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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순의 성인정치와 단군조선의 순방지치
순방지치는 이상정치의 실현이며 태평성대를 일컫는 말
 
신완순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4/02/24 [10:32]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은 태평성대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의 재난에 시달리거나 나라의 정치나 경제가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태평성대를 동경하게 되며 이상적인 세상을 기다린다.

예부터 동양에서는 최고의 태평성대 또는 성인의 시대를 일컬어 “요순시대(堯舜時代)”라 일컬어왔다.
그야말로 중국의 요(堯)와 순(舜)의 시대가 모든 분야에서 치세가 이루어져 태평스럽고 백성들은 편안하였다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의 효시로 인식되어 왔다. 요순시대가 성인(聖人)같은 어진 덕을 갖춘 임금이 다스린다는 태평성대의 대명사로 불리게 된 이유는 많이 있겠지만 <사기>등 여러 서적을 종합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요순시대에 일반 백성들이 널리 불렀다는 격양가(擊壤歌)이다.
요(堯)가 왕이 된 지 50년 만에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평민의 복장을 하고 거리에 나섰는데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어 유심히 들어보니, “우리 백성들을 살게 하는 것은, 임금의 지극함 아닌 것이 없다. 임금을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임금의 법에 따르고 있다.”라 부르고 있고,

또 다른 곳으로 옮기니 한 노인이 길가에서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한 손으로는 배를 두들기고 또 한 손으로는 땅바닥을 치며 장단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해가 뜨면 밖에 나가 일하고(日出而作), 해가 지면 집에 들어와 쉬고(日入而息), 우물 파서 물을 마시고(鑿井而飮), 밭을 갈아 밥을 먹으니(耕田而食), 임금의 힘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帝力于我何有哉)” 라는 격양가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고 하며 이것을 본 요(堯)는 자신의 시대가 태평세월이라고 했다한다.
 
이는 백성들이 먹고 살기 편해서 임금의 존재조차 모르고 지낸다는 것으로 지금도 격양가(擊壤歌)나 고복격양(鼓腹擊壤, 배를 두드리며 땅을 침)하면 태평성대를 떠올리는 것이다.

둘째는 소부(巢父)와 허유(許由)의 고사(故事)이다.
요(堯)가 허유가 높은 덕을 지니고 있어 천하를 물려주려고 하니 허유는 그것을 사양하고 도리어 이 말을 들은 귀가 더럽다 하여 영수(潁水, 강이름)에서 물로 귀를 씻었다 한다. 그의 친구 소부는 영수에 소에게 물을 먹이러 왔다가 귀를 씻고 있는 허유의 연유를 듣고 귀를 씻은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하여 상류에 가서 물을 먹였다는 고사가 있다. 이는 덕이 높은 선비가 권력을 탐내지 않고 학문과 덕을 쌓는 일에 열중하는 것은 나라가 태평스러운 치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요(堯)가 어진 순임금에게 양위한 점
요는 자기를 죽이려 하는 계모와 배다른 형의 간계에도 불구하고 정성으로 부모님을 잘 모시어 천하의 효자로 소문이 난 순(舜)이 큰 덕을 갖추고 있음을 알고 자기의 아들 단주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순(舜)에게 이른바 평화적으로 선위(禪位)를 하였고,
 
순(舜) 또한 정사를 잘 돌보았으며 치수(治水)의 공이 있는 우(禹)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어 요와 순이 훌륭한 덕을 갖추었음은 물론 어진 자에게 선위를 한 점은 성인만이 가능한 일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밖에 요(堯)는 ‘백성들과 똑같이 초가에 살면서 방안도 꾸며 놓지 않았으며, 마음을 항상 백성들에게만 두어서, 굶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도 끼니를 걸렀고, 추위에 떠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도 같이 떨었고, 죄 지은 사람이 있으면 자기도 죄인처럼 괴로워하였다.’고 되어 있으며,
 
순(舜)은 ‘왕위에 오른 뒤에도 새벽같이 밭에 나가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열심히 잡아 평소에 게으름을 피우던 백성들도 임금을 본받아 부지런 하게 되었다.’라고 하여 요와 순이 성인의 덕을 갖춘 임금으로 묘사하고 있다.

위에서 나열된 것을 보면 후세 사람들이 태평성대의 시대 또는 성인의 시대로 칭송할 만하지만, 요순시대가 이렇게 된 배경에는 공자가 요와 순을 성인으로 묘사하고 이 시대를 태평성대의 표본으로 삼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공자는 주(周, BC 1046∼BC 771)나라가 망한 이후에 천하가 여럿으로 갈려 도와 덕이 바로 서지 않고 각 나라 간에 쟁패하는 것을 보고 존주양이(尊周攘夷, 주나라 왕실을 높이고 동이족을 내친다)의 생각으로 <춘추(春秋)>라는 역사서를 저술하였다. 공자의 <춘추>는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夏)나라의 개국기원(BC 2205)이 단군조선의 기원(BC 2333)보다 늦은 것을 요순을 성인으로 미화하여 단군조선과 같은 시기로 맞추고, 화하(華夏)족의 명분과 역사성을 살려 주(周)나라 왕실을 복원하기 위해 저술된 왜곡된 책이다.
 
이로 인하여 요순시대가 태평성대의 시대 또는 성인의 시대로 둔갑하게 되었으며 화하(華夏)족의 후학들이 공자의 이러한 사상을 받아들여 확대 계승 발전시킨 것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요와 순이 지금의 중국 대륙 전체인 천하를 다스린 것으로 잘못알고 있는데 요가 다스린 당(唐)과 순이 다스린 우(虞)는 현재 중국의 일개 시(市)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좁은 지역에 불과하였다.

