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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ökli čölgil은 돌궐비문에 나타난 고구려의 이름 (5부)
 
Pr. Osman Fikri Sertkaya 기사입력  2016/03/04 [22:48]

10. 위서(魏書), 북사(北史), 통전(通典), 통지(通志) 같은 중국 문헌들에 나오고 mu ku lü로 읽히는 낱말은 “대머리”를 뜻한다. 즉 사람의 머리에서 털이 나지 않는다. 이것과 평행하여 중국어-산스크리트어 사전에서는 kao li ~ gao li의 산스크리트어 상응어가 일본어 전사는 mo ku ri, 중국어 전사는 mu kü li로 이루어진다.

두 전사는 모두 그 뜻이 “모래투성이 나라”이다. 즉 나라의 토지가 모래투성이 사막이어서 식물이 자라지 않는다. 첫째 것에서는 사람의 머리에서 머리털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둘째 것에서는 그 땅에서 식물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mo ku 또는 mu kü (일본어로는 baku) 기호들이 사용되는 것은 숙고할 가치가 있는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11. 이제 쾰 티긴 비문과 빌개 카간 비문에 나오는 구절의 자역(字譯)과 전사를 제시하자:

: LiGLOC : iLKUB

B²ẄK²L²I : ČẄL²G²IL² :

bökli : čölgil :

: Cgbt

T¹B¹G¹Č :

t(a)bg(a)č :

: TOpUT

T²ẄPẄT² :

töpöt :

: rp

PR¹ :

p(a)r :

: mrup

PWR¹M :

(a)p(a) ur(u)m :

: zkrix

K¹IIR¹K¹Z :

kırk(ı)z :

: nkirqCO

ẄČK¹WR¹IK¹N¹ :

üč korïk(a)n :

: rttztu

WT¹ZT¹T¹R¹ :

otuz t(a)t(a)r :

: ytix

K¹IT¹NY :

kït(a)ny :

: ibtt

T¹T¹B¹I :

t(a)t(a)bï :

이 열두 종족 이름에서 오직 한국의 이름만 bökli čölgil 형태로 동의어로서 나온다. apa urum, üč korïkan 및 otuz tatar 종족 이름들은 형용사 수식 구문 구조로 표현되었다.

   öŋre kün : togsıkda : bökli : čölgil : t(a)bg(a)č : töpöt : p(a)r : (a)p(a) ur(u)m : kırk(ı)z : üč korïk(a)n : otuz t(a)t(a)r : kït(a)ny : t(a)t(a)bı bunça bod(u)n k(e)l(i)p(e)n : sïgtamïš : yoglamïš :     

   “동쪽에서 해뜨는 곳으로부터 bökli čölgil [한국], tabgač [중국], töpöt[티베트], par [이란], (a)p(a) ur(u)m [大로마], kırk(ı)z [키르기스], üč korïk(a)n [3 새끼양], otuz t(a)t(a)r [30 타타르], kït(a)ny [거란], t(a)t(a)bï [해(奚)] 이만큼의 백성이 와서 울었다 한다,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12. 끝으로 빌헬름 라들로프(Wilhelm Radloff)로부터 오늘날까지 이루어진 다양한 독법 및 설명들에 대하여 내가 처음으로 여기에서 밝힌 나의 독법과 해석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쾰 티긴 비문과 빌개 카간 비문에 나오는 구절 bök li ~ bük li는 중국어 낱말 *mo li 漠理의 mak ~ miek 또는 mê ~ mô 형태의 중국어 발음과 한국어에 있는 옛 발음을 튀르크 룬 글자들로 표기한 것임이 분명하다.     

   2. 중국어 구절 bök li ~ bük li 다음에 오는 낱말 čölgil은 구절 bök li ~ bük li의 “사막에 속하는, 사막의, 초원의”라는 뜻의 고대 튀르크어 대응어이다.     

   3. 구절 bök li čölgil ~ bük li čölgil은 중국어 bök li ~ bük li + 튀르크어 čölgil 형태로 중국어와 튀르크어로 된 중복어(synonim compositum) 이고 쾰 티긴 비문과 빌개 카간 비문에서 한국의 그 시대의 이름으로서 사용되었다.

