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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나라와 조선의 국경선 패수에 대한 기록들(1부)
사마천 편찬 <사기 조선열전>에 ‘패수’ 7회 기록
 
김종서 역사모 회장 기사입력  2018/03/01 [23:04]

 

 

목 차

. 머리말 

. 사마천이 직접 본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 패수

1. ()나라와 조선의 국경선 패수에 관한 가장 정확한 기록

2. 사마천이 본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 패수에 관한 기록

3. 사마천이 본 조선과 한()나라 국경선인 패수 위치

   1) 수천리 영토를 가진 조선과 한()의 국경선 패수

   2) ()나라 수군의 출발지와 항해한 바다로 본 패수의 위치

   3) 동이 제국과 한()의 교통로 상에 있던 조선의 국경선 패수

   4) 패수는 요동군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는 강

   5) ()()나라 영토의 동쪽 끝은 갈석산

   6) 요동군 요새의 동쪽에 있던 패수

   7) ()나라 고공지와 상하장으로 본 패수 위치

   8) 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선 패수는 상류가 서쪽인 강

4. 고조선과 한군현 위치로 본 국경선이었던 패수 위치

5. 조선의 국경선 패수가 되기 위한 19가지 조건을 갖춘 강

 

.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강 패수

 

. 패수(浿水)에 대한 기존 학설 비판

1. 요동군 패수(沛水)가 낙랑군 패수(浿水)라는 주장의 진위(眞僞)

2. 대동강, 청천강, 압록강, 태자하, 혼하, 한우락, 요하 패수설의 진위(眞僞)

3. 대릉하 패수설의 진위(眞僞)

4. 윤내현의 요수, 패수(沛水), 패수(浿水) 란하설의 진위(眞僞

. 맺음말

 

. 머리말

 

한국사에 있어서 패수(浿水)의 실제 위치를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많지 않다. 때문에 패수의 위치에 대한 많은 주장들이 있어왔다. 패수의 위치를 제각기 대동강, 청천강, 압록강, 태자하, 혼하, 요하, 대릉하, 소릉하, 란하, 란하 서쪽에 있는 강 등으로 주장하여 왔다. 패수가 실재했던 위치를 찾기 위해서는 패수가 실재할 당시를 살던 중국인 학자, 관리들이 남긴 모든 기록들을 철저히 연구 분석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 ‘실제 한사군’과 ‘왜곡된 요동군’이 겹치는 ‘녹색 부분(요하ㆍ혼하ㆍ태자하)’은 진번군 영역 이었다가 낙랑군에 편입된 지역     © 편집부
▲ 위 ‘고조선 영역도’는 고조선 단일 국가의 영역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고조선을 중심으로 고대 한국에 속한 제 부족, 제 국가 영역을 모두 포함한 영역     © 편집부



때문에 필자 이전에는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이었던 패수와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패수에 대한 논의조차 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심지어 사마천이 한나라의 조선 침략 전쟁을 지켜보고 남긴 패수에 대한 기록조차 제대로 연구한 학자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 멸망 후 조선 땅에 설치한 낙랑군과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패수가 실존할 당시를 살던 상흠, 반고, 허신이 본 패수에 대한 기록조차 제대로 연구한 학자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필자 이전에는 패수의 위치를 논하는 대전제인 고조선과 산융동호오환선비의 위치와 요수의 위치에 대한 연구도 제대로 이루어 진적이 없었고, 한사군(낙랑군현도군임둔군진번군)과 대방군요동군 등의 한나라 동북지역 군군의 위치에 대한 연구도 제대로 이루어 진적이 없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자신의 주장에 반하는 증거들은 배척하는 연구 행태가 고조선과 한사군 위치를 한반도에 안에서 찾는 연구자뿐만 아니라 한반도 밖에서 찾는 연구자들을 지배하여 왔다. 이러한 연구 행태를 보이는 역사학자들은 확증편향적(確證偏向的) 연구자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고, 요즈음에 고조선한사군 재한반도설주장자지지자들이 만들어낸 유사역사학, 사이비역사학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확증편향적(確證偏向的) 연구 행태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한국과 중국 고대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패수(浿水)’홀로’ ‘독립적으로 존재한 강이 아니다. 따라서 패수의 실재했던 위치를 찾기 위해서는

패수를 영역으로 했던 고조선의 정확한 위치를 고증해야 하고,

고조선의 서쪽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주장되고 가르쳐져온 산융동호의 실재했던 위치와 산융동호의 후예인 오환선비의 실재했던 위치를 찾아내야 하고,

패수의 서쪽에 있었던 고조선과 연나라의 국경선인 요수의 실재했던 위치를 고증해야 하고,

요수와 패수의 사이에 있었던 요서군과 요동군의 실재했던 위치를 고증하여야 하며,

패수의 북쪽 혹은 동쪽에 있었던 현도군의 실재했던 위치를 고증하여야 하고,

패수의 동쪽에 있었던 낙랑군임둔군진번군 실재했던 위치를 증명하여야 하며,

연나라 북쪽에 있던 북부여의 위치를 증명하고,

단단대령(單單大領) 위치와 그 동쪽에 있던 예옥저의 실재했던 위치를 증명하여야 하며,

고구려의 서쪽 경계선의 위치를 증명하여야 한다.

