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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발해는 중국의 지방정부가 맞다. (1부)
고구려와 발해는 중국의 지명, 고구리와 대진국으로 불러야
 
성훈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2/12/03 [15:34]
아래 자료는 동북공정 타파 '개천 5909주년 기념 고구리 학술대회'에서 발제된 내용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을 이론적으로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자료입니다


<반박자료 1> 중국의 지방정부인 高句驪(고구려)

중국이 동북공정에서 주장하기를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부”라 하면서 그 기록적 근거로 <한서지리지>를 들고 있다. 아래 <한서지리지>에 의하면, 고구려는 유주(幽州)의 현토군(玄免郡)에 속한 3개 현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중국의 주장은 옳다고 할 수 있다.

(玄菟郡 현토군) 武帝元封四年开。高句骊,莽曰下句骊。属幽州(유주에 속한다)。户四万五千六。口二十二万一千八百四十五。县三:高句骊(고구려),辽山,辽水所出,西南至辽队入大辽水。又有南苏水,西北经塞外。上殷台(상은대),莽曰下殷。西盖马(서개마)。马訾水西北入盐难水,西南至西安平入海,过郡二,行二千一百里。莽曰玄菟亭。
(유주에 속한 현토군에는 고구려, 상은대, 서개마의 3개 현이 있다)  

그런데 <한서지리지> 원문을 잘 들여다보면, 중국이 말하는 고구려라는 지명의 려자는 말 馬자 변에 수려할 麗자가 붙은 가라말(검을) 驪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유주의 현토군에 속한 현은 高句驪현이거늘, 그걸 高句麗라고 써놓고 중국의 지방정부라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반박자료 2> 고주몽 성제께서 세운 나라는 고구리(高句麗) 

<단군세기> 47대 고열가단군조의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는 해모수가 태어난 고향이라 고구리라 칭하였다(高句麗乃解慕漱之生鄕故亦稱高句麗也)”고 한다. 즉 고주몽 성제께서 나라를 세우고는 국호를 고조부 해모수의 고향 지명을 가져다가 국호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앞에서의 해모수의 고향 高句麗는 지명이기 때문에 ‘고구려’로 발음해야 하며,
뒤의 高句麗는 국호이기 때문에 ‘고구리’로 발음해야 마땅하다.
그 근거는 위 한자사전 자해 ⑩의 설명에 따라 나라이름으로 할 때는 본음을 ‘리’로 한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추모대제 고주몽성제가 세운 나라를 당연히 ‘고구리’로 불러야 할 것이다. 그래야 동북공정을 파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 민족의 위대한 나라 高句麗를 '고구리'로 발음하지 않고 '고구려'로 발음하는 것은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부'라고 하는 동북공정을 인정하는 행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수려할 麗자가 나라 이름일 경우는 '리'로 발음한다는 한자사전의 설명   

 
<반박자료 3> 대조영의 나라는 발해(渤海)가 아닌 대진(大震)

668년 고구리가 망하자 장수 대중상이 바로 후고구리(後高句麗)를 세웠고, 아들 대조영이 당나라 장수 이해고를 천문령에서 격파 후 국가체제를 정비하고는 국호를 대진(大震)으로 바꾸었다. 즉 우리가 우리를 부르던 국호는 대진국이었다. 즉 고구리라는 나라는 망하지 않고 국호와 태왕의 성씨만 바뀌어 그대로 전해진 것이다.  

