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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일본 왕들은 모두 백제왕족 (6/8부)
 
편집부 기사입력  2012/05/24 [17:00]

우리에게 의자왕의 누이로 알려져 있는 제명여왕은 2번이나 왜왕위에 오른 인물로 이름은 보황녀(寶皇女)라고 <일본서기>에 기록이 되어있다. 남편인 서명(舒明)왕의 뒤를 이어 여왕에 올라 황극(皇極 642~645)왕이 되었다가, 시동생인 효덕(孝德)왕에게 양위했다가, 효덕의 사후 다시 37대 제명(齊明 655~661)왕에 오른다. 백제를 구원할 전쟁 준비를 하던 중 661년 68세의 나이로 죽자 아들인 천지(天智)왕이 그 뒤를 잇는다. 

<일본서기>에서 제명여왕을 보황녀(寶皇女)라 한 것은 황제의 딸로 이름이 보(寶)란 말이다. 백제황가는 대대로 외자 이름을 쓴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제명여왕의 이름은 부여보(夫餘寶)이다. 여하튼 그녀는 남동생인 백제 의자왕이 당나라에 잡혀갔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 복신의 지원요청에 의해 무조건 군대파병을 결정한다. 

이 때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풍 왕자는 백제에서 파견한 일궁부(日宮府)의 대사로 있으면서 655년 1월 고모를 다시 왕위에 올려놓은 후 측근에서 보좌하기 위해 일궁부대사의 자리를 아우인 부여용에게 맡기고는 실질적인 야마토왜(大和倭)의 행정부를 이끌던 인물이었다. 백제 의자왕이 잡혀가자 부여풍은 왕위에 오르기 위해 왜병을 이끌고 본국으로 돌아간다.

▲ 주유가 항복하였다. 일을 어떻게 할 수 없다. 백제의 이름은 오늘로 끊어졌다. 조상의 분묘가 있는 곳을 어찌 또 갈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제명여왕의 남편인 서명왕은 민달왕의 손자이고, 민달왕은 계체왕의 손자이다. 일왕실의 직계계보를 정리해 보면 즉 26대 계체(繼體)왕 --> 29대 흠명(欽明)왕 --> 30대 민달(敏達)왕 --> (彦人大兄王子) --> 34대 서명(舒明)왕 --> 38대 천지(天智)왕으로 혈통이 이어지고 있다. 즉 실질적으로 왜군을 백제에 파견한 천지왕은 계체왕의 5세손이며, 민달왕의 증손자이며, 서명왕의 아들로 백제왕족이었던 것이다. 

일본 고대왕실의 족보인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의 황족항목에 따르면, “대원진인(大原眞人)은 민달왕의 손자이며 백제왕족이다.(大原眞人, 出自 諡敏達孫 百濟王也).”라는 기록이 있다. 대원진인이 백제왕족이면 민달왕도 백제왕족이다. 따라서 민달왕의 조부되는 계체왕과 손자 되는 서명왕도 백제왕족인 것이다. 천지왕은 서명왕의 아들이므로 그도 당연히 백제왕족이다. 

신찬성씨록에는 26대 계체왕 때 왜왕실의 성이 바뀐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일본서기>에도 계체왕은 어느 왕의 몇째 아들이라는 기록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남대적(南大迹=계체)왕은 응신왕의 5세손이며 언주인왕(彦主人王)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찬성씨록의 기록대로 왜왕실의 성이 계체왕 때 바뀐 것이다. 

신찬성씨록으로 본 백제왕족인 왜왕들

▲ 33대 추고왕의 백제관련 기록인 부상략기
1) 26대 계체왕 (繼體 507~531)

왜왕가를 백제왕족으로 새로 연 인물이다. 일본의 국보 2호인 인물화상경의 남제왕(男弟王)의 주인공이다. <일본서기>에 82세로 죽었다고 되어있어 무녕대왕의 동생인지 여부는 분명치 않으나, 일본학자들도 남제왕이 계체왕이라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형제국관계의 동생나라의 왕인 것임은 틀림없다 하겠다. 

2) 29대 흠명왕 (欽明 539-572)
백제 26대 성왕은 직접 백제와 왜국을 넘나들었으며, 554년 이후에는 왕자인 위덕왕에게 왕위를 계승시키고 완전히 백제를 떠나 왜국으로 건너가 왜왕인 킨메이왕(欽明, 흠명왕)으로 군림했다는 주장도 있다. (홍윤기교수 ‘일본 고대사 문제점의 새로운 규명’ [일본학] 24집, 동국대 일본학연구소 발행 논문집, 2005.12.)

3) 30대 민달왕 (敏達 572-585)
즉위하자마자 백제의 대정(大井)에 궁을 지었다. 홍윤기교수에 따르면, 일본의 우에다 박사는 2007년 5월 14일 자택에서 815년 일본왕실에서 편찬한 <신찬성씨록>을 직접 꺼내서 보여주며 “일본 제30대 민달왕의 생부는 백제 제26대 성왕이며, 민달왕은 백제 제27대 위덕왕의 친동생이다. 백제 제24대 동성왕과 제25대 무령왕은 두 분 모두 일본에서 모국 백제로 귀국하여 백제왕이 되었다고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증언했다.

4) 33대 추고여왕 (推古 592-628)
흠명왕의 딸로 오빠인 민달왕의 왕후가 되고 나중에 추고여왕으로 등극한다. 스이코 여왕은 찬란한 백제의 불교문화인 일본 '아스카 문화'를 일으킨다. 13세기에 편찬된 <부상략기>에 따르면, “여왕 원년 1월, 한창 건축 중이던 아스카데라 찰주를 세우는 법요 때 만조백관이 모두 백제 옷을 입었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기뻐했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있다. 

5) 34대 서명왕 (舒明 629∼641)
민달왕의 손자로 의자왕의 누이인 부여보(나중에 황극왕과 제명왕)를 왕후로 맞아들인다. 11년 7월 “금년에 대궁(百濟宮) 및 대사(百濟大寺)를 만들겠다.”고 말하였고, 백제천(百濟川) 곁을 궁처로 하였다.
13년 10월 백제궁에서 승하하고, 궁 북쪽에 빈궁을 설치하였다. 이를 백제의 대빈(大殯)이라 한다고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다. 

일본의 저명한 사학자인 사에키 아리키요(佐伯有淸)교수는 "조메이천황은 '구다라천황(百濟天皇)'이라고 불리었을 것이다." 라고 1970년 '신찬성씨록연구'를 발표했다. 
위에서 보다시피 왜왕실의 혈통이 계체왕 때부터 백제왕족으로 확실히 바뀐 것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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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5/24 [17:00]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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