 

필자에 의해서 앞 ~ 와 같은 연구들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한국 최초의 국가는 신시(神市)로서 한국문명(흑룡강요하문명)의 주인공이었고, 고조선은 발해 북쪽에 있던 국가였으며, 산융동호오환선비의 위치는 산서성 중북부하북성 서북부와 그 이북지역에 있었고, 고조선과 연나라의 국경선이었던 요수(遼水)는 북경천진의 서북쪽에서 서남쪽으로 흘러 발해로 들어가는 영정하였으며, 전국시대 후기 연()나라와 한()나라의 동쪽 국경지역은 갈석산 이었다.

 

패수는 란하갈석산의 동쪽에 있었으며, 요서군은 천진북경 지역에 있었고, 요동군은 당산진황도시 지역에 있었으며, 현도군은 란하 중류인 승덕시와 그 인근지역에 있었고, 낙랑군은 대릉하유역에 있었으며, 임둔군 치소는 임둔태수장 봉니가 출토된 금서시(현 호로도시)에 있었고, 진번군 치소는 대릉하 중류의 북쪽 혹은 대릉하 중하류 동쪽의 요하 유역에 있었으며, 고구려 영역은 란하 하류에 이르렀다는 것 등의 많은 역사적 사실을 증명한 바 있다.

 

이러한 신시, 고조선, 한사군, 대방군, 요동요서군 등의 위치에 대한 고증만으로도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이었던 패수는 압록강이나 청천강 등과 같은 한반도를 흐르는 강이 될 수 없고, 혼하나 태자하 등처럼 요하의 동쪽에 있는 강들이 될 수 없으며, 갈석산과 요하 사이에 있었던 강이었음이 분명해 진다. 그러나 한정된 지면 관계상 본고(本稿)에서 그 내용을 일일이 소개할 수 없음을 유감으로 여긴다.

 

필자는 패수의 위치를 고증함에 있어서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이었던 패수(浿水)가 실존할 당시의 기록인 사기』「조선열전의 패수 관련기록과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패수(浿水)가 실존할 당시 기록인 한서』『후한서』『설문해자』『수경의 기록만을 연구분석 대상으로 하여 왔다. 패수라는 강 이름이 사용되지 않고 있을 때 씌어진 후대의 역사지리서를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내용들이 섞여 있어 어떤 기록은 인용하고 어떤 기록은 배척하는 것이 옳지 않기 때문이다.

 

본고(本稿) ‘장에서는 조선의 패수에 대한 필자의 앞선 연구 결과 중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선 이었던 패수를 간단히 소개하고, ‘장에서는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패수와 낙랑군 소멸 후의 고구려백제사에 등장하는 패수패하패강 등은 간단히 소개하기로 하겠다. 이어서 장에서는 그동안 패수의 위치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해온 기존 학설들을 소개하고 기존 학설들이 왜 역사적 사실에 반하는 학설들인지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 사마천이 직접 본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 패수  

 

1. 한·조 국경선 패수에 관한 가장 정확한 기록

 

사마천(司馬遷, 서기전 145년 경 ~ 서기전 85년경)은 한()나라의 태사령(太史令)을 지낸 사마담(司馬談)의 아들이다. 사마천은 서기전 109년 아버지를 계승하여 태사령이 되었다.태사령이란 국가 대사(大事) 기록, 조정 의례의 기록, 천문관측, 달력의 개편 등을 맡는 직책이었다. 따라서 사마천이 국가에서 일어난 큰 사건인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의 우두머리인 태사령으로서 원봉(元封) 2(서기전 109)’ 가을에 시작하여 원봉 3(서기전 108)’ 여름에 끝난 한()나라의 조선(朝鮮) 침략 전쟁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지켜보았을 것이다.

