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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 8년에 정벌한 숙신은 북맥으로 산서성 중부 (3부)
맥족이 사는 예(濊)와 양(梁)의 위치는 산서 동남부
 
성헌식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04/08 [21:04]

 

광개토호태왕은 6(396) 병신년 3월에 친히 백제를 공격해 아신왕으로부터 영위노객(永爲老客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을 맹세하는 항복을 받고 왕의 동생과 대신 10명을 인질로 잡고 돌아왔다. 치욕을 당한 아신왕은 절치부심 복수의 칼을 갈기 시작했다. 이듬해 5월 왜를 끌어들이기 위해 태자 전지를 볼모로 보내고, 7월에는 한수 남쪽에서 대대적으로 군대를 사열했다. 다음해 2, 아신왕은 진무를 병관좌평으로 사두를 좌장으로 삼았고, 쌍현성을 쌓았다.

 

그러나 호태왕은 백제 아신왕의 이러한 복수 준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다른 곳을 정벌하는데, 그 내용은 비문 8(398)조에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문구 중 편사(偏師)란 중앙의 주력부대를 멀리 외곽에서 협조하는 별동대와 같은 사단급 작전부대를 말하는 것으로, 허신이 쓴 <설문>()2,500명으로 한다.”라고 설명되어 있어 그 규모를 알 수 있다.

 

(원문) 八年戊戌敎遣偏師觀帛愼土谷因便抄得莫羅城加羅谷男女三百餘人自此以來朝貢論事

(번역) 8년 무술년에 편사(별동대)를 파견해 백신(숙신)의 토곡(땅과 골짜기)을 살피다가 기습하라 하교하여 막사라성 가태라곡 남녀 3백여 명을 포획해오니 스스로 조공을 바치러 와서는 그 일에 대해 논의했다.

 

위 기록의 백신(帛愼)을 숙신(肅愼)으로, 土谷은 음이 같은 토곡혼(吐谷渾)으로 보는 학자들이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숙신이 중국사서에 식신(息愼직신(稷愼)으로도 기록되어 있는데, 여하튼 백신과 식신의 글자가 비슷하긴 하다. 숙신은 후한시대부터 오호십육국 때까지는 읍루(挹婁)로 렸으며, 남북조 때는 물길(勿吉), ·당 때는 말갈(靺鞨), 이후 금·청나라를 세운 여진(女眞)족으로 이어지는 종족이다. 즉 숙신은 조선과 고구리와 대진국(발해)을 구성하는 하나의 큰 종족이었던 것이다.

 

▲ 숙신-읍루-물길-말갈-여진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우리 민족사를 구성하는 큰 종족                           © 편집부

 

삼국사기에는 토곡혼에 대한 기록이 없고, 중국자료에 의하면 토곡혼은 전연을 세운 모용외(慕容廆)의 이복형인 모용토곡혼(토곡혼)이 청해(菁海)지방으로 가서 285년에 세운 나라로 점차 성장하여 티베트 고원에서도 상당한 세력을 갖고 있다가, 663년에 토번(吐藩)에게 멸망한 나라이다.

 

고구려사초.에는 토연(토곡혼의 아들)은 포부가 크고 용맹했으나 남을 시기하는 습관이 있어 강()족의 추장이 칼질해 죽였다. 토연이 장수 흘골이를 불러 자기의 아들 섭연을 보좌하면서 백란에서 지키라 하교하니 흘골이 칼을 뽑아 토연을 죽인 것이다. 섭연은 효성이 지극하고 학덕이 높았기에 하남(河南)왕이었던 조부의 이름을 따는 것을 예의라 여겨 나라이름을 토곡혼이라 했다.”라는 기록이 있고, 가끔 언급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고구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서 청해는 옛날 서해, 선수해, 비화강해로 칭했고, 516국 시대부터 청해라고 불렸다. 중국의 서부에 있으며 동북 경계는 감숙성, 동남 경계는 사천성, 서남 경계는 티베트, 서북 경계는 위구르로 길이가 6백리 폭이 2천리로 우공의 4융의 땅이었다. 3(··)를 지나 한나라 때까지는 서강, 동진 이후에는 토곡혼이라 했으며, 당나라 초기에 토번으로 편입되었고, 명나라 무종 때 몽골의 수족이 점거하기 시작했다.”고 설명되어 있다. 즉 청해성과 티베트 땅은 명나라 때까지도 한족의 땅이 아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 청해성과 티베트는 다 같은 단군의 후손으로 고구리 때 모용선비족이 다스리던 땅                                   © 편집부

 

 송동건 전 이대 행정학과 교수는 1989년 발간된 계간지 한배달 3호에 게재된 광개토왕비문 무술조 결자 발견이라는 글에서 신라와 백제도 여러 곳에 있는데 서역의 신라와 고구려를 토곡에서 찾을 수 있다. 토곡은 돌궐로서 강(()족과 인근하고 있으며, 가테라성은 음운적으로 구다라(=백제)로 볼 수 있다.”라고 기고했다.

 

그런데 위 비문의 내용이 고구려사초.에는 영락 8(398) 무술, 군사를 북맥(北貊)으로 보내 막사(莫斯)국과 가태(加太)국을 노략질하게 했더니, 남녀 3백인이 소와 양으로 세공을 바치기로 약속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호태왕 비문에 기록된 帛愼·土谷이 바로 북맥 즉 북쪽에 있는 맥족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막사와 가태국의 위치는 추적할 수 없고, 맥은 과연 어디일까?