BÖKLI ~ BÜKLI ~ BÖK ILI ~ BÜK ILI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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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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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藤田豊八, 「『蠕蠕の国号及び可汗号につきて』において」 [연연(蠕蠕)이라는 국호와 카간(Kagan)이라는 칭호에 대하여], 『東洋学報』 13, 1923, pp. 5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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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岩佐精一郎, 「古突厥碑文のBökli及びPar Purmに就いて [옛 돌궐 비문의 Bökli와 Par Purm에 대하여]」, 『岩佐精一郎遺稿』, 東京 1936, pp. 6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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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ques Bacot, “Reconnaissance en haute Asie septentrionale par cinq envoyés ouigours au VIIIe siècle [8세기 5명의 위구르 사절에 의한 위쪽의 북부 아시아에서의 인식]”, Journal Asiatique, 244, 1956, pp. 137-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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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

Gari Ledyard, “The Mongol Campaigns in Korea and the dating of Secret History of the Mongols”, Central Asiatic Journal, IX, 1964, pp. 1-22.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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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護雅夫, 「いわゆるbökliについて-民族學と歷史學との間- [이른바 bökli에 대하여 -민족학과 역사학의 사이]」, 『江上波夫敎授古稀記念論叢 ‒ 民俗·文化篇』, 東京, 1977, pp. 299-324)

1977

Moriyasu Takao, “Chibetto-go shiryô chû ni arawareru hoppô minzoku: Dru-gu to Hor”, Ajia Afurika gengo bunka kenkyû, 14, 1977, pp. 1-48
(森安孝夫, 「チベット語史料中に現れる北方民族: Dru-guとHor [티베트어 사료 중에 나오는 북방민족: Dru-gu와 Hor]」, アジア・アフリカ言語文化研究, 14, 1977, pp. 1-48.)

1981

Masao Mori, “‘Bökli’ veya ‘Bükli’ şekillerinde transkripsiyon edilen bir kelime üzerine [‘Bökli’ 또는 ‘Bükli’ 형태들로 전사되는 한 낱말에 대하여]” VIII. Türk Tarih Kongresi (Ankara: 11-15 Ekim 1976) [제 8 회 터키 역사 학술회의(앙카라: 1976년 10월 11-15일)]. Kongreye sunulan bildiriler [학술회의에 제출된 발표문들]. II. Cilt [제 2 권], pp. 579-582.

1992

Toru Senga [千賀徹?], “‘Northern’ Neighbors of the Khazars around 750 A. D.”, Ural-Altaic Yearbook, 64, 1992, pp. 59-71.

1993

Talat Tekin, Hunların Dili [흉노족의 언어], Mayıs 1993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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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Duck-chan Woo, Juan-Juan’lar [연연(蠕蠕)족], Hacettepe
Üniversitesi Sosyal Bilimler Enstitüsü [하젵테페대학교 사회과학대학원], Yayımlanmamış Doktora Tezi [발간되지 않은 박사학위논문], Ankara 1995, pp. 16-17.

2012

Kürşat Yıldırım [퀴르샤트 이을드름], “Tatar adının kökeni üzerine [타타르라는 이름의 기원에 대하여]”, Türkiyat Mecmuası [튀르크학 학술지], 22, Güz [가을] 2012, pp. 171-190

2013

Kürşat Yıldırım, “Juan Juan adı üzerine [연연(蠕蠕)이라는 이름에 대하여]”, Türk Kültürü incelemeleri Dergisi [튀르크 문화 연구 학술지], İstanbul 2013, pp. 1-10.

2013

Kürşat Yıldırım, “An Opinion on the Meaning of the Name ‘Ruanruan’”, Central Asiatic Journal, 56, Wiesbaden 2012-2013, pp. 35-40.

저자가 모르고 있는 논저로서 다음의 것이 있다:
Yong-Sŏng Li, “Zu QWRDNTA in der Tuńuquq-Inschrift [투뉴쿠크 비문에 있는 QWRDNTA에 대하여]”, Central Asiatic Journal, 47/2 (2003), pp. 229-241; p. 236에서 이 낱말을 bök(kü)li (< *bäkküli < *mäkküli 貊句麗) 또는 bök(kö)li (< *bäkköli < *mäkkoli 貊高麗)로 읽을 수 있다고 밝혔다. (Talat Tekin, 이용성 역, 『돌궐비문연구 – 퀼 티긴 비문, 빌개 카간 비문, 투뉴쿠크 비문』, 서울 2008에서도 p. 90의 역주 47, p. 221의 역주 42에서 다시 언급되었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최근에 한국에서 나온 두 편의 논문이 있다:
1) 김병호, 「오르혼 옛 튀르크語 비문과 한반도의 옛 이름 – 퀼 테긴 碑와 빌게 카간 碑에 나타나는 ‘Bökli’ 해석 -」, 『東北亞歷史論叢』 42 (2013年 12月), 동북아역사재단, pp.7-45.
[김병호는 p.28이후에 bök(kö)li로 읽으면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참고문헌에 Talat Tekin, 이용성 역, 『돌궐비문연구 – 퀼 티긴 비문, 빌개 카간 비문, 투뉴쿠크 비문』, 서울 2008가 있는데도, 이 번역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최초로 bök(kö)li 독법을 주장하는듯한 뉘앙스를 주고 있다.]

2) 노태돈, 「고구려의 대외관계와 북아시아 유목민 국가」, 『東洋學』 第58輯(2015年 1月), 檀國大學校 東洋學硏究院, pp. 193-202.




이상 Pr. Osman Fikri Sertkaya 교수의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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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3/04 [22:48]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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