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역사저널

한민족 기원의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

조병현 박사 | 기사입력 2026/09/03 [08:56]

한민족 기원의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

조병현 박사 | 입력 : 2026/09/03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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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기원의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

 

조 병 현*

 

                     <차 례>

 

 

 

1. 서론

2. 한민족 기원설에 관한 선행연구 검토

3. 한민족 기원과 이동에 관한 실증적 분석

4. 파미르고원설의 현대적 재해석과 통합 모델 정립

5. 결론

 

 

초록

본 연구의 목적은 한민족의 기원설을 재검토하고, 한민족 형성과정을 통합적으로 규명하여 한민족의 기원과 이동에 관한 새로운 이론과 모형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한 조사방법은 문헌 조사법과 인터넷조사법을 병행하였으며, 분석방법은 비교분석법과 기술적(記述的) 분석방법을 사용하였다. 선행연구 동향 검토와 문헌 자료, 고고학 자료, 유전학 자료에 관하여 실증적 연구를 수행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선행연구는 특정 지역을 단일 기원 문제로 접근하고, 실증 자료 부족과 단편적 연구로 민족형성을 장기적인 역사 과정으로 입증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둘째, 한민족의 기원은 역사적 중심축이 만주와 요동을 포함한 북방 문화권에 있었고,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로 계승된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한민족 형성은 단일 혈통이나 단일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다양한 집단과 문화가 장기간 상호작용하며 형성된 역사적 공동체로 나타났다.

넷째, 요하문명과 홍산문화, 비파형 동검 문화권의 고고학적 근거와 유전학 연구는 한민족이 북방계 요소를 중심축으로 다양한 계통이 결합한 다층 구조로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민족은 이동(Mobility)과 접촉(Contact), 융합(Fusion), 재구성(Reconstruction)의 연속된 과정을 통하여 형성된다는 것을 규명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기존 연구의 장점을 취하고, 한계성을 보완하여 수립한 이론과 모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채호의 파미르고원설을 유라시아 이동 네트워크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직접적인 기원설이 아니라, 한민족의 역사 공간을 북방에서 파미르고원까지 확대한 「역사공간론」으로 설정하였다.

둘째, 민족형성을 이동과 접촉, 융합, 재구성의 역사적 과정으로 설명하는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을 제시하였다.

셋째,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을 한민족에 적용한 해석모형으로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을 제시하였다. 본연구는 한민족 기원 연구를 기원지 논쟁에서 민족형성과정 차원으로 연구 범위를 확장하고, 이를 설명하는 통합적 분석 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가 있다.

 

주제어 한민족 기원설, 민족형성론, 신채호, 파미르고원설,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

 

1. 서론

 

한민족의 기원에 관한 연구는 역사적 기원을 규명하는 차원을 넘어 동북아 역사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고조선과 한민족 형성에 대한 논쟁을 심화시켰지만, 한민족의 기원과 형성에 관한 연구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인의 기원에 관한 연구는 종합적으로 직접 다루지 않고, 문헌 사학의 보조학문으로 진행하여 한민족 형성과정의 중심축과 역사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에는 미흡한 측면이 있었다.

본 연구는 연구자가 신채호의 대륙 사관을 연구하면서 한민족의 기원과 이동에 관한 기존 연구의 한계성을 관찰하게 되었다. 거시적인 문제의식을 조성할 만한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여 통합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한민족 형성을 특정 지역이나 특정 시점에서 완성된 결과로 이해하는 경향을 확인하였다. 신채호는 ‘한민족이 파미르고원에서 발원하여 밝음을 찾아 동쪽으로 이동하여 한반도에 정착한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파미르기원설이 한민족 기원에 관한 주요 학설과 어떤 연관성이 있으며, 기존 학설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며, 이를 종합적으로 해석하는 이론은 있는가? 있다면 체계화가 가능할까? 등에 대한 의문점을 갖게 된 것이 본 연구의 배경이 된다.

이상과 같은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 먼저 북방기원설과 남방기원설, 다원적기원설을 비교·분석하고, 문헌 자료와 고고학 자료, 유전학 자료를 종합적으로 실증 검토하여 한민족 형성과정을 재해석하여 한민족의 기원과 형성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이 같은 연구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세부적인 연구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존의 북방기원설과 남방기원설, 다원적기원설, 파미르기원설에 관한 연구 성과와 한계를 비교·분석한다.

둘째, 문헌 자료와 고고학 자료, 유전학 연구 성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한민족 형성과정의 역사적 전개 양상을 실증적으로 분석한다.

셋째, 신채호의 파미르고원설을 직접적인 기원설이 아닌 유라시아 역사공간론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넷째, 이러한 분석결과를 토대로 한민족의 기원과 이동에 관한 새로운 이론과 모형을 제시한다.

이상과 같은 연구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공간적 연구 범위는 한반도와 중앙 유라시아, 일본까지 포함하였으며, 조사방법은 문헌 조사법과 인터넷조사법을 병행하고 분석방법은 비교 분석방법과 기술적(記述的) 분석방법을 사용하였다. 연구대상이 되는 한민족의 기원과 형성문제가 일정한 이론 적용과 통계적 분석을 할 수 없으므로 인해 국내·외에서 연구된 문헌과 고고학, 유전자에 관한 연구를 토대로 그에 따른 실태를 기술적 분석방법을 통해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2. 한민족 기원설에 관한 선행연구 검토

 

본 장은 한민족 기원과 이동에 관한 선행연구를 검토하여 문제점을 분석하는 장이다. 본 장에서는 북방기원설과 남방기원설, 다원적기원설과 파미르고원설을 중심으로 한민족 기원과 한반도 이동에 관한 선행연구를 분석하고, 선행연구의 한계와 본 연구의 차별성을 검토한다.

 

1) 북방기원설

북방기원설은 한민족의 기원을 만주와 요동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북방 문화권에서 찾는 이론으로, 오랫동안 가장 유력한 학설로 자리해 왔다.

