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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중국 본토를 지배한 대제국이었죠”
[인터뷰]성헌식 고구려역사저널 편집인…황하 이북 강역 역사적 근거 제시
 
스카이 데일리 이창호기자 기사입력  2013/06/26 [14:31]
 
▲ 성헌식 편집인(고구려역사저널)     © 편집부
(편집자 주) 황하 이북은 모두 고구려가 지배한 땅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는 성헌식(56) 고구려역사저널 편집인은 역사에 관심을 갖고 스스로 역사연구를 한 재야사학가다. 성헌식 편집인이 운영하는 고구려역사저널은 지난해 10월 발행을 시작한 인터넷 신문이다. 성 편집인이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 활동의 일환이다.
 
사단법인인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는 2004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 역사에 관심있는 시민들이 모여 만든 조직이다.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부로 격하해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에 대항하기 위해 고구려 역사를 연구하고 제대로된 역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구려 역사기념관 건립도 추진한 바 있다. 성 편집인은 2011년부터 이 모임에 함께 하고 있다. 사무국장은 지난해부터 맡았다.
 
봉제업을 하던 성 편집인은 업황이 악화되자 사업을 그만두고 중국 진출을 모색하게 된다. 결국 2002년 중국에 건너갔다. 사업을 하기 위해 중국어도 공부했다. 이후 중국 인터넷을 검색하며 중국의 역사왜곡 현실에 대해 알게 됐다.
 
스스로 역사서와 인터넷 검색을 하며 연구한 끝에 성 편집인은 안시성이 중원 한 가운데, 황하가 꺾이는 지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성 편집인에 따르면 중국의 땅은 중원 중서부 일부 지역에 불과했고 과거에는 영토가 작았다고 한다. 황하 북쪽부터 한반도까지가 모두 고구려 땅이었고 황하 아래로 신라와 백제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2010년에는 이같은 주장을 담은 ‘천년 만에 밝혀진 안시성과 살수’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스카이데일리가 동북공정에 맞서 고구려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성헌식 고구려역사저널 편집인을 만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작은 안시성의 실제 위치가 어디인지가 궁금하다는 단순한 의문이었다. 이를 위해 백이·숙제의 무덤이 있는 수양산의 실제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황하가 꺾이는 한 구석, 현재는 산시성(山西省)의 최남단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결국 “황하 이북은 모두 고구려가 지배한 땅”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성헌식(56) 고구려역사저널 편집인의 주장은 기존 역사학계는 물론 재야사학계에서도 논란이 될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심지어 재야사학계에서도 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지금은 널리 퍼졌지만 처음에는 홀로 고군분투했답니다”
 
성헌식 편집인이 운영하는 고구려역사저널은 지난해 10월 발행을 시작한 인터넷 신문이다. 성 편집인이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 활동의 일환이다. 사단법인인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는 2004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 역사에 관심있는 시민들이 모여 만든 조직이다.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부로 격하해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에 대항하기 위해 고구려 역사를 연구하고 제대로된 역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구려 역사기념관 건립도 추진한 바 있다. 성 편집인은 2011년부터 이 모임에 함께 하고 있다. 사무국장은 지난해부터 맡았다.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는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에 위치한 구리시행정복지센터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구리시에는 아차산 인근에 고구려 역사유적지가 다수 위치해 있으며 고구려 역사문화 보존을 위한 다양한 활동이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보전회 사무실에서 만난 성 편집인은 중국이 역사를 왜곡하는 이른바 ‘동북공정’이 70년대부터 조직적으로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역사를 왜곡해 만든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감정이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대해서는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반감이 남아있는 반면 중국에 대한 감정은 그와 다른 것 같습니다”
 
사업하러 중국 갔다 역사에 헌신하게 돼
 
▲ 성헌식 편집인은 중국의 역사서와 지도 등을 근거로 고구려가 황하 이북 일대를 지배했다고 주장했다.
 
 
▲ 성 편집인이 펴낸 ‘천년만에 밝혀진 안시성과 살수’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한 성 편집인은 이전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으나 전문적으로 역사를 전공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전에는 관심 많은 네티즌 수준”이었다고 했다. 봉제업을 하던 성 편집인은 업황이 악화되자 사업을 그만두고 중국 진출을 모색하게 된다. 결국 2002년 중국에 건너갔다. 사업을 하기 위해 중국어도 공부했다. 이것이 성 편집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인터넷을 들어가서 ‘안시성’이라고 검색을 해봤습니다. 이상한 내용이 중국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재미를 위한 활동이었다. 중국 역사서와 인터넷의 정보들을 검색하며 홀로 공부하다가 직접 안시성을 찾아나서게 됐다.
 
