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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조선열전> 한사군전쟁의 자초지종 (3-1부)
번조선의 우거왕에게 연패를 거듭하는 한나라 군대
 
성훈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3/11/01 [15:54]
아래는 한나라 무제 때 한사군전쟁을 직접 종군한 사마천이 쓴 <사기 조선열전>을 번역한 것으로 해설과 더불어 2부로 나누어 게재한다. 
 
위만의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右渠) 때에 이르러서는 꾀어낸 한나라 망명자 수가 대단히 많게 되었다. 천자(한무제)에게 들어와 뵙지 않을뿐더러 진번(眞番) 주변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천자에게 알현하고자 하는 것도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섭하의 죽음) 원봉(元封) 2년(BC109) 한나라는 사신 섭하(涉何)를 보내 우거를 꾸짖고 달래었다. 그러나 끝내 천자의 명을 받들려고 하지 않았다. 섭하가 돌아가면서 국경인 패수(浿水)에서 마부를 시켜 배웅 나온 조선의 패왕(稗王=裨王) 장(長)을 찔러 죽였다. (패수를) 건너 요새로 도망친 뒤 천자에게 “조선의 장수를 죽였다”고 보고하였다. 천자가 그 공을 기려 섭하에게 요동동부도위(遼東東部都尉)라는 벼슬을 내렸다. 조선이 섭하를 원망하여 군사를 일으켜 기습 공격해 섭하를 죽였다.
 
※ (해설) 한나라와 번조선 간 전쟁의 발단이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거 입장에서는 자신의 신하를 죽인 섭하에게 보복을 한 것이고, 한 무제 입장에서는 우거가 자신이 파견한 신하를 기습공격으로 죽였기에 대노하며 보복을 명령하게 된다. 한사군전쟁은 이렇게 해서 발단된 것이다. 
 
▲ 조선과 한나라와의 국경이었던 패수. 섭하는 여기서 번조선의 패왕을 찔러 죽였다. 이 강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선봉장 졸정다의 죽음) 천자는 죄수들을 모집하여 조선을 치게 하였다. 그 해 가을 누선장군(樓船將軍) 양복(楊僕)을 파견하여 제(齊) 땅으로부터 발해(渤海)를 건너게 했다. 군사 5만으로 좌장군 순체(荀彘)를 요동에 출격시켜 우거를 토벌하게 하였다. 우거는 군사를 일으켜 험준한 곳에서 대항하였다. 좌장군의 부장인 졸정다(卒正多)가 요동 군사를 거느리고 선봉으로 출정하였으나 싸움에 패하였다. 군사는 흩어지고 졸정다도 도망쳐 왔으므로 법에 따라 참형(斬刑)에 처했다.

(한나라의 패배) 누선장군은 7천의 제나라 병사로 먼저 왕검성에 이르렀다. 우거가 성을 지키고 있으면서 누선의 군사가 적음을 알고 곧 성을 나와 누선을 쳤다. 누선군은 패해 흩어져 도망쳤다. 장군 양복은 많은 군사를 잃고 10여 일을 산중에 숨어 살다가 흩어진 병졸들을 다시 거두어 모아들였다. 좌장군도 조선의 패수서군(浿水西軍)을 쳤으나 깨뜨리고 전진할 수 없었다.
 
※ (해설) 한나라의 두 장수 모두 첫 전투에서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다.

(우거의 위장항복과 위산의 죽음) 천자는 두 장군의 전세가 유리하지 않다고 여겼다. 위산(衛山)에게 군사의 위엄을 갖추고 가서 우거를 달래게 하였다. 우거는 사자를 보고 머리 숙여 사과하였다. "항복하기를 원하였으나 두 장군이 신을 속여 죽일까 두려웠습니다. 이제 믿음의 징표를 보았으므로 항복을 청합니다." 태자를 보내 들어가 사죄하게 하고, 말 5천 필을 바치면서 또한 군량미를 내어 주었다.

  무리 만여 명이 무기를 휴대하고 막 패수(浿水)를 건너려고 할 때, 사자와 좌장군은 그들이 변을 일으킬까 두려워 태자에게 말했다. "이미 항복했으니 병사들에게 무기를 버리라 명하시오" 태자 또한 사자와 좌장군이 자기를 속이고 죽일까 의심하였다. 끝내 패수를 건너지 않고 병사들을 이끌고 돌아가 버렸다. 위산이 돌아와 천자께 보고하니 천자는 위산을 죽였다.
 
※ (해설) 우거는 항복을 가장해 5천 기병과 5천 보병으로 한나라를 기습공격하려고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진정한 항복이라면 군량미까지 지참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조부인 위만이 방심하고 있던 번조선의 기준 왕에게 행한 기습공격과 같은 기만작전이었다. 그리고 한 무제가 위산을 죽인 것을 보면, 그가 우거와의 전쟁을 중단하고 상호간에 선린우호관계를 얼마나 갈망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나라의 연패) 좌장군이 패수상군(浿水上軍)을 격파하고 전진하여 왕검성 아래 이르러 서북쪽을 포위하였다. 누선 또한 합세하여 성 남쪽에 웅거하였다. 우거가 끝내 성을 굳게 지키므로 몇 달이 되어도 함락시킬 수 없었다. 좌장군은 본시 시중(侍中)으로 천자의 총애를 받았는데 연(燕)과 대(代)의 군사를 거느렸으므로 굳세었다. 싸움에 이긴 기세를 타고 군사들이 더욱 교만해졌다.
 