윤내현(1989)은 󰡔한국고대사󰡕에서 “요서 지역을 고조선의 영역으로 포함하였으며, 하가점하층문화가 이미 국가사회로 진입하였다.”라고 인식하였고, 리지린(2018)은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에서 청동검과 청동경이 만주·요동 지역의 문화적 연속성을 통해 고조선의 역사적 실체를 설명하였다. 우실하(2021)는 「동북아시아의 고대 철학, 종교, 문화 연구의 새로운 지평」에서 “요하 유역에서 홍산문화, 하가점하층문화 등으로 대표되는 요하문명이 출현하였고, 동북아시아의 토착 세력인 이(夷)의 기반이 요하문명 지역으로 고조선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요하문명을 건설하고 살던 사람이 예맥족의 선조로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를 세운 주체였다.”라고 주장하였다. 방민규(2025)는 「한국인 기원에 관한 최신 연구 성과와 전망」에서 “한민족의 형성에는 북방에 이미 거주하고 있던 예맥족이 남쪽으로 이주하여 현지의 문화 요소와 섞여 한민족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이 같은 연구는 한민족 형성의 중심축이 만주와 요동을 포함한 북방 문화권에 있었음을 보여주지만, 한반도 토착 문화와 남방 요소를 과소평가하는 측면이 있다.

 

2) 남방기원설

남방기원설은 한민족 또는 한민족 문화의 일부 기원을 남중국 및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찾는 학설이다. 이 이론은 농경문화의 확산과 언어적 유사성, 선사시대 해양 교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김병모(1994)는 󰡔한국인의 발자취󰡕에서 “고인돌 남방기원설을 통해 그는 청동기시대 남방에서 한반도로의 주민 이주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홍규(2001)는 󰡔한국인의 기원󰡕에서 “한국인은 크게 두 집단으로 구분되는데 첫 번째 집단은 5만∼6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시베리아를 통해 들어온 집단이고 다른 그룹은 해안을 따라 남쪽에서 올라온 집단이다.”라고 발표하였다. Jared Diamond(2005)는 󰡔총, 균, 쇠』에서 “일본인이 BC 400년을 전후해 한국에서 벼농사와 철기 문화를 가지고 이주한 자들의 후손이라는 설을 제기하면서 유전자적으로 보아도 한국인들이 일본인의 유전자에 큰 영향을 미쳤다.”라고 주장하였다. 19세기 말 조선에 들어온 프랑스 선교사 달레(2015)는 󰡔조선 교회사󰡕에서 한국인의 기원을 언급하면서 한국인을 몽골 계통으로 분류하고 주변국과의 비교를 통해 조선인이 중국인보다 일본인에 더 가까운 신체적 특징을 갖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미국인 헐버트(1906)는 달레의 주장에 동의하며 “드라비다족이 바다를 통해 한반도에 정착했고 한민족 형성에도 영향을 끼쳤다.”라고 주장하였다. 이 같은 연구는 한반도 문화 형성과정에서 남방계 문화 요소가 일정 부분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북방 고고학 자료와 연결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3) 다원적기원설

다원적기원설은 북방계와 남방계 등 다양한 지역과 혈통의 집단이 시차를 두고 한반도에 유입되어 선주민과 융합되어 한민족이 형성되었다는 이론이다.

방민규(2025)는 「한국인 기원에 관한 최신 연구 성과와 전망」에서 “한국인의 조상이 북방계 집단을 중심으로 형성된 후 남방계 주민과의 혼합을 거쳐 요하문명과 고조선 문화권 형성의 주축이 되었다.”라고 본다. 최몽룡(2024)은 「시베리아의 토착 인들과 한국 문화의 기원(Ⅱ)」에서 “한국인의 기원은 시베리아와 만주, 한반도로 이어지는 장기적, 다원적 형성과정을 거쳤다.”라고 설명하였다. 안승모(2003)는 「고고학으로 본 한민족의 계통」에서 “한민족이 중국 동북지역과 러시아 극동,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공간에서 형성되었으며, 청동기 및 초기 철기시대의 인구 이동은 환 발해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라고 분석하였다. 한상복(2002)은 「인류학적 특성」에서 “한민족은 북방계 신 시베리아계통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역사적으로 숙신과 조선, 예맥, 동이 등으로 기록된 집단이 한민족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라고 설명하였다. 이 같은 연구는 북방 문화와 남방 문화, 한반도 토착 문화가 장기간 상호작용으로 오늘날 한민족이 형성된 것을 나타내지만, 한민족 형성과정의 중심축이 불명확하고, 역사적 서사와 방향성 부족하다.

 

4) 파미르고원설

파미르고원설은 신채호가 󰡔조선사󰡕 제2편 수두 시대에서 “조선 민족은 서쪽 파미르고원이나 몽골 등지에서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 동진하였다.”라고 주장한 데 근거한다. 그러나 학계에서 파미르고원설 자체를 독립적으로 연구한 사례는 많지 않으며, 대부분 신채호의 민족주의 사학과 상고사 인식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언급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최남선(1973)은 󰡔육당 최남선 전집 2󰡕에서 “흑해에서 카스피해를 거쳐 파미르의 북동 갈래인 톈산산맥으로부터 알타이산맥 사얀산맥, 아블로노이산맥을 따라 다시 남으로 방향을 바꾸어 흥안산맥, 태행산맥, 이동의 땅과 조선·일본·유구(琉球)를 포괄하는 일련의 선(線)에는 ᄇᆞᆰ(밝음)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과 사회조직을 가진 민족이 분포하였다. 문화적으로 확실한 하나의 연쇄성을 이루고 있다.”라고 밝혔다. 박걸순(2002)은 「신채호 역사학의 민족주의적 성격 연구」에서 “신채호 역사학의 특징을 분석하면서 그의 민족 개념이 역사적 공간의 확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지적하였다. 조병현(2025)은 「단재 신채호의 󰡔조선사󰡕에 나타난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역사적 연관성 연구」에서 “신채호가 조선 민족의 본향을 중앙아시아 파미르고원 지역으로 상정하고, ‘밝음을 찾아 동방으로 이동한 민족’이라는 역사적 정체성을 부여하였다.” 이 같은 연구는 한민족의 역사 공간을 한반도와 만주에 한정하지 않고 유라시아 초원지대와 연결된 것을 보여주지만, 실증 자료가 부족하고, 현대 학문체계와 직접 연결이 미흡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선행연구를 정리하면 아래 [표 1]과 같다.