“제가 사업을 위해 중국에서 머문 곳이 중국의 친황다오(秦皇島) 시입니다. 그곳은 만리장성의 시작점이자 백이·숙제의 무덤 등이 있어요. 중국이 1970년대부터 동북공정을 위해 조성한 역사왜곡의 현장입니다”
 
중국 기록을 검토한 결과 성 편집인은 안시성이 중원 한 가운데, 황하가 꺾이는 지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성 편집인에 따르면 중국의 땅은 중원 중서부 일부 지역에 불과했고 과거에는 영토가 작았다고 한다. 황하 북쪽부터 한반도까지가 모두 고구려 땅이었고 황하 아래로 신라와 백제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중국 땅이 옛날부터 자기네 땅이었다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를 합리화시키는 것이 중국의 동북공정이구요. 그 동북공정의 대표적인 사례가 만리장성입니다”
 
성 편집인은 만리장성 역시 원래 황하 아래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고구려의 땅이었던 곳을 중국 땅이라고 왜곡하기 위해 지금의 만리장성을 조작해냈다는 것이다.
 
2010년에는 이같은 주장을 담은 ‘천년 만에 밝혀진 안시성과 살수’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런 연구에 빠지게 되면서 애초에 하려던 사업은 팽개쳐뒀다. 중국에서 활동하다 2009년 부친이 별세하면서 한국에 돌아오게 된 성 편집인은 이후에도 고구려역사 복원을 직업 삼아 연구활동을 벌여왔다. 2002년부터 시작한 고구려역사 연구가 벌써 10년을 넘었다.
 
고구려역사 연구나 상고사 전문 인터넷신문을 운영하는 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사실 힘들다고 성 편집인은 털어놨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열정은 변함이 없다. “사람들은 ‘고구려가 밥먹여 주냐?’고 합니다. 밥 먹여주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자기 조상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차원의 활동입니다”
 
▲ 고구려역사보전회가 설립을 추진한 고구려역사기념관 조감도.     © 편집부
 
▲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는 올 4월 국회도서관에서 ‘광개토호태왕 학술세미나’ 개최를 주관하기도 했다.     © 편집부
 
 
‘신당서 열전 145-동이전’의 고구려 위치 
 
(원문) 高丽,本扶馀别种也。地东跨海距新罗,南亦跨海距百济,西北度辽水与营州接,北靺鞨。其君居平壤城,亦谓长安城,汉乐浪郡也,去京师五千里 而赢随山屈缭为郛, 南涯浿水,王筑宫其左。又有国内城、汉城,号别都。 
(번역) 고리는 본부여의 또 다른 이름이다. 땅 동으로 바다를 건너면 신라가 있고 남으로 바다를 건너면 백제가 있다. 서북에서 요수를 건너면 영주와 접하고 북쪽은 말갈이 있다. 그 나라 임금은 평양성 또는 장안성이라 일컫는 곳에 기거하며 한나라 낙랑군 땅이었다. 경사(장안)로 부터 오천리를 가면 산을 따라 굴곡지게 휘감으며 성곽을 이루고 남쪽 끝에는 패수가 있다. 왕은 북쪽(좌)에 궁궐을 축성하였다. 또한 국내성,한성이 있는데 또 다른 도읍이라고도 한다.
 
▲ 중국 황화 북쪽이 고구려 영토였다고 주장하는 지도. 황하 인근에 있는 압록수변에 국내성, 평양성, 안시성, 서안평이 모두 위치해야 지리비정이 맞다는 주장이다. 일제식민사학은 압록수를 현 압록강, 국내성을 집안, 평양성을 평양, 서안평을 압록강 하구 단동으로 틀리게 비정했다는 것이다.  <신당선 열전동이전>     © 편집부
 
 
(원문) 水有大辽、少辽:大辽出靺鞨西南山,南历安市城;少辽出辽山西,亦南流,有梁水出塞外,西行与之合。有马訾水出靺鞨之白山,色若鸭头,号鸭渌水,历国内城西,与盐难水合,又西南至安市,入于海。而平壤在鸭渌东南,以巨舻济人,因恃以为堑。(马訾水西北入盐难水 西南至西安平入海 過郡二行二天一百里)  
(번역) 대요수와 소요수가 있는데 대요수는 말갈의 서쪽 남산에서 시작되고 남으로 안시성으로 흐른다. 소요수는 요산 서쪽에서 시작되는데 역시 남쪽으로 흐른다. 량수는 요새 밖에서 시작돼 서쪽으로 흐르다 합쳐진다. 마자수는 말갈의 백산에서 시작되고 색이 오리의 머리 색깔과 흡사해 압록수라 부른다. 국내성 서쪽으로 흘러 염난수와 합해지고, 서남쪽으로 안시에 이르러 바다(=황하)로 흘러 들어간다. 평양성은 압록의 동남쪽에 있어 커다란 배로 사람을 건네고 믿음직한 참호 역할을 하고 있다.
(한서지리지 : 마자수는 서북에서 염난수로 들어가고 서남으로 흘러 서안평에서 바다(황하)로 들어간다. 2개 군을 거쳐 길이는 2100리다)  ※원문 및 번역=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 제공
 
▲ 성 발행인에 따르면 고구려 안시성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 남부 신강현에 있는 화염산의 남단이다.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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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6/26 [14:31]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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