〔最以父死頗有功為 溫陽侯。〔

集解 韋昭曰:「。」索隱參澅清侯韋昭云縣名屬齊」。顧氏澅音獲

集解 韋昭曰:「屬勃海。」索隱陰荻苴侯晉灼云屬勃海」。

荻音狄苴音子餘反

集解 韋昭曰:「屬梁父。」索隱唊平州侯韋昭云屬梁父」。

集解 韋昭曰:「屬河東。」索隱長幾侯韋昭云縣名屬河東」。

集解 韋昭曰:「。」索隱最涅陽侯韋昭云屬齊

 

2 [북위서 지형지 평주] 비여현

平州晉置治肥如城領郡二 縣五 戶九百七十三  口三千七百四十一

1) 遼西郡 秦置領縣三  戶五百三十七  口一千九百五

肥如 二漢晉屬有 孤竹山 祠碣石武王祠令支 城黃山濡河

 

3 [한서지리지 요서군] 비여현

遼西郡秦置(중략) 縣十四且慮(중략) 肥如玄水東入濡水濡水南入海陽又有盧水南入玄莽曰肥而(후략)

  〔〕 應劭曰:「肥子奔燕燕封於此也。」

비자가 연나라로 달아났다. 연나라는 비자에게 봉지를 주었다.(땅을 주어 먹고 살게 했다.)

 

師古曰:「濡音乃官反。」 의 발음은 의 반절이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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