 

[표 1] 한민족 기원설 관련 선행연구 비교 

구분

주요 내용

연구 성과

북방기원설

한민족 기원은 만주·요동·요하문명이 중심

고조선 문화권과 청동기 문화의 연속성 규명, 홍산문화와의 관련성 제시

남방기원설

남중국·동남아시아 농경문화 확산으로 한민족 형성

벼농사 전파와 해양 교류의 중요성 규명

다원적기원설

다양한 집단의 이동과 융합으로 한민족 형성

유전학·고고학 연구 성과를 종합하여 복합적 형성 구조 제시

파미르고원설

중앙아시아까지 역사 공간을 확장하여 설명

민족사의 공간적 범위 확대, 식민사관 극복 시도

 

 

5) 선행연구의 한계와 본 연구의 차별성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북방기원설은 요하문명과 홍산문화를 근거로 북방 문화권의 중요성을, 남방기원설은 농경문화와 해양 교류를 통한 남방 문화 영향을, 다원적기원설은 다양한 집단의 이동과 융합을 통한 한민족 형성을, 파미르고원설은 한민족의 역사 공간을 유라시아 차원으로 확장을 강조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연구는 분야별로 연구가 편중되어 있고, 특정 지역을 단일 기원 문제로 접근하고, 실증 자료 부족과 단편적 연구로 민족형성을 장기적인 역사 과정으로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에서는 선행 연구의 장점을 취하고, 한계성을 보완하기 위해 문헌 자료와 고고학 자료, 유전학 자료를 통합적으로 규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민족을 정태적 존재가 아니라 이동과 접촉, 융합, 재구성의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 동태적 공동체로 정의하고, 북방 문화권을 중심축으로 남방 문화와 일부 유라시아문화 요소를 함께 고려하여 한민족 형성의 공간적 범위를 확장할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기존 연구의 한계와 본 연구의 차별성을 정리하면 아래 [표 2]와 같다.

 

[표 2] 기존 연구의 공통적 한계와 본 연구의 차별성

구분

기존 연구의 공통적 한계

본 연구의 차별성

연구 방법

역사학·고고학·언어학·유전학 등 개별 학문 중심으로 연구 수행

문헌 자료, 고고학 자료, 유전학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

민족 개념

민족을 특정 지역, 특정 집단에서 출발한 고정적·정태적 존재로 인식

민족을 장기간의 이동·교류·융합을 통한 동태적 과정으로 정립

기원 인식

단일 기원 또는 특정 문화권 중심으로 개별적으로 설명

북방 중심 구조를 인정하면서 남방과 서방 요소 융합

형성과정

문화 요소의 기원 규명에 집중

이동·교류·융합의 역사적 과정으로 재구성

공간 범위

한반도와 만주 중심 연구가 주류, 유라시아 차원의 검토 제한적

동북아와 중앙 유라시아 연결, 광역적으로 한민족 형성과정 검토

신채호 연구

일부 연구자 비실증적 주장과 논리 비약으로 평가

민족형성론과 유라시아 이동사 관점에서 재해석

이론적 설명력

중심축과 역사적 방향성 부족

북방 문화와 다양한 문화가 융합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 제시

 

 3. 한민족 기원과 이동에 관한 실증적 분석

 

본 장에서는 한민족의 기원과 한반도 이동설에 관해 문헌 자료와 고고학 자료, 유전학 자료를 실증적으로 분석한다. 한민족 기원과 이동과정의 역사적 특성을 다층적으로 분석하여 시사점을 도출, 제4장에서 새로운 이론과 모형을 제시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1) 문헌 자료에 나타난 한민족 형성

(1) 단군 신화와 집단 이동의 기억

한민족의 기원과 형성을 기록한 대표적 문헌 자료는 󰡔삼국유사󰡕 권1 「고조선조」의 단군 신화다. 단군 신화는 환웅 집단의 천강(天降)과 곰 토템 집단의 결합을 통해 단군왕검의 출현과 고조선의 건국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삼국유사󰡕는 󰡔고기󰡕를 인용하여 “옛날에 환인의 서자 환웅이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여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를 연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어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을 건국하였다.”라고 전하고 있다. 전진국(2022)은 「고조선 건국신화의 환인과 환웅」에서 “전통적으로 신화는 건국과 같은 특정 사건이나 영웅적 인물에 대한 집단의 기억방식이다. 그러므로 신화 또한 역사로 설명하면서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수록된 단군 관련 신화는 실제의 고조선 건국신화이고, 단군은 실존의 고조선 왕을 원시 제정일치 사회의 수장을 신화화한 존재로 이해하고 단군뿐만 아니라 환웅 역시 역사적 존재로 설정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단군 신화는 단일 혈통의 발생을 설명하는 신화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집단이 정치적 통합을 이루어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같은 연구는 단군 신화에 나타난 바와 같이 한민족 형성을 특정 지역에서 갑자기 출현한 결과가 아니라 이동과 정착, 접촉과 융합의 장기적 과정으로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문헌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

 

(2) 중국 사서에 나타난 동이 집단

중국 정사에 기록된 동이 관련 기사는 한민족 형성 연구에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중국 사서는 동이 집단을 단순한 주변 부족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중원과 구별되는 독자적 문화권으로 인식하였다.

󰡔후한서󰡕「동이열전」은 “東夷之人 性柔順 少爭而多信”라고 기록하면서 동이인의 문화적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은 “부여·고구려·옥저·동예 등을 개별 국가로 기록하면서도 풍속과 생활양식이 유사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부여에 대해서는 “其國殷富 自先世以來 未嘗破壞”이라고 기록하여 “오랜 기간 안정된 정치체제를 유지한 국가로 평가하였다.” 이러한 기록은 동이 집단이 단순한 정치적 집단이 아니라, 일정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공동체로 인식하였고,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걸쳐 분포한 여러 집단이 일정한 문화권을 공유하였음을 나타낸다. 박정학(2009)은 「한민족의 형성과 얼에 대한 연구」에서 “중국에서는 동이를 야만인으로 봤으므로 오랫동안 동이에 관한 깊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30년대 蒙文通이 동이를 고대 중국의 3대 종족의 하나로 보기 시작하여, 1970년대 傅斯年의 ‘夷夏東西說’에 이은 大文口문화의 발굴을 계기로 1980년대 이후 ‘東夷文化熱’이라고 할 정도로 동이문화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라고 평가했다. 기수연(1994)은 「동이의 개념과 실체의 변천에 관한 연구」에서 “중국 사서에 동이인이라고 표시된 요, 순, 치우, 공자 등의 인물을 우리 조상으로 봄으로써 은족(동이족)의 동북기원설을 주장하였다.” 이 같은 연구는 고조선 이후 형성된 북방 문화권의 지속성과 한민족 형성의 역사적 배경을 제공한다.

