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역사저널

[한서 권28 지리지]는 기원후 100년 경 완간되었다지만, 640년 경 당나라 때 달린 주석을 원문에 직접 삽입한 채로 지금 읽히고 있다. ‘조선’과 ‘고구려’ 영토를 당나라 영토로 역사 조작한 의심이 간다. 중산국 북평현과 평주 북평군 조선현(7)

[한서 권28 지리지]는 기원후 100년 경 완간되었다지만, 640년 경 당나라 때 달린 주석을 원문에 직접 삽입한 채로 지금 읽히고 있다. ‘조선’과 ‘고구려’ 영토를 당나라 영토로 역사 조작한 의심이 간다. 중산국 북평현과 평주 북평군 조선현(7)

이원환 | 입력 : 2026/09/0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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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권28 지리지]는 기원후 100년 경 완간되었다지만, 640년 경 당나라 때 달린 주석을 원문에 직접 삽입한 채로 지금 읽히고 있다. ‘조선’과 ‘고구려’ 영토를 당나라 영토로 역사 조작한 의심이 간다. 중산국 북평현과 평주 북평군 조선현(7)

 

玄菟郡,武帝元封四年開。高句驪,莽曰下句驪。屬幽州。〔一〕戶四萬五千六,口二十二萬一千八百四十五。縣三:

①高句驪,遼山,遼水所出,西南 至遼隊 入大遼水。又有南蘇水,西北經塞外。〔二〕

②上殷台,莽曰 下殷。〔三〕

③西蓋馬。馬訾水 西北 入鹽難水,西南 至西安平 入海,過郡二,行二千一百里。莽曰 玄菟亭。

  〔一〕 應劭曰:「故真番,朝鮮胡國。」

  〔二〕 應劭曰:「故句驪胡。」

  〔三〕 如淳曰:「台音鮐。」師古曰:「音胎。」

“마자수(馬訾水)는 서북쪽으로 흐르며 염난수(鹽難水)로 들어가고, 서남쪽으로 흘러 서안평(西安平)에 이르러 바다海로 들어가는데, 두 개의 군을 거치며 흐른 길이가 2,100리이다.”

여기서 해(海)는 지금의 발해만임이 확실하다.

강 A가 서북으로 흘러 강B와 합쳐져서 다시 서남으로 흘러 지역C에서 ‘바다海’에 들어가는 지형을 중국 대륙에서 찾아 보자. ‘바다海’를 지금의 황하, 지금의 호타하, 지금의 내륙 호수라고 해도 찾기 힘들 것이다.

지금의 요하가 흐르는 지역을 보자.

요하의 발원지 ‘료원遼源’에서 서북으로 흐르는 지금의 동요하가 마자수馬訾水이다. 동, 서요하가 합쳐지는 지금의 ‘쌍료双遼’에서 ‘동요하 마자수馬訾水’는 서요하와 합쳐진다. ‘서요하 염난수鹽難水’이다. 동요하 서요하가 합쳐진 요하 즉 ‘염난수鹽難水’는 서남으로 흘러 지금의 ‘반금盘锦 서안평西安平’에서 발해만으로 들어간다.

 

정리된 중국 고대 지리책으로는 [한서 권28 지리지]가 가장 오래되었다. 기원전 100년 경 완간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국학도항] 사이트에 게시된 원문 중 푸른 글씨는 당나라 때인 640년 경 ‘안사고’가 써 넣었다는 사실이다.

즉 100년 경 지리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640년 경 ‘안사고’가 해설한 지리책을 보는 것이다.

‘안사고’의 목숨을 쥐고 있는 사람은 ‘당태종’이었다. ‘당태종’은 고구려 정벌에 올인한 상태였다. 철저히 고구려를 약하고 비겁하고 못한 쪽으로 왜곡 기록하고 고구려의 영토는 어디를 불문하고 모두 화하족의 땅인 것으로 기록해야만 당태종 때의 역사기록자들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일제 강점기 조선사 편수회 직원으로 일한 ‘이병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중국대륙에서 고구려를 몰아내어 지금의 만주와 한반도로 우겨 넣기에 당태종이 조작한 역사책만큼 이병도와 일제의 입맛에 맞는 역사책은 없었던 것이다.

당태종 때인 648년에 편찬된 [진서 사이열전(동이열전)]에는 고구려 편이 없다. 아예 기록을 하지 않은 것이다. 고구려의 역사를 기록하게 되면 당나라 이전의 화하족 중국의 약하고 잘못된 부분을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으로 본다.

‘안사고’는 [사기 조선열전]을 그대로 베끼면서도 [한서 조선전]에서 인물과 지명 일부는 [사기 조선열전]과 다르게 써 넣었다. 결정적으로 있지도 않은 진번 임둔 낙랑 현도 ‘한사군’을 써 넣었다.

