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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화 이북에 자리잡은 대진국(발해) 강역 9천리
대진국(발해)의 강역은 황하에서부터 연해주까지
 
성훈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3/07/23 [10:54]
대부분 사람들이 동만주에서 건국된 발해의 강역이 만주뿐인 것으로 알고 있는 이유는 전신인 고구리의 강역도 만주일대 뿐이었고, 남쪽에 있는 통일신라의 강역이 한반도의 대동강과 원산만을 잇는 선이라고 배워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학계는 그러한 학설을 입증해주는 유물적 증거로 길림성 돈화와 화룡에서 발견된 정혜·정효공주의 무덤을 대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공주의 무덤이 발견된 곳은 대진국의 동쪽 강역임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주들의 무덤을 다른 나라 땅에 조성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적 사실로 본 대진국(발해)의 서쪽 강역은 현 국사교과서에 있는 지도처럼 서만주 일대가 아니라 훨씬 더 중국대륙 깊숙이 하남성 황하까지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대대로 중국 땅으로 알고 있던 황하 이북의 땅이 우리 대진국(발해)의 강역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과연 그럴까?”라고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  발해의 도읍 이동도. 결정적인 증거로 정혜.정효공주의 무덤이 이용되고 있다.
 
▲  동모산으로 알려진 길림성 돈화에 있는 성산자산성
 
 
동모산과 천문령은 어디인가
 
동모산(東牟山)은 대진국(발해)의 초기도읍지이고, 천문령(天門嶺)은 대조영이 당나라 장수 이해고를 대파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그런 동모산을 길림성 돈화에 있는 성산자산성으로 알고 있으며, 천문령은 서만주 심양 부근에 있는데 위치 미상으로 알려져 있다. 과연 그런지 아래와 같이 상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우선 동모산을 <중국고대지명대사전>으로 검색하면 “하남성 탕음현 서쪽 40리로 탕하가 나오는 곳. 즉 수경주의 석상산이다.”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북부 하남성의 동단인 은허(殷墟)발굴지 남쪽으로 접해있는 학벽(鶴壁)시를 말하는 것이다. 천문령을 검색하면 “천문산은 하남성 휘현 서북 50리”라는 설명이 나와 산서성과 하남성 휘현의 경계에 있는 해발 1,304m짜리 지금의 운태산(云台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두 곳을 아래 대중상과 대조영의 건국 행적에 연관시키면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종 때 이맥 선생이 쓴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의 기록에 따르면, “668년 고구리 멸망 때 서압록하(西鴨錄河)를 지키던 대중상이 동쪽 동모산으로 가서 나라를 세우고는 후고구리(後高句麗)라 하고 연호를 중광(重光)이라 했고 32년 붕어하니 묘호를 세조(世祖)라 하고 시호를 진국열황제(振國烈皇帝)라 하였다. 영주(營州) 계성에 있던 태자 대조영이 제위에 올라 홀한성을 쌓아 도읍을 옮기고, 당나라 장수 이해고를 천문령에서 격파하고는 국호를 대진(大震)이라 하고 연호를 천통(天統)이라 하고 고구리의 옛 땅을 차지하니 땅은 6천리가 개척되었다. 21년 붕어하니 묘호를 태조(太祖)라 하고 시호를 성무고황제(聖武高皇帝)라 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동모산과 천문령도 압록수와 유주 가까운 곳에 있어야 이치에 합당할 것이다. 고대 압록수는 현재 산서성을 가로지르는 분하를 말하는 것이므로 서압록하는 분하 서쪽이며, 영주는 유주(幽州)에서 떨어져나간 행정구역이므로 황하북부 하남성과 산서성 남부 어딘가를 지칭하는 지역이다. 현재의 학설대로 동만주에 있던 대조영이 이해고의 당나라 군대와 서만주 심양 일대에서 싸웠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로 역사왜곡인 것이다.  
 
▲ 낙양에서 나온 당나라 이해고와 동모산(학벽)에서 나온 대조영이 맞붙은 곳이 천문령(운태산)이다.     © 편집부
        
▲ 대조영은 이해고의 당나라 군대를 천문령(운태산) 청룡협곡으로 유인해 몰아놓고 대파해 이해고는 몸만 빠져 나와 도망갔다.     ©편집부
 
 
해동성국 대진국의 강역은 9천리
 
이후 대조영의 후예 황제들은 대진국의 강역을 더욱 넓힌다. 이어지는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는 “이에 태자 무예가 즉위하여 연호를 ‘인안(仁安)’이라 하니 개마, 구다, 흑수의 여러 나라가 신하될 것을 청하며 공물을 바쳤다. 대장 장문휴를 보내 등주와 동래를 취하여 성읍으로 삼자 당나라 왕 융기(현종)가 노하여 병사를 보냈으나 이기지 못했다. 이듬해 장수 연충린이 말갈병과 함께 요서(遼西)의 대산 남쪽에서 당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했다. 당나라가 비밀리에 신라와 약속하여 급습하자 보병과 기병 2만을 보내 이를 격파했다.
 