 

(3) 고조선·부여·고구려의 계승성

고구려가 고조선과 부여를 승계한 기록은 한민족의 정체성 문제뿐만 아니라, 중국의 동북공정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는 북방계 중심축 위에 다양한 집단이 융합, 통합하며 발전한 한민족 형성의 역사적 주류 계보이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의 “高句麗者 出自夫餘 고구려는 부여에서 유래했다.”라는 기록은 고구려가 부여 계통의 국가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부여와 고구려의 언어와 풍속이 서로 유사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은 고구려가 단절적으로 등장한 국가가 아니라, 부여 문화권의 계승자였음을 나타낸다. 고구려 건국신화의 주몽은 부여계 혈통이고, 부여는 고조선 붕괴 이후 만주 지역에서 성장한 정치세력임을 나타낸다. 이 같은 연구는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의 계승은 분명한 사실이며, 한민족 형성은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정치적·문화적 발전을 보여준다.

 

2) 고고학 자료에 나타난 이동과 문화 확산

(1) 요하문명과 홍산문화

요하문명은 랴오허(요하) 유역에서 발생한 신석기·청동기 문명을 말하고, 대표적인 홍산문화 유적으로 내몽고 적봉시와 요령성 조양시 일대 동산취 유적과 우하량 유적을 꼽는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홍산문화와 한반도 사이에 깊은 문화적 연속성이 존재한다. 우실하(2007)는 󰡔東北工程 너머 ‘遼河文明論’󰡕에서 “요서와 요하, 한반도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보았으며, 그 근거로 빗살무늬토기와 적석총, 석관묘, 비파형 동검, 고인돌 등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문화 요소는 황하 중심의 중원 문화권과 구별되는 독자적 문화 전통을 나타낸다.”라고 하였다. 이대구(2024)는 󰡔요하문명은 한반도로 흐른다󰡕에서 “요하문명은 중원의 황하문명과 상관없는 독자적인 문명으로 한민족의 고대 문화의 기원 문제와 관련성이 있다. 홍산문화로 대표되는 요하 지역이 동이족과 예맥족이 거주한 지역이므로 요하 지역의 선대문화가 고조선 문화로 연결할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홍산문화가 동북아 북방 문화권 형성 기반이 되었고, 이후 만주와 한반도로 이어지는 문화적 흐름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홍산문화를 곧바로 고조선 문화로 동일시하는 데는 어려운 점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요하문명과 홍산문화는 한민족 형성과 한반도 이동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인 것은 틀림없다.

 

(2) 비파형 동검과 북방 문화권

비파형 동검은 한민족 형성과 북방 문화권 연구에 가장 중요한 청동기 유물 가운데 하나이다. 칼날의 형태가 비파(琵琶)를 닮아 붙여진 이름으로, 주로 요동과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에서 발견된다.

복기대(2006)는 「한국상고사와 동북아시아 청동기시대 문화」에서 “청동기시대는 요서 지역이 요동 지역보다 약간 빠른 서기전 24세기경에 시작되어 동진하면서 요동평원 지역은 서기전 22세기경, 요동 산지는 서기전 20세기경에 시작되었다.”라고 하였다. 윤내현(2014)은 『고조선, 우리 역사의 탄생』에서 “고조선 문화권의 청동기 문화가 황하 유역과는 다른 독자적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하였다. 김성법(2019)은 「한반도 출토 비파형동검의 유형과 기술적 계보」에서 “한반도 출토 비파형 동검이 요령 지역 비파형 동검과 일정한 연관성을 가지면서도 형태와 제작기술 면에서 독자적인 특징을 보인다.”라고 분석하였다. 이는 비파형 동검 문화가 단순한 전파가 아니라 만주와 한반도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하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같은 연구는 비파형 동검의 분포와 문화적 특성은 만주와 요동, 한반도 북부를 연결하는 북방 문화권의 존재를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적 근거이며, 한민족 형성의 중심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3) 고인돌과 적석총 문화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지배층의 무덤으로 사회 계층화와 정치적 권력 구조의 형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 자료로서 한민족 문화의 독자성과 연속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선사 유적이다.

이태진(2012)은 󰡔새 한국사 -선사시대에서 조선 후기까지-󰡕에서 “청동기 문화의 대표적인 유물이 북방식 고인돌로서 탁자식 고인돌이라고 불리는 이 고인돌은 주로 요동 지역과 한반도 서북지역에 분포한다.”라고 기술하였다. 조원진(2017)은 「고조선의 발전과 대외관계 연구」에서 “평양(기원전 2세기)-요동(기원전 4세기 철기 문화)-요동(기원전 6세기∼기원전 5세기 정가와자유형)-요동(기원전 10세기 쌍방문화)-요동(기원전 2천년기 초기 고인돌․돌무지 무덤문화 및 동굴 무덤)으로 연속성 있는 문화가 이어졌음이 확인된다.”라고 하였다.

고인돌 문화는 단순한 장례 풍습의 확산을 넘어 공동체 조직과 정치적 권력의 형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 같은 연구는 고인돌과 적석총 문화는 한민족 형성과정에서 북방 문화권의 영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4) 벼농사와 남방 문화 요소

고고학 자료는 북방 문화의 영향뿐 아니라 남방 문화의 유입도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벼농사의 전래이다. 벼농사는 일반적으로 중국 양쯔강 유역에서 발달한 농업기술로 한반도와 일본 열도로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高倉洋彰(1992)은 「稻の來た道」에서 “고고학적으로 일본의 도작 농경이 한반도에서 유입되었다.”라는 사실을 대부분 수긍하고 있으며, 山崎純男(1992)도 「稻作の初現 -北部九州の稻作農耕」에서 “각목돌대문토기(刻目突帶文土器) 단계에 한반도 수도작이 규슈지역에 유입되고, 야요이시대(彌生時代) 전기 초반에 일본 전역으로 퍼졌다.”라고 보았다. 최근, 김민구(2026)는 「중국-한반도 간 선사시대 벼농사 확산의 시공간적 분석」에서 “벼농사는 중국 양쯔강 중·하류 유역에서 시작하여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확산하는 과정을 네 단계로 분석하였다.” 이 같은 연구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 간의 벼농사 확산과 교류는 한민족 형성과 남방 문화 요소가 일정 부분 작용하였음을 보여준다.

