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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태왕 비문에 임나일본부는 애당초 없었다 (9부)
임나일본부 있는 신묘년 기사는 6년 병신년 기사의 일부
 
성헌식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02/06 [22:19]

 

정한론(征韓論) 즉 일본의 조선침략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임나일본부설의 결정적 증거라는 호태왕비 신묘년 기사의 문구와 해석은 지금까지 아래와 같았다. 일본은 판독 불가능한 􀀀􀀀를 가야(임나)라고 임의대로 해석해 허구의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해석은 과연 옳은 것일까? 과연 삼한인 마한(백제)와 변한(가야)와 진한(신라)200년간 왜의 식민지였을까?

 

한자로 된 문장을 해석할 때는 끊어 읽기를 잘 해야 한다. 어떻게 문장을 끊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자기네 해석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到海 破百殘􀀀􀀀新羅以爲臣民으로 끊어 읽어 백잔(백제)과 신라는 예로부터 속민으로 조공을 바쳐왔다. 신묘년(391)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잔·가야·신라를 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라고 해석했다.  

 

▲ 일본정부는 아직도 허구의 임나일본부설을 일본역사교과서에 싣고 있다     ©편집부

 

 

이에 대해 재일사학자 이진희 선생은 일제가 비문을 석회로 조작했다는 석회도부설(石灰塗付說)’을 주장했으며, 전북대 중어중문학과 김병기 교수는 서예학적으로 볼 때 비문의 ··는 원래의 , , 가 변조된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형구 박사 역시 서법에 대한 논증을 통해 자를 자로 보고, ····이 변조된 것으로 보고 해독했다. (해독문은 아래 참조)

 

비문이 변조되었을 가능성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쓴 <조선상고사>에 있는 문구에서도 찾을 수 있다. “비문 가운데 고구려가 선비의 땅을 침노해 빼앗은 글자는 모두 도부로 쪼아내 알아볼 수 없게 된 글자가 많고, 그 뒤에 일본인이 이를 차지하여 영업적으로 비문을 박아서 파는데 왕왕 글자가 떨어져 나간 곳을 석회로 발라 알아볼 수 없는 글자가 생겨나서 진실은 삭제되고 위조한 사실이 첨가된 느낌도 없지 않다."

 

▲ 이진희 선생의 석회도부설. 비가 오자 호태왕비에 새겨진 글자에서 석회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편집부
▲ 전북대 김병기 교수가 주장한 渡·海·破 글자 변조설     ©편집부

 

정인보 선생은 비문을 일본의 주장 그대로 놓되, 끊어 읽기를 달리하고 주어를 왜가 아닌 생략된 고구려로 해석해 “(고구려는) 신묘년 이래로 왜가 도래하자 바다를 건너 백잔을 깨고 신라를 구원해 신민으로 삼았다.”로 해석했다. 고구려인이 새긴 비에 왜가 주어가 되는 문구가 있을 수 없다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다. 


이외 여러 주장들이 있으나, 관련 책자를 낸 몇몇 학자들의 역문을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중국인 왕젠쥔(王健群) 백제와 신라는 과거에 우리 고구려의 속국이라 계속해서 우리에게 조공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신묘년 이래로부터 왜구가 바다를 건너 백잔과 신라를 쳐서 그들을 신민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때부터 백잔과 신라는 우리에게 칭신과 조공을 하지 않았다) --> 일본의 주장과 거의 같다.

 

(박시형)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의 오랜 속민들로서 이전부터 조공을 바쳐 왔다. 왜가 신묘년에 침입해왔기 때문에, 고구려는 바다를 건너가서 그들을 격파했다. 그런데 백제는 [왜를 끌어들여] 신라를 침략하고 그들을 저희 신민으로 삼았다. -->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가 왜를 격파했고, 백제가 신라를 신민으로 삼은 것이라는 주장.

 

(이형구) 백잔과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속민으로서 조공을 바쳐왔는데, 그 후 신묘년(391)부터 조공을 바치지 않으므로 (광개토태왕)은 백잔·􀀀􀀀·신라를 파하여 이를 신민으로 삼았다. --> 倭라는 글자를 後자로 보아 해석했고, 來·渡·海를 不·貢·因으로 해독했다. 왜에 대한 해석이 없어졌고, 􀀀􀀀를 倭寇로 보아 고구려가 백잔·왜구·신라를 파하고는 신민으로 삼았다는 주장. 


