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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즈 투르크 '바야트 씨족'의 데데 코르쿠트는 '부여 씨족 (6부)'
오구즈칸은 칭기스칸의 19대 선조인 발해왕 대조영의 4대 선조의 칭호
 
전원철 법학박사 북방민족사 연구가 기사입력  2016/03/19 [00:18]

  방금 우리는 투르크인들의 “오구즈 카간의 이야기(Oğuz Kağan destani)”에 나오는 “오구즈 카간(Oğuz Kağan)”이 바로 칭기스 칸의 19대 선조인 발해왕 대조영과 그 아우의 계보속에서 그들의 4대 선조로 확인되는 고구려-발해 왕족 한 인물의 이름(칭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오구즈 카간(Oğuz Kağan)”이 다스리는 투르크 종족이 바로 “오구즈 투르크”이다. 이들이 오늘날 터키를 비롯한 여러 지파의 투르크인들의 선조들 가운데 한 주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투르크 종족의 전설이 또 있다. 15세기에 글로 적힌 <데데 코르쿠트 이야기(Dede Korkut Hikayeleri)>이다. 이 전승에는 “데데 코르쿠트”와 그에 관련된 몇 가지 이른 바 “투르크 종족”들이 나오는데, 오늘날 터키 등 투르크인들은 그와 그의 속민들을 자신들의 선조로 본다.

이 이야기는 터키와 투르크메니스탄, 그리고 아제르바이잔 등의 나라에서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인 “데데 코르쿠트(코르쿠트 할아버지)” 또는 “코르쿠트 아타(코르쿠트 아버지)”는 오구즈 투르크 종족의 현명한 자문이자 영수로 묘사된다.

1) 바로 이 인물은 우리가 <투르크의 계보2>를 통해서 분석해 본 결과 시대적으로는 “고구려 각간(高句麗 角干)”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 “호구르 칸=오구즈 칸”과 거의 같은 시대의 인물이다.

2) 그는 또 부여왕 해모수(解慕漱)의 부여 왕성 “해 씨(解氏)”, 곧 고구려 왕성 “고씨(高氏)”와 바로 그 성씨에서 갈라져 나온 백제왕성 “부여 씨(夫餘氏)”를 가진 사람이다. 나아가 3) 오구즈 칸의 속민들인 “오구즈인(Oguzlar)” 또는 “독쿠즈(九姓) 오구즈인(Dokkuz Oguzlar)”인들의 지도자이다.     

그렇다면 이 “데데 코르쿠트(코르쿠트 할아버지)”는 바로 오구즈 칸 시대에 서방으로 이동한 고구려 왕족과 그의 속민들의 영수라고 간주할 수 있다. 오구즈 칸이 고구려 계인물이라는 우리의 결론을 더욱 굳게 해주는 인물이다.

▲ 터키의 신화 데데코르쿠트에 대한 12편 이야기 중 한 편의 세밀화     © 편집부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해 보기 위해 우선 “데데 코르쿠트 이야기(Dede Korkut Hikayeleri)"를 살펴 보자. 연구자들은 그 책은 이른 시기의 투르크 종족의 전설을 오스만(Osman) 시대의 초기에 적은 글로 간주한다. 한 예로 터키 학자 케말 벡(Kemal Bek)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투르크 글로 설명된 전통의 기본적 작품 가운데 하나인 데데 코르쿠트라는 책의 원래의 이름은 [*독일의] 드레스덴(Dresden) 도서관에서 발견된 원고로 ‘오구즈 종족의 언어로 쓰인 코르쿠트 할아버지의 책(Kitab-i Dedem Korkut 'ala Lisan-i Taife-i Oguzan(Oguzlarin Diliyle Dedem Korkut Kitabi)"이다. 바티칸(Vatican)에서 발견된 원고에서는 카잔 벡과 그 밖의 오구즈의 書의 이야기(Hikayet-i Oguzname-i Kazan Beg ve Gayri(Kazan Bey ve Ötekilerin Öyküleri)이다. 이것들은 대략 15세기에 기록된 원고가 아니고, 최초의 원고에서 더 나중에 베껴진 서로 다른 원고임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곧 고대의 어느 시기에 생겨난 데데 코르쿠트 전승이 나중에 글로 옮겨졌고, 그것은 15세기에 다시 기록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단, “데데 코르쿠트는 전설에 나오는 영웅의 한 사람이 아니다. 데데 코르쿠트는 실지로 살아갔는지 살아가지 않은지도 알려지고 있지 않다”      