 

3) 유전학 자료에 나타난 집단 형성

(1) 현대 유전학 연구의 성과

유전학 연구는 인구집단의 생물학적 연관성을 분석함으로써 집단 이동과 혼합의 양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김진숙(2010)은 「한반도 출토 고인골의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을 통한 한민족 기원과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에서 “한민족의 모계 계통이 초기 북방계 집단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이후 남방계 하플로그룹이 유입되면서 오늘날 한국인 집단이 형성된 것”으로 분석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한민족 형성과정이 단일 혈통의 계승이 아니라 다양한 인구집단의 이동과 융합의 결과였음을 뒷받침한다. 김석동(2022)은 󰡔한민족 DNA를 찾아서󰡕에서 “최근 유전학 연구 성과를 종합하여 한민족 형성을 한반도 내부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유라시아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하였다. 이 같은 연구는 바이칼호와 북방 초원지대를 중심으로 한 인구 이동이 동북아 여러 민족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과 같이 한민족도 이러한 광역 이동 네트워크 속에서 형성된 집단으로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2) 북방계 유전자 요소

한국인의 유전자 구성에서 북방계 요소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방민규(2025)는 「한국인 기원에 관한 최신 연구 성과와 전망」에서 “고대인 게놈을 분석한 결과, 석기시대에 시베리아 등 북아시아지역까지 널리 퍼져 있던 북아시아인 인구집단(선남방계)과 약 3500년 전 남중국에서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로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한 새로운 인류집단(후남방계)이 혼합돼 현재의 한국인은 지난 4만 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이동해 온 남중국 및 동남아시아 인구집단이 복잡하게 뒤섞여 형성됐다.”는 것이다. 서민석(2004)은 「한국에서 출토된 고대 인골의 미토콘드리아 DNA 고도 과변이 조절영역Ⅰ·Ⅱ의 계통학적 분석」에서 “한반도 출토 고인골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하여 과거 한반도 주민집단의 모계 계통을 추적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한반도 주민집단이 장기간에 걸친 이동과 혼합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고, 한국인의 유전적 구성이 단일 혈통이 아니라, 여러 계통의 인구집단이 장기간 이동과 혼합을 거쳐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3) 남방계 유전자 요소

한민족의 유전학 자료는 북방계 요소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것은 이미 앞에서도 살펴보았다.

서민석(2004)은 「한국에서 출토된 고대 인골의 미토콘드리아 DNA 고도 과변이 조절영역 Ⅰ과 Ⅱ의 계통학적 분석」에서 “고대 인골의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연구들은 한반도 주민집단이 단일 계통이 아니라, 현존하는 동남아 및 중국 남서부의 원난성 지역 주민, 시베리아 민족들이 고대 한반도 거주인의 모계 유전과 관련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현재환(2018)은 「유전적 민족 만들기」에서 “한국과 중국 및 일본 등 동북아시아 집단은 대체로 ‘북방계’ 몽고인종의 유전자를 이어받았지만, 남태평양 집단의 유전자도 15%가량 이어받아 북방계와 남방계 유전자가 공존하는 양상이 확인되어, 한민족 형성과정이 장기간의 이동과 혼합을 통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도출하였다.” 이 같은 연구는 한민족은 북방계 요소를 기반으로 남방계 요소가 결합한 복합적 구조로 되어있는 것을 보여준다.

 

4) 문헌·고고학·유전학 자료의 종합 평가

문헌 자료는 단군 신화와 동이 관련 기록,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역사적 계승성을 통해 한민족 형성이 장기간에 걸친 이동과 통합의 과정임을 규명할 수 있었고, 고고학 자료는 요하문명과 홍산문화, 비파형 동검 문화권, 고인돌 문화 등을 통해 만주와 요동을 포함한 북방 문화권이 한민족 형성의 중요한 중심축이었고, 유전학 연구는 한민족이 북방계 요소를 기반으로 남방계 요소가 결합한 복합적 구조로 되어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표 3] 문헌·고고학·유전학 자료의 종합 분석

구분

주요 내용

시사점

문헌 자료

단군 신화, 동이 기록, 고조선·부여·고구려의 역사적 계승성 확인

한민족 형성이 장기간에 걸친 이동과 정치·문화적 통합 과정으로 인식

고고학 자료

요하문명, 홍산문화, 비파형동검, 고인돌 문화의 분포

만주·요동을 포함한 북방 문화권이 한민족 형성의 중심축

유전학 자료

북방계 요소를 중심으로 남방계 요소가 결합한 복합 구조 확인

다양한 인구집단의 이동과 혼합 과정 반영

공통점

이동, 접촉, 문화 교류, 집단 융합의 흔적 확인

단일 기원보다 복합적 형성과정의 정당성 입증

한계

각 자료는 부분적 증거에 불과

단일 자료가 아닌 종합적 해석 필요

종합 평가

북방 문화권을 중심으로 다양한 집단과 문화가 장기간 융합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과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의 실증적 토대 제공

 

그러나 이 같은 연구는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어 한민족의 기원과 이동에 관한 문제를 다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문헌 자료는 신화와 전승의 성격을 포함하고 있으며, 고고학 자료와 유전학 자료는 문화의 이동과 인구집단의 생물학적 특성은 보여주지만, 집단의 언어와 문화, 역사적 정체성은 입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세 자료의 장점을 취하고, 한계성을 보완할 수 있도록 통합적 분석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한민족 형성은 단일 혈통이나 단일 문화의 결과가 아니라, 북방 문화권을 중심으로 다양한 집단과 문화 요소가 장기간 이동과 접촉, 융합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을 규명하였다. 이상의 분석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 [표 3]과 같다.

 

4. 파미르고원설의 현대적 재해석과 통합 모델 정립

 

본 장은 제3장의 실증적 분석을 토대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장이다. 파미르고원설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한민족 기원과 형성과정을 통합한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과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을 제시한다.

 

1) 파미르고원설의 현대적 재해석

(1) 직접 기원설의 한계와 재검토

20세기 후반, 한국고고학은 요하문명과 홍산문화, 고조선 문화권에 관한 연구 성과를 축적하면서 한민족 형성의 중심 공간을 만주와 요동 지역에서 찾았다. 이 같은 연구는 파미르고원설은 실증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와 함께 파미르고원을 직접적인 기원지로 보는 견해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이유도 있지만, 주류사학계에서 신채호 역사관 자체를 사실상 부인하고 있는 터라, 파미르고원설의 외면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민족의 기원과 형성을 통합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신채호의 역사에 대한 인식과 파미르고원설의 재해석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신채호와 파미르고원설의 현실적인 외면은 단순한 사실 여부의 문제로 접근하여 신채호 역사학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데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신채호가 활동하던 시기는 현대 고고학과 유전학 연구가 발전하기 이전이었으며, 그의 관심은 특정 지역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한민족의 역사 공간을 식민사관이 설정한 한반도 내부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 더 광대한 유라시아 공간에서 찾으려 했다.

