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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군 낙랑군으로 변조된 낙랑국은 우리의 역사
기원전 195년 ~ 37년 고구리에게 망할 때까지 존재한 우리 역사
 
신완순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3/09/10 [11:55]
공명현상으로 설명되는 낙랑국의 자명고각

적군이 침략을 하면 스스로 울렸다는 낙랑국의 자명고(自鳴鼓)이야기가 있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사랑이야기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이 자명고 이야기를 <삼국사기>를 통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최리(崔理)가 다스리던 낙랑국(樂浪國)에는 적의 군사가 침입하면 저절로 울리는 고각(鼓角, 북과 나팔)이 있어 적의 침략에 미리 대비하여 격파하고 나라를 보존해 올 수 있었다. 고구려 대무신왕(고구려 3대왕) 15년(서기 32년) 여름 4월에 호동(好童)왕자가 옥저(沃沮)에 놀러 갔었는데 그 때 마침 낙랑국의 임금인 최리가 그 곳에 왔다가  호동을 보고 보통 사람이 아닌 비상한 사람이며  북국신왕(北國神王, 고구려)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본국으로 함께 돌아가 자신의 공주를 호동의 아내로 삼게 하였다.

후에 호동은 고구려에 귀국하여 몰래 사람을 보내 낙랑공주에게 “만약 나라의 무기고에 들어가서 고각을 찢고 부수면 내가 예로써 아내로 맞이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거절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낙랑공주가 몰래 무기고에 들어가 예리한 칼로 고각을 찢고 부수고는 호동에게 알리니 호동은 임금에게 낙랑국 공습을 권유하였다. 낙랑왕은 고각이 울리지 않아 고구려의 군사가 쳐들어 온 줄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성 밑에 다다른 고구려 군사를 보고 난 후에야 고각이 모두 부서진 것을 알고 공주를 죽이고 나와서 항복하였다.”

이렇게 하여 낙랑국은 자명고각이 파괴되면서 대무신왕 20년(서기 37년)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한편 호동왕자는 왕비와의 갈등으로 자살을 함으로써 낙랑공주와의 비극적인 사랑 또한 낙랑국의 멸망과 함께 끝이 났다. <삼국사기>에는 낙랑국의 멸망과 관련하여 “낙랑국을 멸망시키려고 낙랑국 공주와 혼인을 하여 며느리로 삼은 후에 본국으로 돌아가서 무기를 부수게 하였다.”고 하여 고구려에서 정략적으로 이용을 하였다는 다른 기록도 함께 싣고 있다.

적군이 침략하면 저절로 울렸다는 낙랑국의 북과 나팔은 현대적으로 말한다면 레이더 등으로 적의 침략을 감지하고 경계를 울리는 최신식 방공망시스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낙랑국의 자명고각은 어떻게 하여 울렸을까? 현대과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공명현상(共鳴現狀)으로 파악을 하고 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다리가 무너져 내린다든가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높은 안테나가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현상들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낙랑국의 국경의 일정한 지역을 통과하는 적군의 대규모 말과 군사들의 이동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파장과 낙랑국 궁궐에 있는 북과 나팔이 울리는 파장이 같기 때문에 울렸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공명현상을 어떻게 알아내고  그것을 응용하였는지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과학의 시대라고 하는 현대에도 물리학이나 의학 등의 여러 분야에서 이러한 공명현상을 널리 응용하어
새로운 장치나 기구를 개발이 되어 활용이 되고 있으며 MRI(자기공명영상진단장비)가 대표적인 예이다.

2천 년 전에 낙랑국에 적군이 침략하면 울렸다는 자명고각이 있었다는 것은 선조들의 과학적인 높은 경지의 기술과 지혜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에 신비한 피리가 있어 이를 불면 바다의 파도가 잠잠해지고 적군이 물러갔다는 만파식적(萬波息笛), 천부의 원리로 만들어졌다는 금척(金尺)과 더불어 낙랑국의 자명고각은 우리 선조들이 자연의 원리를 응용하여 개발한 과학적인 유산인 만큼 미신이라고 치부하거나 신비주의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시각을 지양하고 이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재현이 필요하다.
 
▲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그린 옛날 영화 포스터. 
 