(이유립) 백잔과 신라는 예전부터 우리의 속민으로 이때까지 조공해왔는데 왜가 신묘년에 침범해오니 왕께옵서 바다를 건너가서 깨뜨리시었더니 백잔이 왜를 끌어다가 신라를 침노하게 되었다. 왕께옵서 말씀하시기를 ‘모두 우리의 신민이었다’고 하시면서..--> 바다를 건너간 주체인 고구려가 왜를 깨뜨렸고, 백제가 왜와 함께 신라를 침략한 것이라는 주장.

 

(구리시 광개토광장 비문) 백잔과 신라는 옛 속민인데도 아직까지 조공을 바치지 않고, 왜는 신묘년(391)부터 [바다를􀀀] 건너왔다. 그래서 􀀀은 백잔과 􀀀을 공파하고, 신라는 􀀀하여[복속시켜] 신민으로 삼았다. --> 단국대 서영수 교수가 주도해 해석했는데, 첫 구절 조공관계 해석이 이상하고 백잔을 깨고 신라를 신민으로 삼은 주체를 􀀀 처리했다. 􀀀는 왜로 읽히도록 유도한 것으로 일본의 주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김덕중) 백잔과 신라는 예전부터 이곳에 살던 권속과 동족이니 전통적으로 조공을 거래했고, 왜는 신묘년부터 해마다 바다를 건너 조공을 가지고 왔다. 백잔이 안라를 파하고 신라를 신민으로 삼으려하므로 --> 왜가 바다를 건너온 이유가 침략하려는 군사적인 목적이 아니라 조공을 바치기 위해 왔다는 파격적인 주장이다.

 

이렇듯 연구하는 학자들마다 견해에 따라 글자를 다르게 보기도 하고, 해석 또한 제각기 다른 '지록위마(指鹿爲馬)'여서 어느 내용이 호태왕의 참역사인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일제식민사학에 물들지 않은 비 제도권의 몇몇 뜻있는 재야학자들이 모여 ‘호태왕비문연구회’를 결성하고 지금까지 발표되었던 탁본과 번역문 16개를 놓고 1년 넘게 연구해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해냈다.

 

참고한 자료는 조소앙, 김택영, 이덕수, 이유립, 김육불, 이형구, 박시형, 서영수, 광개토광장비, 증보문헌비고와 회여록, 일본인 미즈다니(水谷悌二郞)와 이마니시(今西龍), 중국인 진위푸(金毓黻)과 왕젠쥔(王健群)의 역문이다. 서로 글자를 달리 본 것은 원석탁본을 정밀하게 검토해 원문에 최대한 근접한 글자를 찾아냈으며, 학자마다 다른 해석은 여러 참고자료를 동원해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비문에 새겨진 참역사와 가장 가까운 지를 연구하는 작업이었다. 

 

 

 

소위 신묘년 기사는 없었다

 

먼저 아래 비문에서 보듯이, ‘1637번째 글자부터 시작하는 호태왕 5(을미) 기사인 비려 정벌의 공적을 새긴 후, 문제의 신묘년이 들어간 기사는 1834번째 글자 ~ 1924번째 글자까지의 문구로, 그 다음에 이어지는 6년 병신년에 호태왕이 백잔(백제)을 토벌하는 이유를 새긴 내용이다.

 

(1637번째 글자부터) 其詞曰 昔祖永樂五年歲在乙未 王以碑麗不息征旅躬率往討 過富山負山至鹽水 攻破其三部族六七百營 牛馬羣羊不可稱數 於是旋駕因過襄平道 東來候城力城北豊五遊觀土境田獵而還 (1834번째 글자부터)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到海破百殘􀀀􀀀新羅以爲臣民(1925번째 글자부터) 以六年丙申王躬率水軍討利殘國軍至窠首攻取壹八城 (이하 열거된 성 이름 생략)

 

문구의 내용으로 보았을 때 영락 5년의 비려 정벌과 신묘년의 내용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신묘년이 들어간 이 문구는 마땅히 병신년에 속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6년 병신년 기사라고 불러야 함에도, 일본이 임나일본부설로 조작하면서 신묘년 기사라는 이름이 임의대로 붙여진 것이다. 비의 문장은 연도순으로 기술되어 있다. 5년 을미년(395)6년 병신년(396) 사이에 호태왕 원년인 신묘년(391)의 기록이 끼어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다음 연재에 새롭게 해석된 6년 병신년 기사가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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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2/06 [22:19]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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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가로폭이 프레임보다 커서 한 행의 오른쪽 끝부분 기사는 안보이임 한국인 18/02/07 [11:58]
제목과 같습니다. 기사 행의 폭이 프레임보다 길어서 행의 끝부분은 안보이네요...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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