 

사마천이 편찬한 사기』「조선열전에 역사상 최초로 패수(浿水)’라는 강이 7회 기록되어 있고, 패수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기록들도 여러 번 기록되어 있다. 사기』「조선열전기록들은 사마천이 태사령으로서 무제가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을 지휘하는 것, 전쟁터에서 올라오는 조선의 지정학적 위치, 조선의 지리, 조선의 영토 크기, 조선의 국력, 조선의 인근 국가들, 전황 등에 대한 보고를 옆에서 직접 보고 듣고 확인하고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한()나라와 조선의 이해관계, 전쟁 원인, 패수의 위치, 조선의 위치, 조선의 영토 크기, 조선의 군사력, 조선의 인근 국가들, 한나라 육군과 수군의 병력 수, 육군과 수군의 공격로 등에 대해 남긴 사기』「조선열전의 기록은 매우 정확할 것이다.

 

()나라와 조선의 이해관계, 전쟁 원인, 패수의 위치, 조선의 위치, 조선의 영토 크기, 조선의 군사력, 조선의 인근 국가들, 한나라 육군과 수군의 병력 수, 육군과 수군의 공격로 등에 대한 기록은 사기』「조선열전의 기록이 유일하다. 한서』「서남이양월조선전사기』「조선열전의 기록을 그대로 옮긴 것이고,삼국지』「동이전에 주석으로 실린 위략의 패수(浿水) 등은 전부 사기』「조선열전의 기록을 보고 쓴 것이다.

 

따라서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인 패수 위치, 조선 영토의 위치, 조선의 영토 크기, 한나라의 조선 공격로 등은 사기』「조선열전의 기록을 빼 놓고는 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 이전에는 사기』「조선열전의 기록을 철저히 연구 분석해본 학자가 아무도 없었다. 본고(本稿)에서는 필자의 고조선중조선후조선 한사군을 포함한 한나라 동북지역 군군들의 위치 등에 관한 앞선 많은 연구들 중에서 일부만을 간단히 소개하기로 한다.

 

2. 사마천이 본 한·조 국경선 패수에 관한 기록 

 

사마천이 편찬한 사기』「조선열전에 역사상 최초로 패수(浿水)’라는 강이 7회 기록되어 있는데 그 첫 번째와 두 번째 기록이 

 

한나라가 일어나서 그곳(상하장)이 너무 멀어 지키기 어려웠다. 때문에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浿水)에 이르러 국경으로 삼았다. …… 위만이 무리 1,000여명을 모아서 망명하였다. 상투머리를 하고, 만이복을 입고 동쪽으로 달아나 (요동군) 요새를 나가 패수(浿水)를 건너 진의 옛 공지인 상하장에 살았다.점점 진번, 조선, 만이 등과 싸워서 복속시키고, 옛 연()() 망명자들의 왕이 되어 왕험(王險)에 도읍하였다.

 

…… 효혜제와 고후 때에 이르러 처음으로 천하가 안정되었다. 요동태수가 위만과 위만을 외신(外臣)으로 삼고, 새외의 만이를 보호하고 변경에서 노략질을 못하게 하고, 모든 만이의 군장들이 천자를 만나러 들어오고자 하는 것을 막지 말라.’는 약정을 맺었다. (천자)이 듣고 허락하였다. 이러한 이유로서 위만이 무기를 얻고 재물의 위력으로 침략하여 그 이웃 소읍들을 모두 항복시켰다, 진번 임둔 등이 모두 복속하여 와서 영토가 사방 수천리가 되었다.

 

라는 기록 중의 패수이다. 사기』「조선열전의 세 번째 패수 기록이

 

조선이 아들에게 전해지고 손자 우거(右渠)에게 이르자, ()나라의 망명자들을 꾀여 들여서 인구가 많아졌다. 또 조선에서 (한나라의 조정에) 들어와서 뵙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진번 등의 이웃의 많은 나라들이 서신을 올리고 천자를 뵈려고 하여도 (조선에서) 길을 막고 교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원봉 2년 한()나라 사자 섭하(涉何)가 우거왕을 (동이 제국의 교통을 막는다고) 꾸짖고 (이해관계로) 회유하였다. 그러나 끝까지 무제의 조서를 받들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섭하가 한나라로 돌아가다 국경선인 패수에 임하자, 어자(御刺)를 시켜서 섭하를 전송하던 자인 조선 비왕 장()을 죽이고, 즉시 패수를 건너서 말을 달려 요새로 들어갔다. …… 

 

라는 기록 중의 패수이다. 사기』「조선열전의 네 번째 패수 기록이

 

그해 가을(서기전109) 누선장군 양복이 제()로부터 나아가서 발해에서 배를 띄웠는데 군사가 50,000명이었다. 누선장군 양복으로 하여금 군사 제()에서 배를 띄워 발해로 나아가게 했는데 군사가 50,000명이었다. 좌장군 순체가 (위만조선의) 요동군을 나서서 우거왕을 공격하였다. 그러자 우거왕도 군사를 일으켜서 험준한 요새에서 방어했다. 좌장군의 졸정 ()’가 요동군을 거느리고 앞서서 진군하다가 조선군에게 패하여 흩어져서 달아났다. ()가 도망하여 돌아오자 ()’를 군법대로 목 베어 죽였다.