발해(渤海)는 당나라가 일방적으로 불렀던 국호로, 713년 당나라 측천무후가 대조영을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 홀한주도독(左驍衛大將軍渤海郡王忽汗州都督)‘으로 책봉하면서부터 우리의 대진국은 당나라로부터 일방적으로 발해로 불리게 된다. 우리가 조선민주주의공화국(북조선)을 북한(北韓)으로 부르고, 북한이 대한민국(한국)을 남조선(南朝鮮)이라고 자기네 임의대로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로 당나라가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일방적으로 책봉(?)한 것은 대조영의 주 활동무대가 바로 발해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나라 때 발해는 현 중국의 내해 또는 동만주가 아니라 당시 하남성과 산동성 사이에 있었던 100리 X 300리 크기의 내륙호수인 대야택(大野澤)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조영이 세운 나라 대진국은 동만주 일대가 아니라 대야택 부근 북부 하남성 일대로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물론 유적이 발견된 동만주도 대진국에 속해 9,000리 강역의 해동성국(海東盛國)이 되었다. 
 
▲ 하남성과 산동성 사이에 있던 발해는 현 중국의 내해와 동만주로 이동 되었다.
 

발해는 원래 어디인가?

발해(渤海)를 검색하면 대야택(大野澤) 또는 거야택(巨野澤)이 나타나는데 같은 지명이다.
<중국고대지명대사전>으로 두 지명을 검색 해보면 다음과 같다.

(번역) 대야택 : 거야 또는 거야택이라 부르며 고대의 저명한 호수이다. 거야택은 현 산동성 거야현 북쪽에 있고, 고대에는 제수와 사수가 서로 연결되어 접해 있었다. 당나라 때의 거야택은 수면이 남북 삼백리 동서 약 백리이며 대야택이라고도 불렸다. 송나라 때 거야택의 남부는 마르고 땅이 굳어져 평지가 되었고, 북부는 양산박의 일부가 되었다. 그 가운데 수초가 많이 살고, 물고기와 벌레가 아주 많다.
(원문) (大野澤) : “钜野”又称钜野泽,是古代著名的水泊,《尚书》、《周礼》等古籍中均有记载。野泽的故址在今山东省钜野县北,在古代是与济水、泗水相连接的。唐代的钜野泽,水面南北长三百里,东西宽百余里,号称大野泽。宋代时,钜野泽的南部干涸为平地,北部成为梁山泊的一部分,其中水草丛生,鱼虫很多。

(번역) 거야 : 원래는 거야로 거야택으로 인해 이름을 얻었다하며 일명 대야택이라 하며 오대시대 이후 호수가 말라 평지가 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거야, 가상, 운성, 양산의 지면이다. (참고로 천자문의 ‘택유거야(澤有鉅野)’란 4자성어가 바로 대야택이다.)
(원문) 巨野,原为鉅野,因鉅野泽而得名。鉅野泽,又名大野泽,是古代有名的湖泊沼泽地。古时候童子启蒙读物《千字文》(天地玄黄,宇宙洪荒),其中有一句“泽有鉅野”,就是指大野泽。大野泽在现在山东巨野的北面,到唐朝时,湖面南北长三百余里,东西宽百余里。五代以后,湖面自南向北逐渐干涸,中南部成为平地,也就是现在巨野、嘉祥、郓城、梁山的地面,其北部就成为梁山泊。
 
▲ 고대 거야택은 하남성고 산동성 사이에 있었던 내륙호수로 지금의 거야, 가상, 운성, 양산, 하택 일대이고, 동평호 부터 미산호까지의 호수가 그 흔적이다.  
 

그렇다면 위 대야택과 거야택은 발해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대야택(거야택)과 발해가 같다는 자료는 <해경신탐(海經新探)>으로 산해경(山海經)을 탐구하여 설명한 자료이다.

