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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수에 대한 기존 학설(한반도 북부설) 비판 (1부)
사서 기록과 전혀 맞지 않는 식민사학계의 패수 한반도설
 
황순종 고대사 연구가 기사입력  2018/03/16 [15:45]

 

패수는 우리 고대사를 규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지명 가운데 하나인 점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 만큼 고대사를 다룬 주요한 학자들은 모두 패수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견해를 표명해 왔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강들이 옛 패수로 비정되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1) 한반도 북부설  

 

패수나 열수를 한반도 북부의 강으로 보는 것이 지금 학계의 움직일 수 없는 정설로 되어 있으며 다만 이를 압록강·청천강·대동강의 어느 것으로 보느냐 하는 점에서는 견해가 갈린다. 이런 점은 근대 이래 일본 학자들의 견해와도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북부의 강들은 패수라고 보기 어렵다. 그 근거는 무수히 많지만 몇 가지만 제시하겠다.

 

첫째, 패수는 한나라 초기 연나라와 조선과의 경계였는데, 이에 대해 가장 근접한 시기의 기록인 사기』「조선열전에는 한나라가 일어나 그곳이 너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러 경계를 삼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한나라가 이전에 조선과의 경계 지역을 지키기 어려워 조금 후퇴하여 패수를 경계로 삼았는데 그곳이 요동이라 했다. 그러므로 패수는 요동을 흘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위만이 이 연나라의 요동에서 패수를 건너 조선으로 망명한 것에 대해 같은 조선열전, “동쪽으로 달아나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넜다(東走出塞, 渡浿水).”고 했다. 이것은 연나라의 동쪽에 패수 건너 조선이 있었다는 뜻이다. 연나라의 동쪽에 조선이 있다는 기록은 한나라 이전 전국시대의 소진(蘇秦)의 말에서도 알 수 있으니, 사기』「소진열전연의 동쪽에 조선의 요동이 있다(燕東有朝鮮遼東).”고 했다.

 

이렇게 동쪽의 조선으로 온 위만이 기존 세력을 몰아내고 도읍한 곳을 조선열전에는왕험(王險)’이라고 했다. 이 왕험에 대해 사기색은에는 신찬(臣瓚)의 말을 인용하여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고 했다.즉 위만이 동쪽으로 와서 도읍한 곳 역시 패수의 동쪽이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주는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은 패수가 한반도의 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명백히 증거한다. 압록강에서 대동강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강들은 동서로 흐르며 지금의 요동에서 패수를 건너려면 위 기록들처럼 동쪽이 아니라 남쪽으로 와야 조선이 되며, 위만의 도읍 왕험이라는 지금의 평양 또한 당연히 패수의 동쪽에 있을 수 없고 남쪽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조선열전에 기록한 패수는 그 흐름이 한반도의 강들과는 달리 남북으로 흐르기 때문에 그 동쪽에 조선이나 왕험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험에 대해서는 위에 언급한사기색은에 서광(徐廣)창려군 험독현이라 하고 응소(應昭)지리지의 요동군 험독현이라 주석했는데,사기집해에도 서광의 말을 인용했다. 응소나 서광이 말한 요동군이나 창려군이 한반도 북부에 있지 않았으므로, 왕험이 지금 북한의 평양이었다는 학계의 정설은 조선열전의 기록과 맞지 않는 허구에 불과하다.

 

▲ 이병도가 그린 한사군도에는 패수가 청찬강으로 되어 있다.     © 편집부

 

둘째, 패수는 낙랑군을 흐르는 강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위 조선열전에 요동의 강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한서』「지리지를 보면 패수가 낙랑군만이 아니라 요동군도 지나는 사실을 명확히 기록했다. 낙랑군조를 보면 패수현, 강물이 서쪽으로 증지현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했으며, ‘요동군조에는 번한현, 패수가 새외(塞外)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되어 있다. 이 두 기록을 종합해 보면 패수의 상류가 요동군 번한현이고 최하류가 낙랑군 패수현·증지현으로 추정할 수 있다.

 

