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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유인우주선, '신주(神舟)'의 비밀
원래 신주는 고려가 만든 최신 대형선박
 
신완순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4/08/26 [15:04]
세계에서 유인왕복우주선을 쏘아 올려 성공한 나라는 러시아와 미국 그리고 중국 뿐이다.
그런데 중국의 우주계획과 관련하여 유인우주선의 이름은 ‘신주(神舟)’라 하고, 달탐사 위성을 ‘항아(嫦娥)’라 명명한 것이 관심을 끈다. 선저우(神舟)와 창어(嫦娥)는 중국식 발음이다.

‘신주’는 인간세계와 신(神)의 세계를 오가는 ‘신(神)의 배’라는 뜻이다.

‘항아(姮娥)’는 본래 예(羿)의 아내였다. 요순시대에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동시에 나타나 너무 뜨거워서 사람들이 도저히 살 수가 없게 되자, 예가 신궁(神弓)을 사용해 아홉 개의 태양을 떨어뜨려 재난을 해결하였는데 상제의 노여움을 사서 예를 신의 지위에서 인간으로 떨어뜨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내인 항아도 같이 인간이 되었는데 예는 죽지 않기 위해서 서왕모(西王母)에게 불사약을 청했으며 이를 항아가 훔쳐 먹고 달로 도망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는 도교에서 전해지는 전설인데 중국이 하늘과 땅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의 사고방식이 우주개발과 맞물려 절묘하게 작명을 하여 그 야심을 드러내놓고 있다.

▲ 나로호 발사 모습 - 도전은 계속될 것이며 자급기술을 빨리 확보해야 한다     © 편집부

 중국 유인우주선 '신주'...중화사상의 발로일 뿐

‘신(神)의 배’라는 신주(神舟)는 역사 속에서는 뜻밖에도 고려와 관계가 있는 배였다. 
원나라 탈탈(脫脫)이 편찬한 <송사(宋史)> 권487 고려전(高麗傳)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신주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송 신종(神宗) 원풍원년(元豐元年, 1078년)에 처음으로 안도(安燾)와 좌간의대부(左諌議大夫) 진목(陳睦)을 고려에 보내 임시로 기거하게 하고 사람을 불러 초빙하여 명주(明州, 절강성 영파 인근)에 두 척의 큰 배(艦)를 만들도록 하였다.

하나는 ‘능허안제치원(凌虚安濟致遠)’이며 다른 하나는 ‘영비순제(靈飛順濟)’라 하였는데 모두 신주(神舟)라 명명하였다. 정해(定海)로부터 큰 바다를 거쳐 동쪽으로 고려에 도착하니 나라 사람들이 환호하며 마중을 나왔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능허안제치원’은 ‘허공을 뛰어넘어 편안하게 바다를 건너 먼 곳에 이르다’는 뜻이며, ‘영비순제’는 ‘바다를 신령스럽게 넘어 잘 건너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송나라의 서긍(徐兢)도 <선화봉사고려도경> 권34 ‘해도’ 편에서 신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신이 듣건대 신종황제가 고려에 사신을 보내 유사(有司)에게 조서를 내려 거대한 함정 두 척을 건조시킨 적이 있었는데, 하나는 ‘능허치원안제신주’이고 또 하나는 ‘영비순제신주’로서 그 규모가 심히 웅장하였다.”라 하였다.

또한 후대에 신주를 더 크고 웅장하게 만들었는데, “하나는 ‘정신이섭회원강제신주(鼎新利涉懷遠康濟神舟)’이고 또 하나는 ‘순류안일통제신주循流安逸通濟神舟)’이다. 우람한 모습이 마치 산과 같으며 바다의 물결위에 떠서 움직이면 비단으로 된 돛과 익조(鷁鳥)를 새긴 뱃머리는 바다 이무기를 굴복시키고, 휘황한 황제의 위엄을 해외에 떨치니 고금에 으뜸이다. 고려인들이 조서를 맞이하던 날 나라를 기울여 발돋움을 하여 구경하고 환호 감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라고 하여 고려에 보낼 신주를 계속 건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때의 배 이름도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안전하게 고려에까지 멀리 갈 수 있기를 희망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긍이 쓴 <고려도경>의 내용은 지극히 고려를 깔보는 중화사상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신주를 타고 고려에 사신으로 갔다 와서 임금에게 바쳤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해가 간다.