민족사의 무대를 한반도에 한정하지 않고 만주와 동북아 전체로 확대하였고, 역사 연구는 민족의 자주성과 역사적 주체성을 회복하려는 데 있었다. 따라서 파미르고원설은 실증적 의미의 직접 기원설이 아니라, 민족형성과정을 광역적 역사 공간 속에서 이해하려는 역사철학적 시도로 재해석할 수 있다.

 

(2) 유라시아 이동 가능권역 모델

고대 민족의 형성은 단일 지역에서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친 이동과 접촉, 융합의 결과로 나타난다. 파미르고원은 이러한 유라시아 교류망 안의 출발지점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톈산산맥과 몽골 초원, 바이칼 호수, 서쪽으로는 카스피해와 흑해 지역, 남쪽으로는 인도 아시아대륙, 북쪽으로는 시베리아와 연결된다. 따라서 파미르고원은 특정 민족의 기원지라기보다 유라시아 이동 네트워크의 결절점(node)으로 이해하는 그것이 더욱 타당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신채호가 주목한 파미르 지역은 ‘민족 발생지’가 아니라 ‘역사적 이동 가능권역(Mobility Zone)’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신채호는 한민족의 형성과정을 정태적인 혈통 중심의 역사로 보지 않고, 광범위한 이동과 접촉 속에서 전개되는 동태적 역사로 인식하였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이동 가능권역 모델 구축이 가능하다. 파미르고원에서 중앙 유라시아와 알타이를 거쳐, 몽골 초원, 만주와 요동, 한반도로 이어지는 이 모델은 특정 집단이 일직선으로 이동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장기간에 걸친 인구 이동과 문화 교류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설명하는 이론적 구조로 볼 수 있다.

 

(3) 북방기원설과의 정합성

파미르고원설을 이동 가능권역 모델로 재해석하면, 기존 북방기원설과 충돌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된다. 북방기원설은 만주와 요동 지역을 한민족 형성의 중심 공간으로 설정한다. 고조선 문화권의 중심이 요동과 만주 지역에 있었고, 고조선은 북방계 문화의 산물로 한민족 형성의 직접적인 중심축이 만주와 요동을 포함한 북방 문화권에 있었다고 본다. 기존 북방기원설이 주로 만주와 요동을 중심으로 한 문화 형성과 국가발전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모형은 그 이전 단계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는 광역적 이동과 문화 교류의 배경까지 포함한다. 즉, 파미르고원은 한민족의 직접적 기원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라시아 차원의 장기적 이동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한 상위 개념의 역사 공간으로 확대한 것이 된다.

파미르고원설의 재해석은 북방기원설을 부정하거나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 북방기원설의 시간적, 공간적 범위를 더 장기적이고, 더 광역적 차원으로 확장한 보완적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해석은 신채호가 역사학의 공간적 범위를 확장하고자 노력했던 것과 일치하고, 최근 유라시아 연구에서 제시하는 이동 네트워크 관점과 부합한다. 이러한 파미르고원설의 현대적 재해석은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의 이론적 토대가 된다.

 

2)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의 체계화

 

(1) 민족형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민족 형성에 관한 연구는 ‘한민족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기원지 탐색에 집중하였다. 그 결과 북방기원설은 만주와 요동을, 남방기원설은 남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다원적기원설은 다양한 집단의 융합을 강조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최근 동북아 고대문명 연구는 요하문명과 황하문화, 한반도 문화권의 상호작용을 중시하고, 현대 역사학과 인류학 연구는 민족을 혈연적 집단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기억을 공유하는 사회적 공동체로 인식하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그리고 한민족 형성의 중심축인 북방 문화권과 남방의 토착 문화 요소와 융합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주류를 이룬다.

본 연구에서도 ‘한민족은 특정 지역에서 갑자기 출현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장기간의 역사적 변화 속에서 형성된 공동체로 규명하고, 한민족 형성은 단일 기원보다는 이동과 접촉, 융합과 재구성의 장기적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접근한 모형이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Dynamic Integrated Ethnogenesis Theory)」이다.

 

(2)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의 이론 구조

본 연구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은 민족을 특정 지역이나 단일 혈통에서 발생한 고정된 공동체로 보지 않고, 다양한 집단이 장기간에 걸쳐 이동과 접촉, 융합, 재구성하는 역사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동태적 역사공동체로 설명하는 이론이다.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에 의한 민족형성은 다음과 같은 5단계 과정을 거친다.

 

제1단계 : 이동(Mobility)

새로운 민족형성의 형성은 이동에서 출발한다. 인류는 선사시대 이후 기후변화와 자원확보, 인구 증가 등의 요인으로 이동하였다. 동북아시아도 유라시아 초원지대와 연결된 광범위한 이동 네트워크에 해당하고, 만주와 요동, 한반도는 이러한 이동 경로의 교차점에 위치한다.

 

제2단계 : 접촉(Contact)

이동한 집단은 새로운 환경과 기존 주민집단과 접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교역과 혼인, 동맹과 갈등이 발생하고, 문화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 요하문명과 황하문명, 한반도 문화권은 장기간 상호작용하면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기술과 생활양식, 종교와 제의, 언어적 요소 등의 상호 교류를 통해 공동체 형성 기반을 이루었다.

 

제3단계 : 융합(Fusion)

접촉이 장기화하면 문화적 융합이 나타난다. 융합은 서로 다른 문화 요소가 결합하여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한반도 청동기 문화는 북방의 비파형 동검 문화와 남방의 벼농사 문화, 토착 문화가 결합하여 형성된 대표적 사례이다. 고조선도 단일 집단의 국가가 아니라, 다양한 집단이 정치적·문화적으로 통합한 결과이다.

 

제4단계 : 재구성(Reconstruction)

융합된 공동체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지속해서 재구성한다. 고조선 이후 부여와 고구려, 백제, 신라의 발전 과정은 단순한 계승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질서의 형성과정에서 비롯한 것이다. 민족은 이 과정에서 축적된 역사적 경험과 공동체 정체성을 강화하고, 민족형성 기반을 마련한다.

 

제5단계 : 민족형성(Ethnogenesis)

이동과 접촉, 융합과 재구성으로 나타난 장기적 결과가 민족형성이다. 한민족 형성도 어느 특정 시점에 나타난 혈통의 집단이 아니라, 이와 같은 장기간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거쳐 형성된 공동체로 정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의 단계별 구조를 정리하면 [표 4]와 같다.