▲ 북경대출판사에서 간행한 하대형세도. 공자가 뗏목을 타고 가서 살고 싶다했다던 구이(九夷)가 보이며 우이(嵎夷)와 회이(淮夷) 등도 보인다     © 편집부

 
< 부도지>에서는 요(堯)가 우리 민족의 천제와 신시에 참여하여 부도(符都)의 도를 배우던 자였는데
부도의 성(城)을 나가 그릇된 오행의 법을 만들어 제왕의 도라 주창하여 허유와 소부가 이를 매우 꾸짖고 단절하였다고 나온다.

또한 서경(書經)의 순전(舜典)에 순(舜)이 왕위에 오른 뒤 "사근동후(肆覲東后)”하였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마침내 동방의 나라 임금을 알현하다.(遂見東方之國君)”라는 뜻으로 우리의 고조선 임금을 찾아뵈었다는 구절이며 그 당시에 순(舜)보다  더 강력한 존재가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실제로 요와 순의 역사가 기록된 사마천이 쓴 <사기>의 오제본기를 보아도 비록 단군조선의 역사를 감추고 있지만 단군조선의 존재를 인정하는 동이(東夷)에 관한 기록이 넘쳐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태평성대라 불릴만한 일은 없었을까? 신라의 김생, 조선의 한석봉과 더불어 3대 명필이며 고려시대 말엽 수문하시중(현 국무총리 격)까지 지낸 이암(李嵓)이 편찬한 <단군세기>와 신라의 안함로(安含老)가 지은 <삼성기>에 순방지치(淳厖之治)라는 기록이 보인다.  

▲ 신라 때 화가 솔거가 그린 단군왕검.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을 단공(端拱)이라 하며 이는 무위이화(無爲而化)를 나타내며 순방지치의 표현
“이때에(단군왕검때) 팽우(彭虞)에게 명하여 땅을 개척하도록 하였고, 성조(成造)에게는 궁실을 짓게 하였으며, 신지(臣智)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였으며, 기성(奇省)에게는 의약을 베풀게 하고, 나을(那乙)에게는 호적을 관리하게 하였으며, 희(羲)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하게 하고, 우(尤)에게는 군대를 관장하게 하였다. 비서갑 하백의 딸을 받아들여 황후로 삼고 누에치기를 다스리게 하니 순방의 다스림(淳厖之治)이 온 세상에 두루 미쳐 태평치세를 이루었다."라고 되어있다.
 
이는 우리에게 태평성대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대목이며 지금까지 알고 있는 요순시대의 허구성을 잘 나타내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순방(淳厖)이라는 구절은 <단군세기>에 9세단군인 아술(阿述)단군 조에도 나온다. “임금에게 어진 덕이 있었다. 이때의 백성 가운데 법으로 금지한 것을 범한 자가 있었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똥을 눈 땅이 비록 더럽기는 하지만 거기에도 이슬이 내릴 때가 있을 것이다.’라 하며 내버려두고 죄를 다스리지 않으니, 금지한 것을 범한 자가 그 덕에 감화되었다. 순방의 교화가 크게 행하여졌다.”라고 되어 있어 순방지치라는 의미를 새겨볼 수 있는 대목이다.

순방지치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순(淳)의 의미는 “순박하다, 인정이 도탑다, 흠뻑 적시다” 등의 뜻이 있으며 방(厖)은 “크다. 크고 넓다, 섞이다, 넉넉하다, 풍족하다” 등의 뜻이 있어, 순방(淳厖)의 뜻은 “인정이 도탑고 넉넉하고 풍족한 상태나 모양”을 나타내며, 만주어에 태양을 순(淳)이라 하는데 그런 의미로 본다면 순방(淳厖)의 뜻은 “태양처럼 밝고 크며 넉넉하고 풍족한 상태”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순방지치(淳厖之治)의 의미는 “태양처럼 밝고 어질며 거룩한 제왕의 영도력으로 모든 제도와 문물(文物)이 완비되고 의식주는 풍족하며 문명은 계화(啓化)되어 홍익인간과 재세이화 그리고 성통공완이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정치세상”이라 할 수 있다.

순방지치는 최고 이상정치의 실현이며 신인정치(神人政治)이며 성인의 시대이고 태평성대를 일컫는 말이다. 순방지치는 역사상 2096년이라는 가장 오랫동안 존속을 하였던 단군조선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 문화의 전반적인 부문이 활짝 꽃을 피운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떠한가? 요순시대가 태평성대의 대명사로 된 것은 공자가 단군조선의 순방지치를 흉내를 내어 요순을 최고의 성인으로 삼아 중화사상을 펼치고자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말에 부화뇌동하여 우리의 역사를 내던지고 얼을 팔아먹었으며, 소중화(小中華)에 물든 일부 사대부들의 그릇된 양식과 잘못 주입된 사관(史觀)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최고의 이상시대인 순방지치가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살고 있다.

또한 당태종이 양만춘 장군에게 화살을 맞고 장안에 입성하였던 연개소문에게 항복을 하였던 사실은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당태종의 정관(貞觀)의 치(治)는 알고 있고, 조선을 멸망시키고 있지도 않은 한사군을 한반도에 설치하였다는 한무제의 그릇된 역사는 알아도,
 
우리는 반만년에 빛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을 하면서도 단군의 역사는 고증할 수 없어 신화로 치부하는 일부 식민사학자들의 말에 동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단군조선시대에 있었던 순방지치라는 말을 하여도 '쇠 귀에 경 읽는 꼴'이 된다면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우리의 역사에 눈을 뜨고 귀를 열어 이 땅에 다시 순방지치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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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2/24 [10:32]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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