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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즈 칸”은 “고구려 칸”이라는 말의 투르크어 형태 (4부)
 
전원철 법학박사 기사입력  2016/02/13 [22:57]

고구려-발해 왕가의 한 후손으로 드러나는 칭기스 칸의 이른 시기의 선조로 그의 “모골” 가문의 창시자(중시조)인 “모골 칸”의 손자가 바로 “오구즈 칸”이다. 오구즈 칸은 모골 칸의 아들인 “카라 칸”에게 또 다시 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오구즈 칸”은 서두에서 인용한 터키학자들도 인정하듯이 바로 <집사> 속의 “오구즈 칸”이고, 바로 이 인물이 터키를 비롯한 투르크인들이 말하는 전설적인 그들의 선조 “오구즈 칸(Oğuz Kağan)”이다. 

  칭기스 칸의 이른 시기 선조는 고구려(高句麗)-말갈(靺鞨) 가문의 인물들이다. 그들 가운데 한 세대인 “알린자 칸”의 두 쌍둥이 아들 가운데 작은 아들인 “모골 칸의 아들”로 난 “카라 칸의 아들”이 바로 “오구즈 칸”이다.  참고로 <투르크의 계보2> 속의 “알린자 칸(Alinca Han)”은 울룩 벡의 <사국사>에서는 “알무잔나 칸”으로 나오는 인물인데, 이 이름은 오늘날에는 “을지설 각간(乙支設 角干)”이라고 발음하는 이름의  옛 소리 “알라이(乙支) =*알린 + 설(設)=차르(*투르크어 “-자/-자르”) 카간(角干)=칸(한)”을 투르크어로 쓴 이름이다.

  이 두 가문 가운데 “타타르 종족”, 곧 ‘대대로(大對盧) 가문’이 인물들이 남긴 비문의 기록을 보면 이 두 가문의 이른 시기의 공동선조는 바로 고구려 시조 주몽(朱蒙)이다. 두 가문은 모두 주몽(朱蒙)의 후손들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이 고구려(高句麗)의 ‘대대로(大對盧) 가문’과 고구려(高句麗)-말갈(靺鞨) 왕가의 계보 속에 존재하는 한 사람인 모골 칸의 손자 “오구즈 칸(Oğuz Kağan)”은 분명히 “고구려인”이다. 특히 그는 고구려 왕가의 일원, 그 가닥족속의 한 사람이다.
 
▲     © 편집부

 4. “오구즈 칸”은 “고구려 칸”이라는 말의 투르크어 형태

  “오구즈 칸(Oğuz Kağan)”은 칭기스 칸의 선조인 고구려(高句麗)-말갈(靺鞨) 왕가의 계보 속에 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당연히 “고구려인”이다. 그런데 그의 이름(칭호) “오구즈 칸(Oğuz Kağan)” 자체도 역사언어학적 차원에서 보면 사실은 “이름+칭호”로 이루어진 고구려어 낱말이다.  
  
  우선 “오구즈 칸(Oğuz Kağan)”에서 뒷부분인 “-칸(Kağan)”이 분명히 고구려어임은 쉽게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에서는 “기자(箕子)와 가한(可汗)을 섬기고 있었다” 고 하여 “가한(可汗)”이라는 칭호를 이미 기원전 1100년전 인물에 관해 쓰고 있었다. 또  “가한(可汗)”에 대해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과 더불어 부여신(夫餘神), 곧 고구려 시조 주몽의 어머니에 대한 숭배 및 제사도 언급된다. 따라서 고구려인들이 기자가한과 주몽의 어머니 부여신을 섬긴 것은 고구려가 지어진 시기인 BC1세기로 올라갈 수 있다.

고구려 주몽의 서자 가문인 온조의 백제가문도 <삼국사기>에 따르면 수백 년 동안 국경을 넘어 부여신에게 제사지내는 그 특별한 날에는 서로 간에 빈번히 발생한 정치적 적대와 전쟁도 잠시 잊어버리고 한 핏줄, 한 집안의 일원으로 그 제사에 동참했다.   그 신성한 뿌리를 다시 돌아보곤 했던 계기가 된 선조에 대한 제사의 한 대상의 이름(칭호)로 쓰인 “칸(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고구려에서 “가한”이라는 말이 거의 기원전에 이미 쓰인 점은 이 글을 통해 이미 확인 되었다. 그렇지만, 그에 비해 투르크어로 “왕(King, emperor)”을 뜻하는 이 “-칸(Kağan)”이라는 말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구려어 “가한(可汗)”보다는 훨씬 나중인 530년경에 투르크(돌궐)의 칭호로 채용되었다. 이는 신라에서 “각간(角干)”에 앞서 520년에 쓰인 서불-한(舒弗-邯)보다는 좀 늦고, 신라어 “각간(角干: 이는 오늘날의 우리 말로 “큰 칸”이라는 뜻의 옛말 “커 칸”의 한자 이두식 표기로 보임)” 또는 “간(干)” 계열의 칭호가 551년에는 쓰인 것보다는 좀 이르다. 

  고대 조선어 낱말 “가한(可汗)”은 오늘날로부터 약 3100년전의 인물로 드러나는 기자의 직칭으로, 약 2000년 전인 고구려 초에도 사용되었다고 보이는 말이다. 단, 이와는 대조적으로 “투르크어”에서는 4~5세기경까지 “군장(君長)” 계열의 뜻을 가진 백제어 “솔(率)”과 고구려어 “살(薩)”에서 유래한 말로 보이는 “샤드(設, 설)”를 썼다. [좀 더 후세의 위구르 시대에는 이 지역에서 고대 동이어(東夷語) “벡(伯)”의 투르크어 형태인 “비(斐)”, 곧 “Biy”가 상당동안 쓰였다.]

그러다가 “코구려씨(鬱久閭氏, 울구려씨)”로 분명히 고구려어 계 인물로 유연(柔然* 옛소리로 ‘조젠/조센’, 곧 朝鮮), 곧 유유(蠕蠕, 조선과 유연의 탁발선비어(북위)식 변음)를 세운 “모쿠리(木骨閭, 목골려)”의 후손 사륜(社侖)이 처음 자기의 칭호를 “두대-가한(豆代-可汗)”이라고 했다. 이때는 오호 십육국 시대 북위의 제1대 황제인 도무제(北魏 道武帝, 371년 ~ 409년, 재위: 386년 ~ 409년) 때이다. 그러므로 그 때는 늦어도 400년대 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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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2/13 [22:57]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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