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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천왕의 제사와 그 사당의 의미 (5부)
전통적 문화콘텐츠의 부활을 넘어 21세기의 참된 가치를 추구
 
박선식 한국인문과학예술교육원 대표 기사입력  2012/12/31 [11:14]
Ⅴ. 맺는 글

이제껏 치우에 대한 존숭의식에 따른 제사의 역사적 사례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앞서 거론했듯이 중국의 진한 시기부터 존재했던 치우에 대한 제사와는 별도로 우리 선조들은 나름대로 치우 제사를 봉행하였다. 그것은 신라의 승려 안함로가 지은 『삼성기전 하』에서부터 보이는 치우에 대한 긍정적 서술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조선조 북애자의 저술인『규원사화』를 통해 단군왕검 시기에 치우의 사당을 엄려홀(奄慮忽)에 조성된 것을 알 수 있었고, 이암의 저술인「단군세기」를 통해 16세 단군 위나에 의한 환인과 환웅, 치우와 단군왕검의 제사가 종합적으로 실행된 점을 알게 되었다. 이후 다시 『규원사화』를 통해 고려조의 팔성당에 역시 치우가 존숭의 대상으로서 신격으로 모셔졌고, 고려조와 조선조에 걸친 대청관에서의 마제와 조선조의 마제단을 통한 치우에 대한 의전적 제사가 역시 이루어진 점을 알 수 있었다.  

▲ 경주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치우 관련 설화의 일면을 전하는 기사     © 편집부


그러나 상고시기의 치우제사는 고증하기 어려운 애로가 따르고, 고려조와 조선조에 이루어진 치우 관련 제사 행위는 다분히 동아시아 공통의 문화적 의전행사의 한 모습인 양 관습적 양상의 하나로 비추어질 수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군왕검의 시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엄독홀의 치우사당을 주목하여, 그 조성 경위를 알유의 변란과 연관한 전국 각처의 국가 구성원의 일치된 단결성을 꾀한 측면으로 추정해보았다.  

이어 검토한 16세 단군 위나의 종합적 제사 행사의 경우는 매우 고무적인 내용이다. 오늘날 치우제사를 복원하는 중요한 정보들을 전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하기 때문이다. 해당 제사 행위는 고구려 유적지인 위나암성의 존재로 16세 단군 위나의 행적에 일면 사실성이 더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낄 수 있어 더욱 관심이 집중된다 하겠다.  

필자는 당시에 이루어진 축제적 제사행위를 앞선 시기인 15세 단군 대음 때의 홍수 발생에 따른 민생의 피폐함과 금철(金鐵)과 고유(膏油) 등의 물자조달에 따른 인력의 고통과 연관지어 살펴보았다. 다시 말해 16세 단군 위나가 종합적인 제사행사를 추진한 데는 사회의 어수선함과 함께 자신이 왕실의 적장자가 아닌 출신의 관료였다는 점과도 연관되었다고 본 것이다. 

달리 말해 위나 단군은 자신의 백성들을 위무함은 물론, 자신의 정치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민족적인 존경의 상징적 인물들을 모두 한꺼번에 제사로 봉행하는 행사를 추진하고 그에 따른 자연스런 통치력의 장악을 꾀하고자 했던 측면을 제기했다. 결국 당시의 종합 제전은 정치적 의도와 맞물린 종합적 문화행사였던 것으로 헤아려 본 것이다. 

그런데 상고시기 이후 삼국시기에 이르러 실제로 우리 땅에서 치우에 관한 언급이 흔치 않은 점은, 우선 신라사회에 치우와 황제 헌원에 관한 인식의 공존 내지 혼재에 따른 현상으로 짐작해보았다. 석학적 학승 안함로가 일찌감치 치우의 위대성을 『삼성기전 하』에서 서술하고 있으나 김유신 등의 유력가문에서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황제헌원의 후예로 자처한 점을 통해 신라사회 내 세계관의 혼재양상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점을 두고 보아 신라에는 전통적 자존감과 중국적 권위에 가탁하려는 분위기가 모두 존재했을 개연성을 쉽게 추정해 볼 수 있다. 물론 김유신 가문의 경우 실제 황제 헌원의 후예일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다. 상고시기에 황제 헌원의 세력은 충분히 우리 환단의 철학과 문화에 귀를 기울이고 또 학습해 갔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가지의 세계관이 공존함과 그에 따른 문화적 정체성의 혼재양상은 쉽게 정리될 수 없었을 터이다. 그러므로 상고시기의 치우와 같은 탁월하고 절륜한 기술 장인의 영웅적 이미지가 비형랑의 사례를 통해 새롭게 변형되었을 개연성을 추정해보았다. 다시 말해 하루 만에 다리를 뚝딱 세워놓은 귀신의 무리가 치우를 따르던 숲 도깨비 ‘망량’과 연관이 있다는 추정을 해본 셈이다. 

그것은 마침내 치우의 추종세력의 하나였던 망량세력을 뒤이은 목랑, 곧 나무 도깨비의 이미지와 중첩되고, 백제의 무령왕비의 팔찌를 만든 ‘다리(多利)’라는 장인을 포함하는 일본의 다다라(多多羅) 신앙과도 이어지는 동아시아 기술장인 영웅의 이미지로 재구성되었을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그리하여 신라와 고려에 걸쳐 숲 나무 도깨비 신앙은 ‘豆豆里’에서 ‘豆豆乙’ 등의 음운변화를 드러내며 이어졌다는 것이었음을 거론했다. 