 

누선장군과 제()지역 군사 7천명이 먼저 왕험성에 이르렀다. 우거왕이 성을 지키고 있다가 허실을 염탐하여 누선군이 적은 것을 알고, 즉시 성을 나와 누선의 군대를 공격하였다. 누선장군의 군대가 패하여 산산이 흩어져서 달아나 버렸다. 장군 양복은 그 군사 대다수를 잃고, 산속에 숨어서 10여일을 보냈다. 흩어진 군사들을 조금씩 다시 수습하였다. 좌장군은 조선의 패수서군(浿水西軍)을 공격하였지만 아직 깨트리지 못했다.

 

라는 기록 중의 패수이다. 사기』「조선열전의 다섯 번째 패수 기록이

 

천자(한나라 무제 유철)가 양장(누선장군 양복과 좌장군 순체)(조선침공 전쟁에서) 유리하지 않은 것을 인정했다. 마침내 위산으로 하여금 조선에 한나라 군사의 위엄을 보였으니 조선으로 가서 우거왕을 회유하라고 시켰다. 우거왕이 사자로 온 위산을 접견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휴전을 위하여 온 것에 대하여) 사례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나도 휴전(항복)하기를 원하오. 그러나 두 장수(양복과 순체)가 속이고 신()을 죽일까봐 두렵소. 지금 (한나라 군주의 위임을 받은 사신임을 입증하는) 신표와 부절을 보니 청컨대 (휴전을 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여) 휴전(항복)을 하겠소. 태자를 파견하여 (한나라 수도인 장안으로) 들어가서 (휴전을 하고 선린우호관계를 갖게 된 것에 대하여) 사례하겠소.’라고 하였다. (조선의) 태자가 한나라에 바칠 말 5,000필과 군사들을 먹일 군량을 가진 1만 여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막 줄지어 패수를 건너려고 하였다(또는, 반대로 패수를 건너오려고 하였다).

 

라는 기록 중의 패수이다. 사기』「조선열전의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패수 기록이

 

사자와 좌장군이 (태자의 무장한 군대가 화친하겠다는 입장을 바꾸어) 변란을 일으킬까봐 의심하였다. 그래서 태자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미 (우리나라의 휴전 제의를 받아들여) 휴전(항복)하기로 했는데 마땅히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무기를 휴대하지 못하게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태자 또한 사자와 좌장군이 (자신을) 속이고 죽일까 의심하고 패수를 건너지 않고, 다시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갔다. 위산이 돌아와 천자에게 (이러한 내용을) 보고하자 천자가 (조선의 태자를 항복하러 오다가 되돌아가게 하였다는 이유로) 위산을 죽였다.

 

좌장군이 (조선의) 패수상군(浿水上軍)을 깨트리고 전진하여 왕험성 아래 이르러 성 서쪽과 북쪽을 포위하였다. 누선장군 역시 왕험성 남쪽으로 가서 포위하였다. 그러나 우거왕이 굳게 왕험성을 지켰다. 때문에 (한나라 군사들은) 수개월이 되도록 왕험성 아래 이르지 못하였다.

 

라는 기록 중의 패수이다. 패수에 대한 기록은 아니지만 패수가 실재했던 위치를 알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록이 사기』「화식열전의 

 

(전국시대) ()나라 또한 발해군(勃海郡)과 갈석산(碣石山) 사이에 한 나라(도읍)를 이루었다. (연나라는) 남쪽으로 조나라 제나라와 통하고, 동쪽과 북쪽 변경에는 호()가 있었다. (호와 마주한 변경 지역은) 상곡으로부터 요동까지이다.(연나라는) 북쪽으로 오환부여와 이웃하였고, 동쪽으로는 예조선진번과의 이익이 얽혀 있었다.…… 

 

라는 기록이다.  

 

 

< 위 논문은 작년에 (사)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가 주최한 국제학술대회의 '패수(浿水)의 위치 찾기 토론회'에서 3인의 집중토론자로 나온 역사모 회장 김종서 박사의 발제문입니다. 

본지의 주된 편집방향과는 다소 다르나 다양한 학설소개 차원에서 게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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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3/01 [23:04]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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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안에 있으면서 mimesis 18/11/25 [19:35]
한반도 안에 있으면서 천자로 오는 길들을 막지 말라라는 얘기는 어이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황당무계한 발상.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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