 
낙랑국은 한무제가 세운 낙랑군과는 전혀 다른 나라

낙랑국과 관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히 잘못된 역사상식으로 인하여 낙랑하면 한무제가 왕검성의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뒤 설치한 한4군의 하나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니 낙랑국의 임금인 최리는 한나라의 낙랑태수라고 하고 낙랑공주도 공주가 아닌 그냥 태수의 딸 쯤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는 왜곡된 역사에 길들여져 우리 역사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낙랑국은 한나라 무제가 설치하였다는 낙랑군과는 전혀 다르다.
한4군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 현 중국의 하북성 산동성 산서성 하남성 일부 지역에 있어야 할 것이 한반도 북부 지역으로 옮겨져 뒤틀리고 왜곡된 기만과 허구의 날조된 역사이다.

기원전 108년 전한 때 설치했다는 한4군이 고구려 미천왕 14년(313)까지 존속을 하였다고 강변하는 것은 전한이 망하고 왕망의 신(新)나라 그리고 후한과 삼국시대를 거쳐 서진(西晉)에 이르기까지 무려 7대 왕조 421년간이나 본국은 계속 망하는데 식민지는 줄기차게 살아남아서 존재하였다고 하는 것인바 삼척동자가 들어도 이치에 맞는 소리라고 하겠는가? 이는 몸뚱이는 죽어 없어졌는데 망령이 팔 하나에 살아 계속 이어진다는 것과 같으며 뿌리와 줄기가 없는 나무의 가지에 계속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린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이는 중국의 역사침탈음모(동북공정)의 논리에 거름을 주는 꼴이다.

낙랑국은 범장(范樟)이 쓴 <북부여기(北夫餘紀)>와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종합하면, 단군조선 당시의 낙랑홀(樂浪忽)에 있던 주민들이 기원전 239년 단군조선이 망하고 난 뒤 최숭(崔崇)이 발해를 건너 기원전 195년에 세운 나라이다. 마지막 임금인 최리(崔理) 때 위의 자명고각이 파괴되면서 고구려 대무신왕에게 항복을 하였으며, 5년 뒤 서기 37년에 완전히 고구려에 병합되기 전까지 232년 동안 존속하였던 우리의 역사이며 그 위치와 존속기간 그리고 통치방식과 문화수준에서 한(漢)나라 낙랑군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물음엔 한 마디로 정의하여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낙랑국도 마찬가지이다. 애당초 낙랑국과 낙랑군을 구별하기 힘들게 되어 있는 사서 앞에 제대로된 역사인식을 기대하는 것조차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낙랑국에 자명고가 있었고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비극적인 사랑으로 결국 나라가 멸망을 하였다는 기록에서 그것이 공명현상이 되어 우리에게 다시 나타날 수 있으며 그러한 일을 예비할 수 있음은 사서에 살아있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 미앙궁 앞에 있던 종이 저절로 울려 한무제가 동방삭과 대화를 주고받고 선물을 하사하였다는 내용은 소위 그들의 정사라고 하는 25사 그 어디에도 없다. 역사서가 아닌 <태평어람> 등에 이 이야기가 실린 것은 후대에 조선을 멸망시켰다는 한무제와 3천 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을 등장시켜 낙랑군 등 한4군을 설치하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저들에게 전승된 우리의 낙랑국 자명고각 이야기를 윤색하여 편취한 것이 아닌가 한다.
 
▲ 옛날 영화에서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찟는 장면  
 


허망하게 무너진 낙랑국, 역사 또한 잊혀져

허망하게 무너져버린 낙랑국처럼 낙랑국의 역사 또한 잊혀 버렸다. 설사 물샐 틈 없는 난공불락의 견고한 성과 자명고각이라는 최고의 병기를 갖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확인하고 지켜내고자 하는 국가관리체계가 있었다면 미남계(美男計)의 유혹에 빠져 자기의 손발로 머리와 심장을 찌르는 우는 범하지 않았을 것이며, 이는 21세기에 핵무기 등 최첨단무기를 보유한다고 해서 스스로 강하다는 위안은 될지언정 국가를 보전하는 영구적 수단은 될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러한 낙랑국의 허점을 이용하여 병합을 이룬 고구려의 힘과 지략은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역사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생존하고 헤쳐 나가야 하는 가를 웅변으로 말하고 있다. 자명고 이야기가 오늘날 역사를 복원하고자 하고 다물흥방을 외치는 우리의 작은 공명현상이 역사 왜곡 핵무기와 더러운 탐욕의 자명고를 깨고 부수어 참된 역사와 상생 그리고 평화의 북과 종이 울리기를 고대해본다. 서울의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곧 중원의 복본이 됨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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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9/10 [11:55]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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