  한편 데데 코르쿠트는 진지한 사서인 <투르크의 계보(Secere-i Tarokime)>에도 기록되어 “코르쿠트 아타(Korkut Ata, 코르쿠트 아버지)”로 나온다. 이와 관련하여 아틸라 외즈키름리(Attila O'zkirimli)는 “<투르크의 계보(Secere-i Tarokime)>에 따르면 그는 295년 또는 300년을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카이 씨족(Kayi boyu)의 카라 호자(Kara Hoca)이다”라고 지적하고, 나아가 “데데 코르쿠트”는 실존의 역사적 인물이라고 본다.

그는 나아가 “오늘날 알려진 무덤은 타쉬켄트에서 코잘리(Kozali)에 오면서 코르쿠트 역이라는 이름이 주어진 곳에서 시르다리야의 아랄 호로 흘러 들어가는 지점이다.(각주2)”라고까지 한다.  이처럼 그의 무덤이 있다면, 그 무덤 자체가 가짜가 아닌 한, 그 “코르쿠트 할아버지”는 비록 그 자신의 이야기는 전설화되어 전해졌을지라도 그 자신은 분명히 역사적 인물이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데데 코르쿠트 이야기>는 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늘(Tanri)의 평안이 그에게 나릴 하즈라티 무함마드(Hz. Muhammed) 때에 가까운 시기에, 바야트 씨족(Bayat boyu)에서 태어난 코르쿠트 아타(Korkut Ata)라고 불리는 한 사내가 나왔다. 이 인물은 오구즈인들(Oguzlar)의 완전한 지자(知者)였다. 무엇을 말해도 되었다. 아는 것으로부터 여러 가지 소식을 이야기해주었다. 높은 하늘(Yüce Tanri)은 그의 정신에 영감을 불어주었다.     

코르쿠트 아타가 말하기를: ‘마지막 시대에 칸국은 다시 카이(Kayì)에게 주어질 것이다. 최후의 시대가 와서 부활이 일어날 때까지 누구도 손에서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한 것은 오스만 가문이다. ... 코르쿠트 아타는 오구즈 씨족의 문제들의 풀이 자체였다. 어떤 일이 있으면 코르쿠트 아타에게 상의하지 않고서는 실행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그는 고대 오구즈 투르크 종족의 지적인 영도자이자 오늘날 투르크인들이 자신들의 선조의 하나로 간주하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그가 살았던 시대는 언제인가? <데데 코르쿠트 이야기>는 이에 관해 그 때가 “하즈라티 무함마드(Hz. Muhammed) 때에 가까운” 때라고 했다. 알라(Allah)의 사도 예언자 무함마드는 일반적으로 서기 570년경~632년 6월 8일 사이에 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코르쿠트 아버지”도 이 시기의 인물인데, 이는 동아시아에서는 바로 고구려 말기이다.      

▲ 데데 코르쿠트에 대한 그림     © 편집부

  그러면 그는 과연 어떤 역사적 실존인물인가? 이 물음과 관련하여 중요한 점은 <데데 코르쿠트 이야기>는 그가 “바야트 씨족(Bayat boyu)에서 태어난” 인물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묘술은 우리의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기록이다. 왜냐하면 그 “바야트 씨족(Bayat boyu)”이라는 말은 달리 우리 옛말 고구려-백제어로는 “부여 씨(夫餘氏)”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 조선민족과 매우 달라 보이는 터키인들의 선조가 고구려-백제 성씨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믿을 수 없을 지경이다. 분명히 이 “바야트 씨족(Bayat boyu)”이라는 말은 바로 고구려의 “고씨(高氏)”와 그에서 갈라져 나온 백제의 “부여 씨(夫餘氏)”가 투르크어 형태로 바뀐 말이다. 왜 그런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고구려, 백제, 발해, 몽골 왕족의 성씨의 유래와 그들이 상호 친족관계에 있음을 잠시 보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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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3/19 [00:18]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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