인안 17년 송막 12성을 쌓고 요서(遼西) 6성을 쌓으니 마침내 5경 60주 1군 38현을 소유하니 원폭이 9,000리로 성대한 나라였다. 이 해 당나라와 신라 및 왜도 나란히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니 천하는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고 칭송했다. 이에 발해사람 셋이면 한 마리의 호랑이를 당한다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이 때 백성들은 화락하고 역사를 논하며 의를 즐겼다. 오곡은 풍성하고 사방은 안락했다. 대진육덕이 있어 이러한 대진국을 찬미했다. 19년 황제께서 붕어하시니 묘호를 ‘광종’이라 하고 시호를 ‘무황제(武皇帝)’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어 “태자 흠무가 즉위하여 연호를 대흥(大興)이라 하고 도읍을 동경용원부로부터 상경용천부로 옮겼다. 이듬해 태학을 세우고 천경신고를 가르치며 환단고사를 강연하고 국사 125권을 편찬하니 문치는 예악을 일으키고 인간을 홍익하는 교화는 이로써 만방에 미치게 되었다. 57년 황제께서 붕어하시니 묘호를 ‘세종’ 시호를 ‘광성문황제(光聖文皇帝)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동만주에서 발견된 정혜·정효공주 비문에 대흥이라는 연호가 기록되어있어 이 기록의 신빙성을 입증해주고 있다.
 
위 기록에 등장하는 요서는 유주라는 행정구역에 속한 요서군(遼西郡)으로 황하 굴곡지점인 산서성 서남단 영제시 일대를 말하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는 기록은 <한서지리지>와 <설문해자>와 <사기 집해>이며, 유물적 증거로는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먹다 굶어죽은 백이와 숙제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중국은 하북성 동쪽 진황도시 노룡현에 백이·숙제의 가짜 유적지를 만들어놓고는 그 일대가 요서군이었다는 역사왜곡을 하고 있으나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인 것이다.
 
위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는 “당나라와 신라 및 왜도 나란히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니 천하는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대진국본기>에 기록된 대진국 황제들의 자체연호 사용기록과 위 무황제의 기록은 <신당서>의 기록과 일치한다. 따라서 작았던 당나라가 9천리 강역의 대진국에게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은 역사적 사실일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최근 중국은 ‘고구려와 발해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어불성설의 동북공정을 일삼고 있다.  
 
▲ 황하굴곡지점인 산서성 서남단에 그려진 백이.숙제의 무덤과 수양산     © 편집부
        
▲ 2008년 황하 굴곡지점에서 발견된 백이.숙제의 무덤     ©편집부
 
 
백이.숙제가 굶어죽은 수양산은 요서군
 
허신의 <설문해자>에 “수양산은 요서에 있다(首陽山在遼西)”는 기록이 있고, 백이·숙제가 굻어죽은 수양산이 어디인지 가장 확실하게 밝힌 기록은 <사기 집해>로 “마융이 말하길 수양산은 하동지방의 포판에 있는 화산의 북쪽에 있고, 그곳은 황하가 꺾여 흐르는 곳이다(集解馬融曰 首陽山在河東蒲阪華山之北,河曲之中)”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의 하동(河東)은 글자 그대로 황하의 동쪽으로 지금의 산서성 남부를 말하는 것이다. 위 기록을 입증해주는 지도는 청나라 때 만들어진 <대청광여도>로 지도에는 황하가 꺾이는 동쪽에 수양산과 포판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으며 백이.숙제의 묘라고 상세히 그려져 있다.
 
<한서지리지>에 따르면 유주(幽州)는 요동군, 요서군, 낙랑군, 발해군 등 10개 군이 속해있는 행정구역이며, 그 위치는 산서성 남부와 황하 북부 하남성 일대이다. 그를 입증해주는 유물적 증거가 바로 요서군을 상징하는 백이·숙제의 무덤과 하남성 제원시를 흐르는 낙랑군에 속한 패수인 것이다. 아래 요서군 설명에 ‘고죽성이 있는 영지현’이라는 설명이 있는데 현 산서성 서남단 영제시를 말하는 것이며, 고죽성은 바로 백이·숙제가 왕자로 있었던 고죽국을 말하는 것이다.
 
(辽西郡 요서군) 秦置。有小水四十八,并行三千四十六里。属幽州(유주에 속한다)。户七万二千六百五十四,口三十五万二千三百二十五。县十四:且虑,有高庙。莽曰鉏虑。海阳,龙鲜水东入封大水。封大水,缓虚水皆南入海。有盐官。新安平。夷水东入塞外。柳城,马首山在西南。参柳水北入海。西部都尉治。令支,有孤竹城(고죽성이 있는 영지현)。莽曰令氏亭。肥如,玄水东入濡水。濡水南入海阳。又有卢水,南入玄。莽曰肥而。宾从,莽曰勉武。交黎,渝水首受塞外,南入海。东部都尉治。莽曰禽虏。阳乐,狐苏,唐就水至徒河入海。徒河,莽曰河福。文成,莽曰言虏。临渝,渝水首受白狼,东入塞外,又有侯水,北入渝。莽曰冯德。絫。下官水南入海。又有揭石水、宾水,皆南入官。莽曰选武。
 
▲ 중국은 그동안 지명이동을 통한 역사왜곡을 자행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백이.숙제의 무덤이다.   
 
▲ 고구리와 대진국의 영토는 황하에서부터 동만주까지로 9천리였다. 식민사학의 역사왜곡이 중국의 왜곡보다 더 심하다.     ©편집부
 
 
 (원문기사)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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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7/23 [10:54]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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