 

백신·토곡=북맥은 과연 어디인가?

 

우리 민족의 근간이 되는 주요종족 중에 예맥(濊貊)족이 있었다. 그런데 예맥은 예족과 맥족을 합쳐서 통칭했다는 주장도 있고, 동일계통 내에서 각각 구분된 종족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사기><삼국지><후한서>에서도 예와 맥을 별개의 다른 종족으로 구별해 기록하면서도 때로는 특별한 기준도 없이 혼동되게 기록하고 있다.

 

여하튼 예맥을 하나로 보는 견해는 예맥이 조선을 구성하는 하나의 종족으로서 그 중심세력이었다는 것이고, 나누어 보는 견해는 요동·요서에 살고 있던 예족이 그 서쪽에 분포하고 있던 맥족과 조선 말기에 서로 합쳐졌다는 것이다. 즉 예와 맥은 사회적·정치적으로 서로 구분이 되나 종족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맥족과 예족은 원래 산서성·하북성 일대에 각각 거주했다가 점차 동으로 이동해왔는데, 먼저 정착해 있던 예족이 나중에 이동해온 맥족에게 밀려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조선에게 쫓겨나 요동군에 예속된 것이 예군 남려(濊君南閭)의 집단이고, 이 예의 일부가 맥족에게 흡수되어 새로운 종족인 예맥족으로 성립되어 고구려족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중국백과사전>에서도 맥인은 중국의 동북과 조선반도 서북부의 오래된 옛 민족으로 장맥(藏貊)이라고 하며, 고문헌에서는 백민(白民) 호인(毫人) 혹은 발인(發人)이라고도 한다. 후에 예인과 합쳐져 예맥족이 되었는데, 유목민족이 아니라 농경생활을 하며 성책을 만드는 특이한 점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면밀히 기록을 살펴보면, 맥은 종족명을 나타내고 예는 지명으로 쓰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맥은 구맥(九貊=九夷), 호맥(胡麥), 예맥(濊貊)과 양맥(梁貊) 등으로 쓰인 것으로 보아 더욱 그렇다. 게다가 고대 시대의 물길에 대해 설명한 <수경주>에는 맥과 관련된 지명이 나오지 않으며, 고구리(맥족)의 활인 맥궁(貊弓)의 설명에서 보듯이 맥은 종족명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예는 동예(東濊)의 무천과 <한서무제기>에 기록된 예군남려(濊君南閭)에서 보듯이 지명을 가르키며, <수경주>에서도 예의 위치에 대회는 설명하는 문구가 있으며, <후한서 동이열전>에도 예의 북쪽에 고구려와 옥저가 있고, 남쪽으로는 진한과 접한다. 동쪽 끝에는 대해가 있고 서쪽으로는 낙랑까지이다. 예와 옥저와 구려는 본시 조선의 땅이다. (濊北与高句骊沃沮南与辰韩接东穷大海西至乐浪濊及沃沮句骊本皆朝鲜之地也)”라는 기록이 있어 예는 지명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의 위치에 대해서는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15809참조)

 

▲ 예 땅은 남옥저와 접하는 곳으로 산서성 동남부 청장수 일대     © 편집부

 

즉 예맥은 예(산서성 동남부) 땅에 사는 맥족으로 해석해야 가장 타당할 것이며, 광개토호태왕 비문에 기록된 백신토곡(帛愼土谷)숙신과 청해성에 있던 토곡혼이 아니라 식신(息愼=숙신)의 땅과 계곡으로 해석해야 옳을 것이다.

 

<고구리사초략>을불(훗날 미천대제)3살 때 숙신이 쳐들어와 고구리의 변방을 노략질하자 서천대제는 김옥모 태후의 소생인 달가로 하여금 이를 정벌하게 한다. 달가는 기병을 이용해 숙신을 단번에 격파하고는 이를 복속시키는 혁혁한 전공을 세워 나라를 편안하게 했다는 의미의 안국군으로 봉해지고 내외병마사를 맡았고 겸하여 숙신(肅愼양맥(梁貊)을 다스리게 된다. 양맥과 숙신은 이름은 달라도 같은 말갈족이고, 눈하에 살고 있는 자들이 양맥이고 서백리에 살고 있는 자들이 숙신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달가가 숙신과 양맥을 동시에 다스린 것으로 보아 숙신은 양맥에서 그다지 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양맥은 양() 땅에 사는 맥족을 말한다. 또한 관구검에 쫓긴 동천태왕이 남옥저를 지나 천여 리를 가서 숙신씨의 남쪽 경계에 이르렀다는 기록으로 보아, 산서성 동남부 예 땅 가까이 있는 옥저에서 북쪽으로 약 천리 떨어진 곳임을 알 수 있다. 즉 산서성 중부에 있는 태원시와 하북성 남부에 있는 석가장시 사이 일대로 보면 옳을 것이다.

(양수 위치에 대해서는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22152참조)

  

▲ 관구검의 활동무대인 梁口, 남옥저(예), 환도성, 비류슈와 북맥의 추정위치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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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4/08 [21:04]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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