한편 북애자가 말한 『규원사화』속의 고려시기 팔성당 내 치우의 상징성은 단군왕검 시기의 엄려홀 치우사당의 정치적, 문화적 성격과도 무관치 않게 느껴진다. 더불어 필자는 팔성당의 조영은 단순한 건축사업의 차원을 넘어 우리 韓人사회에서 이룩된 상고 철학과 역사성 그리고 강렬한 자존의식이 뭉뚱그려 상징화되는 문화적 대사건의 의미가 있음을 거론하였다. 그런데 이후 이암의 강건한 자주적 역사관의 소산인『태백진훈』의 성향과 이승휴의『제왕운기』가 드러내는 성향은 마치 신라 사회에 혼재했던 전통적 자존감과 중국적 권위의 충돌을 다시 보게 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후 고려조의 치우 제사는 대청관의 마제를 통해 이루어졌고, 조선조의 마제단의 설치에 따른 공식적 의전행사의 성격으로 정착된 느낌이다. 더불어 둑기에 대한 존숭제의인 독제의 추진양상을 보면, 독제가 단지 우리 한인의 문화적 전통에 바탕을 둔 행사였다고 단언하기 힘든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치우의 머리 형상을 닮았다는 ‘이의실록’의 내용에만 기대어 우리 역사 전통의 문화행사라고 주장하기에는 상당한 부담감을 떨칠 수가 없으며, 돌궐지역이나 유구 등지에도 독기 존숭의례가 존재했다는 사실로서 우리만의 고유 풍속이라 규정하기는 좀 곤란한 것이다.

여기서 다시 짚고 넘어갈 사항은 절륜의 기술장인의 이미지를 지닌 치우의 위대성이 조선조에 와서 ‘智爲’라고 하는 변형된 이미지로 꿈틀되었을 가능성이다. 북애자는 그러한 점을 왜곡된 것으로 치부했으나, 만능적 기술영웅인 치우는 ‘木手’라는 뜻을 지닌 ‘智爲’로 얼마든지 이미지의 변형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지위’라는 탁월한 기술장인의 이미지는 어쩌면 신라와 고려를 잇는 숲 나무 도깨비신앙인 ‘두두리’와 ‘두두을’과의 강한 민간신앙적 연계성을 느끼게도 한다. 따라서 고려 무신란의 한 중심인물이던 이의민이 ‘두두을’을 깊이 신봉하여 사적으로 제사진낸 점은 매우 주목할 바라 할 수 있다. 

이상으로 치우와 관련한 여러 문헌기록상의 숭앙 사례를 거론했는데, 치우에 대한 존숭의 태도와 그 의례는 상고시기에 완성되었고, 고려조와 조선조에 이르러 다분히 의전적 관행의 하나로 그친 측면이 있었다고 요약해볼 수 있겠다. 

이제 21세기의 한국사회에서 지난 시기의 치우 제사와 그 사당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작업이 필요할 듯 싶다. 치우를 먼 옛날의 설화적 영웅으로 치부하면 그만이겠으나, 치우는 진정한 역동성의 롤 모델로 손색이 없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역동적 활력의 상징적 인물로 목표를 향해 투지를 불태우는 인간상으로 치우를 조명하여, 그에 따른 치우사당을 복원한다면 열정의 화신을 통해 현대인은 삶의 고단함을 극복하며 정신적 치유마저 소망해볼 수 있을 터이다.

치우사당의 복원을 통해 우리는 동아시아 상고시기 절륜의 기술장인 이미지마저 갖춘 치우를 다시 맞이할 것이고, 전통적 문화콘텐츠의 부활이란 통상적 의미를 넘어 21세기 참된 기술사회의 가치까지 되뇌여 보게 되는 철학적 고뇌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치우사당은 그러한 전당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할 것이다.

향후 그에 관련한 구체적인 조사와 연구로 우리 의 을 정립하여야 할 것이다. 더불어 그러한 전통에 바탕으로 두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 기뻐할 수 있다면, 역사 속의 상고시기 제사와 축제는 그저 박제화 된 전통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참된 인문학적 보배로 더욱 가치를 드러낼 것이다.  

<참 고 문 헌> 
◇ 자료 : 『管子』『十八史略』『孟子』『大明集禮』『東典考』『삼국사기』『제왕운기』
『太白眞訓』『高麗史』『조선왕조실록』『악학궤범』『신증동국여지승람』『역대병요』『성호사설』『규원사화』『簡易集』『巫黨內歷』『조선무속고』『조선도교사

◇ 일반 논저 및 단행본
박선식, ‘동아시아 상고시대 탁록전쟁의 시론적 검토’, 『치우연구』(창간호) (사)한배달 치우학회, 2001.
박선식,『위풍당당 한국사』, 베이직북스, 2008 .
박선식,『치세에 붓을 들고 난세에 칼을 차니』, 연경미디어, 2005.
장기근,『삼황오제의 덕치』, 명문당, 2003.
이두현,『한국무속과 연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7.
『국역 통영향토지』, 통영문화원,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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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12/31 [11:14]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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