(번역) 발해는 거야택의 옛 이름으로 이 이름은 한나라 초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전국책 조나라책>에 설명된 “제가 발해를 건너다”의 발해는 바로 거야택이다.
<한서 무제기>의 원광 3년 봄 하수(황하)가 범람해 언덕에서 꺾여 동남류해서 발해로 들어간다는 발해는 거야택이다. 그리고 거야는 동해라고 불렀다.
<사기 항우본기>에서 “항우가 이미 서쪽에서 와 동해로 정했다.”는 동해는 거야를 가르친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진서.지도기>를 인용한 <수경주>에서 전하기를 “름구란 자는 춘추시대의 제나라 도읍인 동해 사람임이 밝혀졌다. 땅은 현재 범현 경내에 있다. 멀리 한나라와 위나라의 동해군이고 발해군 도읍은 동아에 비해 아주 멀다. 위.진 시대의 거야택은 사람들에 의해 동해로 불렸다. 거야가 바다(해)라는 이름으로 불린 건 2천년이 지속된다, 
(원문) 勃海是钜野泽的古名。这个古名一直袭用到汉初。
《战国策·赵策》中苏秦说:“秦攻赵则韩军宜阳,楚军武关,魏军河外,齐涉勃海,燕出锐师以佐之。”这个勃海就是钜野泽。
《史记·河渠书》云:“今天子元光之中而河决于瓠子,东南注钜野,通于淮泗。”
《汉书·武帝记》说是“元光三年春,河水徙从顿丘,东南流,入勃海。”两文对照,可知这个勃海还是钜野。又,钜野因此也称东海。
《史记·项羽本纪》称,汉之四年,因为彭越攻东阿,杀楚将,项羽回师破走彭越,接着说:“项王已定东海,来西,与汉俱临广武而军。”东阿距勃海很远,这个东海无疑义是指钜野。
《水经注》引《晋书·地道记》云:“廪丘者,春秋之齐邑,实表东海者也。”地在今范县境内,距汉、魏的东海郡、渤海郡都比东阿更远,说明魏晋时的钜野还被人称为东海。钜野的海名持续了两千来年。

위의 설명에 따르면 발해는 대야택(거야택)의 고대 명칭을 말하는 것으로 동해(東海)로 불리기도 했으며, 바다(x海)라는 호칭으로 2천년 동안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물증으로는 청나라가 망하고 민국이 성립된 1922년 영국에서 발행된 중국 지도에 현재 중국의 내해는 1922년에 발해(渤海)라 불리지 않고 북직예해(北直隸海)로 불렸다. 

참고로 하북성의 역사연혁을 보면, 현재의 하북성은 명나라 때는 북직례(北直隷)로 불렸고, 1645년 직예(直隸)로 개칭되며, 1669년 직예성(直隸省)으로 불리게 된다. 1928년 6월 20일 국민정부의 결정을 거쳐 직예를 하북성(河北省)으로 바꾸고, 북경을 북평으로 바꾼다. 그래서 1922년 지도에 중국의 내해가 발해가 아닌 북직예해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다.
 
▲ 1928년 지명이 변경되었다는 현재 하북성의 연혁. 이 때 발해라는 지명이 지금의 중국 내해로 옮겨졌다. 
▲ 1922년 영국에서 발행된 지도에는 현 중국의 내해가 발해만이 아니라 북직례만으로 되어 있다.


▲ 일제식민사학의 반도사관으로 얼룩진 국사교과서의 통일신라와 발해    

중국은 이러한 점을 교묘히 악용하여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어불성설의 논리로 동북공정을 펴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고주몽이 세운 나라 高句麗는 ‘고구려’로 발음해서는 안 되고, 한자사전의 설명대로 ‘고구리’로 발음해야 한다. 대조영이 세운 나라도 ‘발해’가 아니라 ‘대진국’으로 불러야 한다. 고구리와 대진국을 고구려와 발해로 부르는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을 그대로 인정하는 아주 위험한 행위인 것이다. 

아울러 ‘통일신라’라는 용어의 사용은 고구리의 정통성을 그대로 이은 대진국을 우리 역사에서 삭제하는 아주 위험한 행위이므로, 후기 신라와 대진국의 남북국시대로 불러야 옳을 것이다.
 
 
곧 이어지는 (2부)에서는 진시황이 쌓은 장성의 모습과 위치가 밝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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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12/03 [15:34]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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