신주는 고려가 만든 최신 대형 선박

송나라의 명주에서 건조하였다는 거대한 함정인 신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주는 고려인에 의해 최신 선박건조기술로 만들어졌다. 신주의 건조 사실은 <송사> 고려전에만 등장하며 본기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는 고려에 의해 만들어진 신주의 건조 사실을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신주라는 새로운 대형선박의 출현으로 선박의 항로가 연안을 따라 이동하는 방식이 아닌 직항로의 개설이 가능하였다. 이는 고려가 삼국시대를 잇는 해양강국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 1위의 조선강국이 된 것 또한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신주는 무역선이었다. 송나라의 사신만을 싣고 오고가는 것이라면 굳이 커야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격치경원(格致鏡原)>을 편찬한 청나라 때 진원룡(陳元龍)은 권28 주거류(舟車類) 편에서 <패편(稗編)>이라는 책을 인용하여 송 신종(神宗)이 ‘안도(安燾)와 진목(陳睦)의 두 학사에게 명하여 고려로 하여금 명주에서 만곡선(萬斛船) 두 척을 건조하게 하라고 조서를 내렸다’고 되어있다.

1곡(斛)은 10말(斗)을 일컫는 것인데, 남송초기까지는 5말(斗)을 1곡(斛)으로 통용되었었다. 만곡을 실을 수 있는 배라면 그 크기가 가히 상상이 갈 것이며, 송나라 휘종이 고려에 보낸 사신의 일행이 200여명이었다고 하니 고려와 송나라의 무역 규모를 알 수 있다.

▲ 세계 최대 규모가 될 군산조선소의 모습 -신주를 만들었던 고려인들의 후예가 될 것이다.     © 편집부


신주는 무역선이자 유람선...사신도 이용

셋째, 신주는 다목적 거함이었다. < 고려도경>을 보면 고려와 송나라로 이어지는 해도(海道)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배를 타고 바다에서 보는 비경들을 많이 담고 있다. 유람선도 겸용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또한 신주가 처음 만들어지고 후에 다시 건조된 것은 유사시에도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시기는 중원이 새로운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던 시절이었다. 요나라가 굳건하고 지키고 있는 중원의 북변을 김아구다의 금(金)나라가 등장하여 공격을 하고 있는 전운에 휩싸였던 때였다.
서긍이 사신으로 고려에 갔다 온(1123년) 이후에 <고려도경>을 바쳤던 송나라의 휘종과 흠종이 금나라에 의해 사로잡히고 양자강 이남으로 쫓겨난 이른바 ‘정강(靖康)의 변(1126년)’이 바로 일어났다. 신주는 경우에 따라서 고려의 군사적 지원도 염두에 둔 선박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고려와 송나라를 오간 신주는 당시 동아시아 최대의 선박으로서 위상을 떨친 배였으며, 고려인의 기술과 손으로 만들어졌기에 더욱 그 의미가 크다. 고려와 송나라와의 사신을 통한 무역 등 국제관계를 살피다보면 종종 재미있는 기록도 발견된다. 전설 속의 ‘인어(人魚) 이야기’가 등장한다.

원나라 때 도종의(陶宗儀)가 편찬한 <설부(說郛)> ‘권118 상’ 편에 “사도(查道)가 고려에 사신으로 가서 날이 저물어 바닷가 어느 산에서 정박을 하며 쉬게 되었다. 모래밭을 바라보니 한 부인이 있었는데  붉은 치마를 입고 드러난 두 어깨 위로 상투처럼 묶은 머리가 바람에 펄럭이고 팔꿈치 뒤엔 미세한 붉은 털이 있었다. 이에 사도가 수공(水工)에게 삿대를 물에 던져 부인이 다치게 하지 말도록 명했다.

