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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 '바야트 씨족'의 의미는 '부여(말갈) 씨족' (7부)
몽골비사, 집사, 투르크의 계보, 데데 쿠르쿠트 이야기 등에 기록
 
전원철 법학박사 북방유목민족사 연구가 기사입력  2016/03/30 [19:54]

우선 고구려 왕족 “고씨(高氏)”와 그 씨족의 지파인 발해 왕족의 “걸씨(乞氏)”는 모두 “부여씨”에서 갈라져 나온 성씨이다. <신,구당서(新, 舊唐書)> 등 사서는 고구려 왕족과 백제 왕족을 “부여별종”, 곧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씨(앗)”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한문사서들은 또 발해말갈의 왕족에 관해서도 그들이 “고려에서 갈라져 나온 씨앗”, 곧 “고려별종(高麗別種)”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무경총요(武經總要)>는 그들이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무리”, 곧 “부여별류(夫餘別類)”라고 한다. 이 두 기록은 사실은 다 같은 말로 서로 보충하는 말이다. 이 발해의 “부여씨”는 몽골어로는 황후 가문인 콩그라트 씨족의 성씨 “부르-(테)” 씨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 말로는 “부여(夫餘)-대(大)”씨, 달리 “부여(夫餘)-걸(乞)”씨이다. 칭기스 칸의 “보르-지-긴”씨도 “부여-씨-행(行=干)”씨로 “부여씨”라는 말이다. 이 몇 가지 “부여씨”는 모두 투르크 “바야트 씨족(Bayat boyu)”의 원류이다. 

▲ 송나라 때 편찬한 병서로 모두 40권으로 된 군사상의 기술서적     © 편집부
   
그렇다면 이제 투르크의 “바야트 씨족(Bayat boyu)”을 기록한 사서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몇 가지만 보자.

첫째는 1200년대 칭기스 칸 생시에 기록된 것이 명백한 <몽골비사>이다. 이 사서는 칭기스 칸의 9대 선조 보돈차르, 곧 <집사> 계열의 서방 사서가 “보잔자르”라고 부르는 인물의 탄생과 관련하여 그의 감추어진 부계 측 씨족을 기록했다. 그것은 곧 “마가릭(Maalig) 바야우드(Bayaguday) 씨”, 곧 “말갈 바야-우드(씨)”이다.  이는 현대의 우리말로 옮기자면 “말갈, (곧 고구려) 부여-씨”를 말한다. 곧 고구려-말갈어의 “말갈 부여씨”의 몽골어 형태인 “마아릭 바야우드씨”라는 말에서 “바야우드 씨족”이 투르크어 형태로 바뀐 것이 바로 “바야트 씨족(Bayat boyu)”이다.  
 
▲ 내몽골 다구르족 에르덴타이와 아르다잡선생 주해 《몽골비사》 위구르 몽문판(좌), 《황금사강》=《알탄 톱치》는 티베트-몽골계 사서로 칭기스칸의 9대조 보잔자르(보돈차르)의 부계의 계보를 비밀코드로 기록한 사서(우)    ©

둘째는 보잔자르와 칭기스 칸의 후손으로 일 칸국(Il Khaanate)의 황제 가잔 칸이 1300년대에 쓰도록 명한 <집사>의 기록이다. 이 사서는 오늘날 부랴티아의 바르고진 토쿰 지방에서 살던 “바야우드”씨에 관해서 기록했다. 이는 <데데 코르쿠트 이야기>가 말하는 “바야트 씨족(Bayat boyu)”과 같은 씨족이다.

  또 하나의 사서는 히바 칸 아불가지 칸이 쓴 <투르크의 계보(Secere-i Tarokime)>이다. 그가 쓴 코르쿠트 아타의 계보를 오늘날의 표현을 빌어 설명해보자. 그러면 그는 고구려 왕족 “고씨(高氏)” 씨족의 지파인 발해의 “걸씨(乞氏)”, 곧 <사국사>와 <투르크의 계보>가 말하는 “키야트(Kiyat)”가 진국 칸(震國 王=渤海 王)의 후손 칭기스칸의 시대를 거쳐 서방으로 가서 모골-투르크화한 가문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울룩 벡이 쓴 <투르크의 계보(Secere-i Tarokime)>는 “코르쿠트 아버지”에 관해 “그의 아버지는 카이 씨족(Kayi boyu)의 카라 호자(Kara Hoca)이다”고 기록한다. 그렇다면 코르쿠트 아타의 “바야트 씨족(Bayat boyu)”은 그 아버지의 “카이 씨족(Kayi boyu)”과 같은 말이다.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 테헤란에서 발간된 《집사》 페르시아어의 한 본(좌)과 《집사》 아랍어 본(우).     ©편집부