  누선장군은 제나라 군사를 이끌고 해(海)로 출정하였으나 이미 여러 번 싸움에서 패하고 군사를 잃었다. 앞서 우거와의 싸움에서 이미 크게 패했고, 도망한 군사들은 온갖 고통과 치욕을 맛보아 병사들 모두 두려워했고 장수들은 속으로 부끄러워했다. 우거를 포위하고도 항상 화평을 유지하였다. (固已多敗亡 其先與右渠戰 困辱亡卒 卒皆恐將心慙)
 
※ (해설) 패수상군은 앞에서 언급한 패수서군과 같은 의미로, 패수는 동류하는 강 즉 상류인 서쪽에서 하류인 동쪽으로 흘러가는 강이란 뜻이다. 한나라 군사들은 앞선 전투에서 그야말로 고통스러웠고 치욕을 느낄 정도로 참패했기 때문에 적을 두려워해 포위만 한 채 더 이상 공격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 강단사학계의 한사군전쟁도. 일부 재야에서는 창려를 왕검성으로, 북경 조백신하를 패수로 보는 견해도 있다.    
 
 
(두 장수의 반목) 좌장군이 맹렬히 성을 공격하니 조선의 대신들은 몰래 사람을 보내 사사로이 누선에게 항복을 약속하였으나, 말만 오고갈 뿐 아직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좌장군이 여러 차례 누선과 싸울 시기를 정하였으나, 누선은 화해할 약속을 지키려고 싸움에 나가지 않았다. 좌장군 또한 사람을 보내 조선이 항복해올 때를 기다렸으나 조선은 이를 반기지 않고 누선 쪽에 항복할 마음을 두고 있었다.
 
이 때문에 두 장군은 서로 반목하게 되었다. 좌장군은 속으로 “누선이 전에 군사를 잃은 죄가 있는데다가 지금은 사사로이 조선과 잘 지내고 있으며, 조선 또한 항복하지 않으니 반역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닐까?”하며 의심하였다. 그러나 함부로 입 밖에 내지는 못하였다.
   
  천자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장수들이 (승리를) 이루지 못하므로 위산을 시켜 우거를 달래 항복하도록 하여 우거가 태자까지 보냈다. 그런데도 위산이 이를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계교가 서로 달라 마침내 약속이 깨어지고 말았다. 지금도 두 장군이 성을 포위하고도 역시 어긋나고 달라서 오래도록 결단치 못하고 있다."라고 하며, 제남태수 공손수(公孫遂)를 보내 이를 바로잡고 상황에 맞게 처리토록 하였다.
 
※ (해설) 좌장군은 조선의 대신들이 누선장군과 내통하고 있다고 의심하게 된다. 한 무제는 현 상황이 지난 번 위산이 저지른 잘못과 같다고 판단하여 다시 특사를 보내 상황을 바로잡고, 궁극적으로는 우거를 달래 항복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한 무제는 전쟁의 계속보다는 하루 빨리 우거와 선린우호관계를 맺고 싶어 했다.

(한나라의 내분과 공손수의 죽음) 공손수가 도착하니 좌장군이 말하였다. "조선이 항복할 지경에 이른지 오래되었는데도 항복하지 않는 것은 사정이 있어서입니다." 그리고 누선이 여러 차례 싸우러 나오지 않은 것과 평소 생각을 낱낱이 고하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 이와 같으니 (누선을) 체포하지 않으면 크게 해가 될까 두렵습니다. 누선은 혼자가 아니라 조선과 함께 우리 군사를 멸할 것입니다."
 
공손수도 이를 옳다고 여겨 대나무 신표를 보내 누선을 불러 좌장군 진영에 오게 하였다. 좌장군의 수하를 시켜 누선장군을 체포하고는 양쪽 군사를 합친 뒤 천자(=한무제)에게 보고하였다. 이에 천자가 공손수를 죽여 버렸다.
 
※ (해설) 한나라는 좌장군과 누선장군 사이의 반목으로 인해 내분이 일어나고 만다. 한 무제의 특사인 공손수가 좌장군의 말만 듣고 독단으로 누선장군을 체포하고는 수군을 육군에 합쳐버리자 한 무제가 격노하여 임의대로 군의 지휘체계를 흩트려놓은 공손수를 죽여 버린다. 지휘체계가 이상해진 한나라는 군사력이 극도로 약화되어 곧 철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총사령관이 된 좌장군은 마지막으로 총 공격을 감행한다.  
     
 
곧 (3-2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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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1/01 [15:54]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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