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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방을 오고 간 고구려와 투르크 종족의 역사적 관계 (8부)
유럽을 정복한 아틸라는 男生의 뜻, 투르크로 망명한 고려왕 고문간
 
전원철 법학박사 북방유목민족사 연구가 기사입력  2016/04/12 [00:24]

6. 동·서방을 오고 간 고구려와 투르크 종족의 역사적 관계 약사

  역사적으로 볼 때 오늘날 터키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의 투르크인들은 흉노(匈奴)의 위대한 서방 정복자 “아틸라(Attila)”를 오늘날 몽골리아와 북방 지나 땅 등 동방에서 서방으로 이동해온 투르크 종족 자신의 선조 가운데 하나라고 간주한다. 이는 그와 그의 종족이 원래 동북아시아인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단, “아틸라(Attila)”라는 이름 자체는 터키 등에서도 자주 쓰이는 이름이지만, 오늘날의 투르크어로는 그 뜻풀이가 되지 않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흉노인이라고 보통 말하는 그 아틸라가 원래 살았던 동북아시아의 몽골과 만주에서 흉노의 이웃 종족으로 살아간 고구려의 향찰 읽기 방식으로 이 이름은 쉽게 풀이가 된다. 고구려에서는 “아달라(Adal-la/Adal-na)”, 곧 “男(아달)-生(나)”로 읽는 개소문의 큰아들 개남생의 이름이 있었고, 신라에서도 신라 제 8대왕 박-아달라 님금(阿達羅 尼師今, 일성왕(逸聖王)의 맏아들, 154년~184년)의 이름으로 “아틸라(Attila)”와 같은 이름이 쓰였다.      

  이 이름들이 서로 같은 이름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콩그라트(고구려) 왕가의 황금의 책인 <행운의 정원(Firdaws al Iqbal)>은 개소문의 큰아들 “男(아달)-生(나)”의 이름이 투르크어로 한자를 뺀 당시의 고구려 소릿말 이름 “아달라(아달-나)”와 같은 소리인 “오틀리 칸(Otlixon)"으로 적는다. <투르크의 일반사>는 이를 "아틀리(Atli)-칸(Khan)”으로 적는다. 

또 히베한 아불가지의 <투르크의 계보 2> 터키어 본은 이를 “아들리 한(Adli Han)으로 적는다. ”타타르(대대로) 종족“의 4대 칸으로 고구려 식 향찰로 읽은 “男(아달)-生(나)”의 이름에서 한자를 뺀 고구려 소리로 된 이름을 투르크어로 적은 이 세 가지의 이름들은 매우 작은 정도의 “-a-” -> “-e-” -> “-i-” 모음변화는 보여주기는 해도 모두 정확히 같은 이름이다. 

  이 “아틸라”라는 이름은 그 뜻이 고대조선어로는 쉽게 “아달(男)이 났다(生)”라는 뜻으로 풀리는 이름이다. 그렇다면 “아틸라”와 그 일족이 동방에서 살았고, 어쩌면 그 자신도 “흉노”라고 불린 고대 “조선민족”의 일파였다는 놀라운 결론도 나올 수 있다. 좀 더 연구해 보면 그 관점이 올바를 것이다.

▲ 동.서로마제국과 아틸라제국의 영토     © 편집부

 “아틸라”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록상으로 확실히 확인이 가능한 투르크 종족의 선조 중의 하나는 돌궐의 아시나(阿史那氏) 가문인데, 이들도 동북 아시아에서 서방으로 간 부락의 하나이다. 아시나 가문은 오늘날의 몽골리아와 부랴티아, 키르기즈의 겜 강 유역, 그리고 만주북방에서 살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들의 일부는 오늘날의 위구리스탄(신강), 키르기즈스탄을 거쳐 서방으로 옮겨간 부락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아시나 씨 돌궐의 칸인 “바가투르(默啜, 묵철)”의 가문은 고구려가 망한 뒤 망명해온 고구려 마지막 왕 보장왕 고장(高藏)의 아들이나 손자로 판단되는 고려왕 막리지 고문간(高麗王 莫離支 高文簡)과 고공의(高拱毅) 일행 중 고문간에게 칸 자신의 딸인 아시나 씨의 부인을 시집보내고 그들을 도우며 머나먼 요동(遼東) 고구려의 옛 땅으로 귀국할 수 있도록 돌궐과 고구려 왕과 백성들 사이의 화친을 다졌다.      

  고문간 일행은 715년 당나라의 변방, 아마도 하서(河西)를 거쳐 당으로 들어왔다. 당시 당나라는 사라진 고구려를 이어 그 자리에 발해(渤海)가 들어서서 또 다시 당나라에 위협이 된 상황을 맞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들이 당나라의 변방으로 온 것을 보자 당나라는 “얼씨구나, 좋다” 하고 환영했다. 발해를 견제하기 위해 그들을 고구려 고토 요동(遼東) 지역의 서쪽 영토 요서(遼西) 지역으로 보내 “요서군왕(遼西郡王)”의 자리를 주고 발해의 위협을 방어하게 한 것이다.      

▲ 셀주크 투르크의 영토                                                                                                   © 편집부

  한편 투르사사와 서방사서에 나타나는 셀주크 투르크(Seljuk Turk)인들에 관해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몽골리아의 동부 외투켄 산에서 몽골 서쪽과 카자흐스탄의 천산, 그리고 알타이-사얀 산맥에서 처음에 활동하다가 서방으로 이동해간 종족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이 셀주크 투르크의 기원시기는 시대는 고구려 멸망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원이라고 간주되는 돌궐 “회흘(回回纥/回鶻)” 부가 발흥한 것은 고구려 멸망 직후로 잡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발흥과 관련하여 눈여겨 보아야 하는 사서가 있다. 바로 <구당서>인데, 이 사서는 고구려가 망하고 “고장(高藏)이 영순년간에 죽자.... 그 왕과 백성들(高麗舊戶)이...돌궐(突厥)과 말갈(靺鞨)로 들어가서 고씨군장(高氏君長)은 사라졌다”고 한다. 곧 고구려 멸망 후 많은 고구려인들은 옛 투르크 종족에 가입한 것이다. 그런데, <집사>는 아직 고구려가 멸망하기 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이는 일을 가리킨 것으로 판단되는 한 가지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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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4/12 [00:24]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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