위 두 번째의 “카이 씨족(Kayi boyu)”은 한자로 된 고구려 왕족 성씨 “고 씨(高氏)”와는 물론, 이 성씨의 다른 한자 표현방식인 “해 씨(解氏)”와 역사적 음운론상 완전히 같다. 이 성씨의 다른 형태인 “해 씨(解氏)”의 “해(解)”의 고대 발음은 오늘날에도 한자의 고대소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일본어 한자소리가 그것을 “카이(Kai=解)”라고 하듯이, 바로 “카이(Kayi)”이다. 그러므로 “카이 씨족(Kayi boyu)”은 곧 부여왕 해모수(解慕漱)의 부여 왕성 “해 씨(解氏)”, 곧 고구려 왕성 “고 씨(高氏)”이다. 

그렇다면 “바야트 씨족이자, 카이 씨인 데데 코르쿠트”의 “아버지는 곧 해 씨(解氏), 달리 고 씨(高氏)”이고, 그의 이름은 “카라 호자(Kara Hoca)”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의 이름(칭호) “카라 호자(Kara Hoca)”는 아래 아(.) 자를 쓴 우리 한글 고어를 참조하여 그의 이름을 다시 쓰면 그것은 “ㅋㆍㄹㆍ 호자”인데, 이는 곧 “코로(高麗) 호자”이다. “호자(hoca, khwaje)”는 이슬람 종교의 지역수령을 말한다.      

 
▲ 무용총 수렵도의 호랑이/사슴 사냥과 흡사한 '데데 쿠르크트' 책표지     ©편집부
뿐만 아니라, 라시드 웃딘이 쓴 <집사>의 오구즈 칸의 계보는 “오구즈 칸의 맏아들” “쿤 칸”의 후손(*아들)으로 “카이”와 “바야트”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 두 아들의 후손이 <데데 코르쿠트 이야기>에 나오는 투르크의 “카이씨”와 “바야트씨”로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두 투르크 씨족은 바로 주몽(朱蒙) 가문의 성씨 “해씨(解氏)=고씨(高氏)” 및 “부여씨(夫餘氏)”와 그 옛 소리가 같고, 결국 같은 것을 투르크어와 오늘날의 고구려-말갈어, 곧 우리말로 읽은 차이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선 “오구즈 칸”은 ‘고구려 칸’이며, “오구즈인들(Oguzlar)”은 서방의 투르크 지역으로 간 “고구려 백성”의 무리이다. 그들 가운데 정신적 지주의 한 사람이었던 “코르쿠트 (할)아버지”는 “부여(바야트)씨-고/해(카이)씨”의 수령이며, 그 아버지는 “코로(高麗) 호자”로 이슬람을 받아들인 사람이다. 계보상으로 본다면 그들은 오구즈 칸의 큰 아들 “쿤 칸”의 아들 세대 또는 그에 가까운 후손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이들이 살아간 시기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라술 일라(Rasul Illah) 무함마드(Muhammad)의 시기에 매우 가까운 그 뒷시대 또는 그와 거의 동시대의 인물들이다. 특히 <오구즈 사>에 나오는 “오구즈 칸”과 “코르쿠트 아타”와 그 아버지 “카라 호자”는 모두 이슬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기 570년경~632년 6월 8일 사이를 살아간 무함마드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아갔지만, 그보다는 조금 늦은 해들을 살아간 인물들이다.      

  그런데 오구즈 칸의 맏아들 “쿤 칸”은 대조영과 대야발의 3대 선조인데, 이 “쿤 칸”의 후손 씨족인 “카이”와 “바야트” 씨(*종족)는 대조영과 대야발의 2세대 선조, 곧 할아버지 세대이다. 그렇다면, 대조영(?~719, 재위 698~719)이 죽은 때인 719년을 기준으로 보면, 그의 할아버지 세대는 30년 x 2세대가 앞선 659년경 인물들이다. 이는 바로 <데데 코르쿠트 이야기>가 전하는 “바야트-카이 씨의 코르쿠트 아타”의 시대와 27년 차로 거의 일치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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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3/30 [19:54]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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