 

 [표 4]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의 단계별 구조

 

단계

핵심내용

형성 결과

1단계 : 이동

인구집단의 이동과 문화 전파

문화적 접촉 발생

1단계 : 접촉

집단 간 교류·교역·혼인·갈등 유발

상호 영향 확대

1단계 : 융합

문화 요소의 결합과 통합

새로운 공동체 형성

1단계 : 재구성

환경변화에 따른 정체성 재정립

역사적 연속성 확보

1단계 : 민족형성

장기적 융합 과정의 결과

한민족 형성

 

 

(3)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 모형 구축

앞에서 제시한 민족형성의 5단계는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과정이 아니라, 상호 연계된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이동은 접촉을 낳고, 접촉은 융합을 촉진하며, 융합은 새로운 사회적·문화적 재구성을 통해 민족형성으로 이어진다. 동북아시아에서는 북방 문화권과 남방 문화권, 한반도 토착 문화가 장기간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민족형성 과정은 단순한 문화 전파가 아니라 선택과 수용, 변형과 재구성의 과정을 포함하는 복합적 역사 발전 과정을 거쳐 확립하는 구조를 갖는다. 지금까지 논의한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의 구조와 한민족 형성 경로 모형을 정리하면 [표 5]와 같다.

  

 [표 5]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의 구조와 모형 

단계

핵심개념

특징

 

 

이동 경로

 

관련단계

1단계

이동

북방·남방 집단의 장거리 이동

 

 

 

 

 

 

 

 

 

 

 

 

 

 

파미르고원

(중앙아시아)

 

1단계

이동

 

 

 

 

 

 

 

 

 

 

 

 

2단계

접촉

새로운 지역에서 문화 충돌 및 교류

 

 

알타이·몽골 초원

(북방 초원지대)

 

1단계

이동

 

 

 

 

 

 

 

 

 

 

 

 

 

 

만주·요동 지역

(북방 문화권)

 

2단계

접촉

3단계

융합

생활·문화·언어·신앙 등 결합 통합

 

 

 

 

 

 

 

 

 

 

 

 

 

 

한반도 북부

(요하·한반도 접경)

 

3단계

융합

4단계

재구성

재구성을 통한

고조선·삼국 형성

 

 

 

 

 

 

 

 

 

 

 

 

 

 

한반도 전역

(문화적 확산 및 통합)

 

3~4단계 융합·재구성

 

 

 

 

 

 

 

 

 

 

 

 

5단계

민족형성

장기 융합과 재구성 후 민족형성

 

 

고조선·삼국 형성

(정치·사회적 공동체 성립)

 

4단계 재구성

 

 

⇩

 

 

 3)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 모형 개발

(1)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의 구조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이 한민족 형성의 역사적 과정을 설명한 이론이라면,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은 그 과정에서 어떠한 문화 요소들이 결합하여 한민족을 형성하였는지를 설명하는 구조적 모형이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한민족 형성을 북방 문화만의 결과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고고학 연구는 벼농사를 비롯한 남방 문화 요소가 한반도로 유입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유전학 연구 역시 한국인이 북방계 요소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남방계 요소가 결합한 구조로 되어있고, 한반도에는 선사시대부터 다양한 토착 문화가 존재하였으며, 일부 유라시아문화 요소도 장기간의 교류를 통해 유입된 것을 확인하였다. 그러므로 한민족 형성은 북방 문화권을 중심축으로 하면서 남방 문화 요소와 토착 문화 요소, 그리고 일부 유라시아문화 요소가 장기간 이동과 접촉, 융합의 과정을 거쳐 한반도에서 재구성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형성과정을 통합하여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이라는 이론으로 개념화하였다.

  

[표 6]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 개념과 구조화

 

 

북방 문화권

(요하문명·홍산문화·고조선 문화권)

→ 형성의 중심축

 

 

 

 

 

 

 

 

 

 

이동

(인구와 문화의 이동)

→ 형성의 출발

 

 

 

 

 

 

 

 

 

 

 

 

 

 

남방 문화 요소

(벼농사·해양문화)

→ 문화적 보완 요소

 

토착 문화 요소

(한반도 지역 문화)

→ 지역적 정착 기반

 

 

 

 

 

 

 

 

 

 

 

 

 

 

접촉

(문화관 교류와 상호작용)

→ 문화적 연결

 

 

 

 

 

 

 

융합

(문화 요소의 결합)

→ 새로운 공동체 형성

 

 

 

 

 

 

 

 

재구성

(사회·정치·문화적 재편)

→ 정체성 확립

 

 

 

 

 

 

 

 

민족형성

(역사적 공동체 형성)

→ 한민족 성립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은 북방 문화권을 한민족 형성의 중심축으로 설정하면서도 남방과 토착 선주민, 유라시아 문화 요소를 포괄한다. 그리고 이동과 접촉, 융합, 재구성의 역사적 과정을 통한 민족형성으로 이해하고, 북방기원설의 타당성을 유지하면서 남방기원설과 다원적기원설의 성과를 통합한다. 따라서 한민족은 단일 기원이나 단순 혼합의 산물이 아닌, 장기적인 역사 과정에서 형성된 공동체가 된다. 이는 북방기원설의 역사적 타당성을 유지하면서도 남방기원설과 다원적기원설의 연구 성과를 함께 수용하는 통합적 모형의 기본개념이 된다.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의 구조를 개념화하면 [표 6]과 같다.

 

(2) 기존 기원설과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 비교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존의 북방기원설은 문화 융합 과정을, 남방기원설은 형성의 중심축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다원적기원설은 융합의 방향성과 역사적 전개 과정을 제시하지 못하고, 파미르고원설은 실증적 기원설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존재하였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새로운 이론으로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을 제시하였다.

이 이론은 북방 문화권을 한민족 형성의 중심축으로 인정하면서, 남방 문화와 토착 문화의 역할을 함께 고려하고, 다양한 집단의 이동과 접촉, 융합 과정을 포괄적으로 수용하고, 한민족 형성 공간 범위를 파미르고원까지 확대한 것이다. 기존 기원설과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의 큰 차이점은 기존 학설은 모두 ‘정태적 기원론’이라면,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은 ‘동태적 형성과정론’에 해당한다.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다. 기존 기원설이 남하와 북상, 다중, 광역 유입에 초점을 두는 반면,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은 교류와 통합, 재구성을 통해 오늘날 한민족이 형성되었다고 본다. 지금까지 설명한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과 기존 기원설을 비교하면 [표 7]과 같다.

