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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 단군왕검의 탄신일을 잊고 사는 대한민국 (1부)
석가탄신일 초파일과 성탄절 크리스마스는 공휴일로 지정한 정부
 
편집부 기사입력  2016/06/05 [15:14]

국조 단군왕검의 탄신일은 음력 5월 2일로 올해 2016년은 양력으로 6월 6일(월)이다. 이날 전국에 있는 단군 관련 단체에서는 천제를 지내는 등 많은 행사가 있을 예정이다. 원래 이런 성스럽고 뜻 깊은 행사는 국가가 주도해야 마땅할 것이나, 일제식민사학에 의해 단군이 신화 속의 인물로 되다보니 기념식은커녕 어떠한 조촐한 행사도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국조(國祖)를 곰의 신화로 보며 거들떠보지도 않는 정부는 아마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다.    

본 高句麗역사저널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나라였던 조선의 역년 2,096년을 재조명하는 특집시리즈를 기획 연재할 예정이다. 고려 말 문하시중을 지낸 행촌 이암 선생이 저술한 <단군세기>의 기록 중 역사와 관련된 내용을 추려 알기 쉽게 해설해 조선이 얼마나 위대한 나라였는지를 알아보기로 하겠다.

(단군세기 원문) “왕검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고 어머니는 웅씨(熊氏)의 왕녀이며 신묘년(B.C 2370년) 5월 2일 인(寅)시에 박달나무 밑에서 태어났다. 14세 갑진년(B.C 2357년)에 웅씨의 왕은 그가 신성하다는 말을 듣고 비왕(裨王)으로 삼고 큰 읍의 다스림을 대행하도록 하였다.

무진년(B.C 2333년) 제요도당(帝堯陶唐) 때 단국(檀國)으로부터 아사달의 단목의 터에 이르니 온 나라 사람들이 받들어 천제(天帝)의 아들로 모시게 되었다. 이에 구환(九桓)이 모두 뭉쳐서 하나로 되었고 신과 같은 교화가 멀리 미치게 되었다. 이를 단군왕검이라 하니 비왕의 자리에 있기를 24년, 제위에 있기를 93년이었으며 130세까지 사셨다.”    

(해설) 단군왕검의 아버지는 배달국의 마지막 18대 거불단 환웅(居弗檀桓雄)이며, 어머니는 웅씨의 왕녀이다. 배달국은 단군조선 이전에 18분의 환웅이 1,565년간 다스렸던 나라이다. <단군세기>에서 말하기를, 왕검의 어머니는 곰이 변한 여자가 아니라 곰을 토템으로 하던 웅씨 나라의 공주(왕녀)였던 것이다. 웅씨의 왕은 14세의 신성한 인물인 왕검을 비왕으로 삼아 대리청정을 맡겼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는 <삼국유사>에 있는 은유적인 간단한 이야기를 근거로 단군을 곰의 신화로 둔갑시킨다. 생물학적으로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에도 단군을 곰의 신화를 조작해 조선인을 조상과 역사가 없는 우매한 민족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식민사학이 해방 후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아직도 우리 국민들은 곰이 기도해 변한 웅녀라는 여인이  환웅과 결혼해 단군을  낳은 것으로 알고 있는 실정이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백과사전의 내용 역시 “<삼국유사>에 따르면, 곰과 호랑이가 환웅에게 나타나 사람이 되기를 원하자, 환웅은 쑥과 마늘을 주며 그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곰은 그것을 먹고 21일 만에 여자가 되었으나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나가버리고 말았다. 사람이 된 웅녀는 혼인할 이가 없어 늘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잉태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이 잠깐 몸을 변하여 웅녀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는데 이가 단군왕검(檀君王儉)이었다고 한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 웅족과 호족의 백성들을 동물 곰과 호랑이로 은유적으로 표현한 <삼국유사>의 기록을 근거로 일제가 조작한 단군신화 이야기를 아직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굳게 믿고 있다.                                                                       © 편집부

그러나 <태백일사 신시본기>에는 단군왕검 탄강(誕降)에 대해 “<삼성밀기>에서 말한다. 환국의 말기에 종족의 이름이 서로 달랐으니 풍속도 차츰 달라져서, 원래 살던 백성을 호랑이라 하고 새로 살기 시작한 백성을 곰이라 했다. 그런데 호랑이는 성질이 탐욕스럽고 잔인하여 약탈만을 일삼았고, 곰은 어리석어 사람을 따르지 않고 자부하는 마음이 세어 조화되기를 거부하였으니, 같은 굴에 살았지만 점점 멀어지고 지금까지 한 번도 서로 돕지도 않고 혼사도 트지 않을 뿐 아니라 일마다 서로 따르지도 않고 아직 한 번도 뜻을 함께 한 적이 없었다.