패수가 이와 같이 요동·낙랑의 두 군을 지난다면 한반도의 강들은 패수가 될 수 없다. 다만 압록강만은 지금 요동과 평안북도의 경계를 따라 흐르니 두 군을 지난다고 주장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나, 위에 지적한 대로 동서로 흐르는 압록강은 남북으로 흘러야 하는 조선열전의 패수라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패수가 압록강이라면 그 남쪽의 청천강이나 대동강이 같은 낙랑군에 있던 열수가 되는데, 산해경에 이 열수가 요동에 있었다고 하니 청천강이나 대동강 지역까지 요동이었다는 근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셋째, 열수와 관련된 지명에 열양(列陽)’열구(列口)’가 있는데 이 위치를 확인하면 열수가 어디 있었는지 드러난다. 먼저 열양에 대해서는 산해경』「해내북경조선은 열양의 동쪽, 바다의 북쪽, 산의 남쪽에 있다. 열양은 연나라에 속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연나라의 열양(열수의 북쪽) 동쪽에 조선이 있다고 했다. 열수가 대동강이라면 그 북쪽인 열양이 평양이라는 말이 되며 그곳이 연나라라는 것이 된다. 학계에서는 평양이 조선이라고 하는데, 산해경에 따르면 그 동쪽이 조선이어야 하므로 동해 쪽 옥저가 있었다는 곳이 조선이라는 모순된 결과가 된다. 또 조선이 바다의 북쪽이라고 했으므로 발해나 황해의 북쪽인 하북성이나 요녕성을 말하므로 열양의 동쪽이 되지만, 평안도 지역은 바다의 북쪽이 될 수도 없으며 열양의 동쪽도 될 수 없다.

 

다음에 열구에 대해서는 조선열전에 한나라에서 위만조선을 침략할 때 육군과 수군을 모두 보냈는데, 수군은 ()나라를 따라 발해에 떠서(從齊浮渤海)’ 열구에 도착했다. 이 열구에 대해 사기색은에 소림(小林)의 말을 인용하여 현 이름으로 바다를 건너 처음 이른 곳이다(縣名而渡海初至處).”라고 했다. 즉 제나라 연안을 따라 바다(발해)를 항해하여 서쪽이나 북쪽의 연안에 있는 열구현에 도착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위만조선이 망한 뒤 낙랑군에 속한 이 열구현은 한반도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병도는 조선열전발해황해또는 그냥 바다로 설명하여, 한나라 수군이 황해바다 건너 열수인 지금의 대동강 입구로 왔다고 주장한 이후 학계에서 별다른 반론도 없이 정설이 되어 있다. 그러나 17세기 중국의 저명한 고증학자 고염무는 일지록해사조에서, 從齊浮渤海에 대해 산동에서 바다를 통해 요동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으며, 비슷한 시기의 지리학자 호위(胡渭)발해가 지금의 발해라고 하며 한나라 때의 발해군을 말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문성재는 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2016)에서 이러한 고염무와 호위의 설을 인용한 뒤, 한나라 때 항해 기술수준이 연안을 따라가는 연안항해에 머물렀음을 강조하며 이병도의 황해를 건넜다는 터무니 없는 설을 이렇게 일축했다. 한대(漢代)에 아무리 항해술에 엄청난 발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황해같은 망망대해를 심지어 여러가지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누선(樓船)을 몰고 달랑 돛 몇 개만 믿고, 그것도 7,000명이나 되는 대병력을 태우고 횡단해 건넌다는 것은 선장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야말로 자살행위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본 패수·열수는 사기』「조선열전·산해경·한서』「지리지에 모두 요동에 있다고 했으나, 이병도는 패수고에서 양 하천을 마음대로 요동 방면의 어떤 하천으로 비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일설로 둘 필요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중국의 1차 사료들에 모두 요동이라고 했는데도, 요동설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식이니 이것이야말로 자기 마음대로 비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아니 자기 마음대로가 아니라 든든한 후원자인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니, 일제강점기에 이런 글을 쓴 것이다.  

 

▲ 현재 강단사학계의 이론에는 낙랑이 백제의 북쪽에 있다.     © 편집부

 

끝으로 하나만 더 말하자면, 패수는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고구려에서 내려올 때 건넜던 강이다. 삼국사기』「백제본기시조온조왕조의 주석에는 그가 패수·대수의 두 강을 건넜다고 기록했다. 대수(帶水)한서』「지리지에 낙랑군 함자현을 지나는 강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같은 낙랑군의 패수보다 남쪽에 있었다고 하겠다. 위에서 낙랑군을 흐른 패수·열수가 한반도의 강이 아니었으므로 대수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만약에 학계의 정설대로 온조왕이 고구려의 졸본이라는 압록강 북쪽에서 내려오자면 평안도에 있었다는 낙랑군을 거쳐와야 한다. 침략자인 낙랑군에서 고구려를 창건한 주몽의 부인과 아들들 일행의 대집단을 곱게 통과시켜 주었을 리가 없다. 온조왕이 건넌 패수·대수는 북한 지역에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증거하는 내용이 온조왕 13년 조에 보이는데,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나라의 동쪽에 낙랑이 있고 ··· ’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이것은 온조왕이 패수·대수의 두 강을 건너 남하하여 세운 백제의 동쪽에 낙랑군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한반도에서의 상황이 될 수 없다. 만약 이병도 이후 학계의 정설에 따른다면 낙랑군은 지금의 평안도·황해도였고 백제는 그 남쪽의 한강 유역에 있었으므로, 백제의 동쪽이 아니라 북쪽에 낙랑군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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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3/16 [15:45]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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