부인이 물에 쓸려 자맥질을 하다가 몸이 다시 보였고, 사도가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자 고마움을 표하고 사라졌다. 수공이 바다에서 아직까지 본 일이 없는데 무엇이냐고 물으니 사도가 이것은 인어로서 사람과 더불어 간음할 수 있으며  물에 사는 인성(人性)을 가진 수족(水族)이다.”라고 하였다.

위의 내용을 보면 우리가 동화 속에서 상상하는 인어의 모습이 떠오른다. 보통 인어라고 하면 상체는 사람이며 하체는 물고기의 모습을 한 반인반어(半人半魚)의 모습이다. <산해경(山海經)>에도 인어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인어는 사람의 얼굴을 한 다리가 없는 물고기 형상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 인천 앞바다 장봉도에 있는 인어 동상                                                                 © 편집부

<직방외기(職方外紀)>에는 바다 중에 해녀(海女)가 있는데 상체는 여인이며 하체는 물고기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송나라의 사신 사도가 보았다는 인어는 붉은 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하체가 물고기 형상이라 하지 않았다. 사도가 본 인어는 아마도 해녀였을 것이다. 해녀는 바다에서 물갈퀴가 달린 잠수복을 입고 무자맥질을 하며 해물을 채취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해녀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체를 물고기 형상으로 보고 인어로 착각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녀하면 제주도가 떠오른다. 제주 해녀의 역사에 관한 연구를 한 좌혜경은 우리나라의 해녀가 3000년 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 추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도가 인어를 본 지역이 현재 제주도 부근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고 또한 해녀가 제주도 지역에만 국한되었던 것으로 확장할 수 없기 때문에 고려시대의 인어 아니 해녀는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고려는 송나라 등 이방인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비의 대상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고려로 가는 배의 이름을 신주라 한 것도 이러한 것이 묻어있다. 서긍의 말대로 송나라 황제의 위엄을 높이기 위하여 신주라고 한 것이 아니며, 현 중국에서 쏘아올린 유인우주선을 신주라 하는 것처럼 중국인들의 유전인자 속에 함축된 동이에 대한 경이감과 신의 이름으로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염원이 담겨졌을 것이다.

진시황. 한무제. 당태종은 중금속 중독으로 사망(?)

고려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세계 최고의 상감청자를 만들었다. 고려에는 서책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는 것은 고려를 다녀간 사신들의 증언이다.

일부에서는 진시황이나 한무제, 당태종 등이 죽은 원인을 중금속에 의한 중독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정복전쟁을 일삼고 우리의 역사와 강역을 유린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중금속에 중독되어 죽은 이유는 장생불사약을 구하여 먹었기 때문이다.

선도에서 말하는 불로장생의 단약(丹藥)은 수련을 통하여 내 몸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모른 채
납과 수은 등의 중금속을 제련하여 먹고 죽은 것은 동이를 침략한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전쟁의 원인이었으며 그 침략에 대한 징벌이다.  

▲ 신주 9호 발사 직전 내부에 있는 승무원들                                                                                     © 편집부

중국에서 유인왕복선을 신주라 하고 달탐사선을 항아라 한 것은 오랫동안 내재되어온 군자가 사는 죽지 않는 나라 조선 즉 우리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과 두려움을 떨치고 세상의 패자가 되려는 야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사와 전설을 우주계획과 절묘하게 연결시켜 내부통합을 하고 중화주의의 중흥을 이루려 하고 있다. 그것이 신선이 되는 단약이 될지 중금속에 중독될 지는 지켜볼 일이다.

반면에 우리는 세계 최초의 신주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었음에도 꽃을 피우지 못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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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8/26 [15:04]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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