이에 이르러 웅녀의 임금(熊女君)은 환웅에게 신덕이 있다함을 듣고 곧 무리를 이끌고 가서 뵈옵고 말하기를 '바라옵건대 하나의 굴을 내리시어 하나같이 신계(神界)의 백성이 되게 하시기를 비옵나이다.'라고 하니, 환웅께서 마침내 이를 허락하사 이를 맞아들이고 아들을 낳게 하였다. 호랑이는 종내 깨우칠 수 없는지라 이들을 사해(四海)로 쫓아버렸다. 환족(桓族)의 일어남이 이에서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환웅은 신이 내리신 물건으로 신령스러운 삶을 알게 하였으니 바로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를 주며 '이를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저절로 참된 평등을 이루어 만물을 구제하고 쉽사리 사람까지 교화하는 대인(大人)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나, 곰과 호랑이의 양가(兩家)는 이를 먹고 3·7일 수련에 힘쓰니, 웅족은 고통을 견디어 건강한 모습의 여자로 되었으나, 호족은 태만하고 조심하여 경계를 지키지 못하여 천업(天業)을 함께 할 수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길림성 왕청현에 세워져 있는 곰상. 단군신화에 나오는 마늘과 쑥도 보인다.                                                                            © 편집부

즉 <삼국유사>처럼 동물 곰이 여인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원래 살던 백성들은 호랑이족(虎族)이었고 새로이 살기 시작한 백성들은 곰족이었는데, 그 곰족의 여왕이 21일간의 수련 끝에 건강한 여인으로 거듭나서 환웅과 결혼해 단군왕검을 낳은 것이라는 전혀 다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참고로 동물학적으로 곰은 식육목() 곰과로 분류되는 동물이며, 인간은 영장목 사람과에 속하기 때문에 서로 수정이 되지 않는다.  

올해가 병신년(丙申年)이므로 국조 단군왕검은 지금으로부터 4,385년 전에 태어나신 것이다. 음력 5월 2일은 2016년 올해는 양력으로 6월 6일(월) 현충일이었으며, 인(寅)시는 새벽 4시 경을 말하는 것이다. 비왕이란 왕을 돕는 바로 밑의 직책으로 공(公) 정도의 대제후이거나 영의정급 또는 왕의 보좌역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물론 이번 단군왕검의 탄강일(誕降日) 역시 정부 차원에서는 어떠한 기념식도 없었다. 조상을 잊어버린 얼빠진 정부라 아니할 수 없다.  

▲ 올해 2016년 현충일과 겹친 단군왕검의 탄강일 역시 정부 차원에서는 아무런 행사가 없었다. 과연 우리는 누구의 자손이란 말인가?     © 편집부

중국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오제에 속한다는 요임금은 B.C 2383년 경 제곡고신의 시대에 도(陶)에 봉해지고, B.C 2357년 제지를 멸하고 당(唐)을 세웠다. 그래서 요임금을 도당씨라고 한다. <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요임금의 아버지는 제곡고신이며, 황제헌원의 후손이 된다고 한다. 요는 20살에 왕위에 올라 약 70년간 왕위에 있다가 동이족 순임금에게 왕위를 넘겨주는 인물이다. 

<부도지> 제17장에는 “도요가 천산의 남쪽에서 일어나는데 일차로 출성한 사람들의 후예이며 일찍이 제시의 모임에 왕래하고 서쪽 보의 간에게서 도를 배웠으나 원래 수에 부지런하지 못했으며, 스스로 제왕의 도를 주창하므로 소부와 허유 등이 심히 꾸짖고 거절했으며, 요는 무리를 모아 묘예를 쫓아내었는데 묘예는 황궁씨의 후예였으며 그 땅은 유인씨의 고향이었고, 후대에 임검씨(왕검)가 여러 사람을 이끌고 부도를 나갔기 때문에 그 비어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그를 습격하니 묘예가 마침내 동·서·북의 삼방으로 흩어졌으며, 요가 곧 9주의 땅을 그어 나라를 만들고 당도를 세워 부도와 대립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위 <부도지>의 기록에서 보듯이 단군왕검이 부도를 비웠을 때 요임금이 그곳을 습격하고는 9주의 땅을 그어 나라를 세웠다고 되어 있다. 즉 단군왕검이 비운 부도와 구주(九州)의 땅이 바로 산서성 임분시 일대란 말과 같은 것이다. 이 기록은 배달국의 제후였던 요가 임의대로 제왕을 참칭하며 반란을 일으켜 부도를 무단 점령한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청나라 때 만든 지도인 대청광여도에 요임금의 도읍이었던 평양(平陽)은 산서성 남부 임분시에 그려져 있다. 즉 요임금의 당나라가 이 근처에 있었다는 말이며, 요임금의 묘는 지금의 산서성 임분시 동쪽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묘는 분명 가짜 요임금 묘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여씨춘추(吕氏春秋)>라는 책에  "요를 곡림에 장사지냈다(尧葬谷林)"라는 기록이 있는데, 곡림은 현재의 (菏泽市 鄄城县 城南7公里处 富春乡 赵千庄村 南 谷林寺)에 요임금의 진짜 묘가 있기 때문이다.

▲ 산서성 임분시에 그려진 요임금의 도읍 平陽     © 편집부
▲ 산서 임분시 동쪽 에 조성되어 있는 가짜 요능. 아마 단군왕검의 능일 가능성이 크다.     ©편집부
▲ 산동성 하택시 견성현 7Km 남쪽에 있는 부춘향 월천장촌 남쪽에 있는 곡림사에 있는 진짜 요임금의 무덤   ©편집부

이러한 행위는 고대 이래로 원래 우리 민족의 땅이었던 산서성 임분시 일대를 중국 고대사의 무대로 만들기 위한 역사왜곡임이 명백하다. 산서성 남부에 있는 임분시 지역은 치우천왕이 황제헌원을 굴복시킨 탁록이 그 남쪽 운성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부여(조선)의 도읍인 장당경(藏唐京)이기도 하며, 번조선의 왕 기준이 위만에게 패하여 옮겨가 마한을 깨고 한(韓)을 세운 곳이기도 하며, 나중에 고구리의 평양성(平壤城)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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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6/05 [15:14]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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