[사기 조선열전] 원문에는 진번 임둔 낙랑 현도 4군의 이름이 없다. “4군이 되었다.”는 ‘위사군爲四郡’ 세 글자가 들어가 있을 뿐이다. ‘사마천’이 ‘위사군爲四郡’을 써 넣으면서 4군의 내용을 쓰지 않았을 리 없다. 즉 ‘사마천’은 ‘위사군爲四郡’을 기록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사군爲四郡’은 당나라 안사고가 한서를 개작할 때 삽입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안사고’의 망발로 있지도 않았던 ‘한사군’을 중국 한복판도 아니고 한반도에 여태껏 모셔 놓은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서지리지]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서론 부분으로 우공9주로 중국 대륙 지리를 설명하고 있다. 본론으로 103개 군국의 인구와 현 이름만 기재했다. 마지막 부분은 본론의 지명을 별자리에 맞추어 위치를 표시하고 지역별로 역사를 설명했다. 결국 고대 천문지도를 해박하게 해석할 수 있어야 103개 군국을 지역별로 나눈 ‘지역’의 위치를 이해할 수 있다.

‘안사고’가 고구려와 조선을 지우기 위한 작업을 하다 보니 ‘안사고’ 주석 사이에서도 모순된 내용이 나온다.

[한서지리지]에는 각 군에 속한 현 별로는 설명이 아예 없었다. 현 이름만 나열한 상태였다. 그런데, 현 이름만 나열된 상태에서 마치 원래 [한서지리지]의 편찬자가 달아 놓는 듯이 안사고가 개별 현에 대한 설명을 삽입하였다.

안사고가 주석을 달아 놓은 [한서지리지]의 폐해는 심각하다. 640년 경의 지리 인식을 마치 100년 경의 지리인 것처럼 기록한 것이다. 후대에 [사기 집해] 등 개별 책이 주석임을 표시하고 달아 놓은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처음 [한서지리지]를 보는 사람은 ‘안사고’의 설명이 아니고 ‘반고’ 등 [한서]의 편찬자들이 처음부터 써 놓은 것으로 오인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현도군이라 하겠다. 현도군에는 고구려현, 상은대현, 서개마현 달랑 3개만 있다. 103개 군국중 소속현 수로는 꼴찌다. 더구나 1번현이 고구려현이다. 과연 [한서] 편찬자들이 현도군과 현도군 소속 3개 현을 기록했을까?

혹시 당나라 때 안사고가 아예 현도군을 써 넣은 것 아닐까?

낙랑군도 마찬가지로 ‘안사고’가 써 넣은 것 아닐까?

낙랑군 1번현이 조선현이다.

 

(계속)

주1  한서지리지 현도군

[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31 打開字典 地理志下:

玄菟郡,戶四萬五千六,口二十二萬一千八百四十五。縣三:高句驪,上殷台,西蓋馬。

Xuantu Jun had 40,506 households and a population of .122,184. The three xian were: Gaogouli, Shangyintai, and Xigaima.

 

[국학도항 한서 国学导航-漢書]

玄菟郡,武帝元封四年開。高句驪,莽曰下句驪。屬幽州。〔一〕戶四萬五千六,口二十二萬一千八百四十五。縣三:

①高句驪,遼山,遼水所出,西南 至遼隊 入大遼水。又有南蘇水,西北經塞外。〔二〕

②上殷台,莽曰 下殷。〔三〕

③西蓋馬。馬訾水 西北 入鹽難水,西南 至西安平 入海,過郡二,行二千一百里。莽曰 玄菟亭。

  〔一〕 應劭曰:「故真番,朝鮮胡國。」

  〔二〕 應劭曰:「故句驪胡。」

  〔三〕 如淳曰:「台音鮐。」師古曰:「音胎。」

마자수(馬訾水)는 서북쪽으로 흐르며 염난수(鹽難水)로 들어가고, 서남쪽으로 흘러 서안평(西安平)에 이르러 바다海로 들어가는데, 두 개의 군을 거치며 흐른 길이가 2,100리이다.

여기서 해(海)는 지금의 발해만임이 확실하다.

강 A가 서북으로 흘러 강B와 합쳐져서 다시 서남으로 흘러 지역C에서 바다海에 들어가는 지형을 중국 대륙에서 찾아 보자.

바다海를 지금의 황하, 지금의 호타하, 지금의 내륙 호수라고 해도 찾기 힘들 것이다.

지금의 요하가 흐르는 지역을 보자.

요하의 발원지 ‘료원遼源’에서 서북으로 흐르는 지금의 동요하가 마자수馬訾水이다. 동, 서요하가 합쳐지는 지금의 ‘쌍료双遼’에서 ‘동요하 마자수馬訾水’는 서요하와 합쳐진다. ‘서요하 염난수鹽難水’이다. 동요하 서요하가 합쳐진 요하 즉 ‘염난수鹽難水’는 서남으로 흘러 지금의 ‘반금盘锦 서안평西安平’에서 발해만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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