 

[표 7]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과 기존 기원설의 비교

구분

북방기원설

남방기원설

다원적기원설

파미르고원설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

중심축

북방

남방

복수

유라시아

융합

강점

고고학 자료

문화 교류

융합 설명

공간 확장

통합 설명

한계

남방 요소 부족

국가 형성 설명 부족

중심축 불명확

실증성 부족

보완적 통합

형성 방식

북방 중심

남방 영향

다중 융합

광역 이동

이동·접촉·융합·재구성

 

(3) 연구의 활용 방향

본 연구에서 제시한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은 후속 연구와 정책 수립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활용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민족 기원 연구를 단순한 기원지 논쟁의 차원을 넘어 민족형성과정을 설명하는 새로운 분석 틀로 활용할 수 있다. 둘째,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 학계 일부의 주변화 논리, 한민족의 고대사 해석을 둘러싼 논쟁에 대응할 수 있는 학문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셋째, 신채호의 파미르고원설을 유라시아 역사공간론으로 재해석하여 한민족 연구의 공간적 범위를 한반도와 만주로 한정하지 않고, 유라시아 차원의 광역 역사 공간으로 확대하는 연구에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넷째, 바른 역사 교육과 한민족의 전통문화와 국가 정체성 회복, 이동 경로 국가와 네트워크 구축 등에도 활용할 수 있다.

이같이 한민족 형성의 새로운 이론은 반도 사관에 매몰되어 있는 역사관과 한민족의 정체성 회복, 국가관 함양과 건전한 시민을 양성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5. 결론

 

본 연구는 연구자가 단재 신채호를 연구하면서 신채호의 파미르기원설이 한민족 기원에 관한 주요 학설인 북방기원설과 남방기원설, 다원적기원설과 어떤 관계가 있으며, 이를 종합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은 있는지? 방법이 있다면 어떤 이론과 모형을 적용할까? 등에 대한 의문점을 갖게 된 것이 연구의 배경이었다.

이상과 같은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 먼저 북방기원설과 남방기원설, 다원적기원설을 비교·분석하고, 문헌 자료와 고고학 자료, 유전학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한민족 형성과정을 재해석하고, 이를 토대로 한민족의 기원과 형성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었다.

이상과 같은 연구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려는 조사방법은 문헌 조사법과 인터넷조사법을 병행하였으며, 분석방법은 비교분석법과 기술적(記述的) 분석방법을 사용하였다. 문헌 자료와 고고학 자료, 유전학 자료에 관하여 실증적 연구를 수행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민족의 기원은 역사적 중심축이 만주와 요동을 포함한 북방 문화권에 있었고, 단군 신화와 동이 관련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로 계승된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한민족 형성은 단일 혈통이나 단일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다양한 집단과 문화가 장기간 상호작용하며 형성된 역사적 공동체로 나타났다. 셋째, 요하문명과 홍산문화, 비파형 동검 문화권의 고고학적 근거와 유전학 연구는 한민족이 북방계 요소를 중심축으로 다양한 계통이 결합한 다층 구조로 나타났다.

실증적 분석에서 규명된 결과를 토대로 제시한 한민족의 기원과 이동에 관한 새로운 이론과 모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채호의 파미르고원설을 유라시아 이동 네트워크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직접적인 기원설이 아니라, 한민족의 역사 공간을 북방에서 파미르고원까지 확대한 「역사공간론」으로 설명하였다. 둘째, 민족형성을 이동과 접촉, 융합, 재구성의 역사적 과정으로 설명하는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을 제시하였다. 셋째, 통합 민족형성 이론을 한민족에 적용한 해석모형으로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이론과 모형은 한민족 형성을 만주와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더 넓은 동북아 및 유라시아 차원으로 확대하는 새로운 틀로 작용할 것이다.

본 연구의 학문적 의의는 첫째, 한민족 기원 연구를 단순한 기원지 논쟁에서 벗어나 민족형성과정 연구로 전환하고, 문헌 자료와 고고학 자료, 유전학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함으로써 한민족 형성을 더 입체적이고 동태적으로 설명하는 통합적 분석 틀을 제시한 것이다. 둘째, 본 연구가 제안한 두 가지 이론은 북방기원설의 중심축 논리와 다원적기원설의 융합 논리를 연결하는 새로운 해석모형으로서 학문적 의의가 있다. 셋째, 신채호의 파미르고원설을 유라시아 역사공간론으로 재해석함으로써 단재 역사학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는 이러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몇 가지 한계와 보완과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 본 연구는 기존 문헌과 선행연구를 중심으로 수행된 문헌연구 성격으로 고대 문헌에 대한 분석을 충분히 실시하지 못하였다. 둘째, 연구자가 유전학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하여 최근 연구 성과의 독자적인 검증을 수행하지 못하였다. 셋째, 「동태적 통합 민족형성론」과 「북방 중심 융합 형성론」은 기존 연구 성과를 종합하여 이론적 모형을 제시하였지만, 구체적인 사례 연구와 비교 연구를 수행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한계성과 보완과제는 연구자가 심도 있는 후속 연구를 통하여 지속해서 발전시켜 나갈 예정이다.

연구자가 본연구과제를 진행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점은 향후 한민족 형성 연구는 특정 학문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확대하여 융합연구사업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대륙 사관 연구를 국가전략 연구과제로 채택하고, 이를 위해 중앙 유라시아 국가들과 역사 네트워크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지금도 지울 수 없다.

한민족의 기원에 관한 연구는 단순한 과거사 규명의 차원을 넘어 국가 정체성과 역사 주권, 동북아 역사 질서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본 연구의 부족한 부분은 연구자의 심도 있는 연구와 노력으로 일정 부분은 해소되겠지만, 정부가 담당해야 할 국가 정체성과 역사 주권 부분은 단시일 내에 해결될 전망은 거의 밝지 않다.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곧 한계에 봉착해 우리는 본향을 잃어버리는 민족이 될 것이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심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정부와 관련 단체의 관심과 후속 연구자들의 열정적인 탐구 정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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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번역·편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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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Dallet. 󰡔조선교회사󰡕. 저, 정기수 옮김. 서울: 탐구당. 2015. 

Jared Diamond, 김진준 옮김, 󰡔총, 균, 쇠󰡕. 서울: 문학사상.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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