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구리보전회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연ㆍ한나라 영토 동쪽 끝에 있는 갈석산 (3부)
 
김종서 역사모 회장 기사입력  2018/04/23 [17:36]

 4) 패수는 요동군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는 강

 

  앞 ‘2’절에서 보았듯이 사마천이 “한(漢)나라가 요동(군)의 ‘고새(故塞,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浿水)에 이르러 국경으로 삼았고, 위만이 무리 1,000여명을 모아서 동쪽으로 달아나 (요동군) 요새를 나가 패수(浿水)를 건너 진(秦)나라의 옛 공지인 상하장에 살았다.”고 하였다. 동쪽으로 달아나려면, 탈출 지역은 서쪽에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인 패수와 위만이 동쪽으로 달아나 요새를 나가서 건넌 패수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는 강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조선이 평안도ㆍ평양을 영역으로 한 나라였고, 낙랑군이 평안도ㆍ평양을 영역으로 하였다는 현재까지의 주류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요하ㆍ혼하ㆍ태자하ㆍ한우락ㆍ압록강ㆍ청천강ㆍ대동강 등은 패수가 될 수 없다. 중국에서 평양ㆍ평안도로 올 때 요하ㆍ혼하ㆍ태자하ㆍ한우락ㆍ압록강ㆍ청천강ㆍ대동강 등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건너는 강이 되어, 사마천이 동으로 달아나 요새를 나가서 건넌 패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 발해 북안으로 흘러드는 하천도                                                                            © 편집부

 

만약 요하혼하태자하한우락(蓒芋濼)압록강청천강 중의 어느 강이 사마천이 보고 들은 패수가 되려면, 조선과 낙랑군은 요하혼하태자하한우락압록강청천강의 남쪽 지역인 평양평안도 지역이 아니라 요하혼하태자하한우락 중하류의 동쪽 지역인 요녕성 동쪽 지역길림성 지역에 있었거나, 압록청천강 중하류의 동쪽 지역인 평안도 동부와 함경도 지역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요하혼하태자하한우락압록강청천강은 평양평양이 조선과 낙랑군 영역이었다는 주장에 배치되는 강이므로 패수가 될 수 없다.

 

고조선한사군 재한반도설주장자들이, 사기』「조선열전동주출새(東走出塞) 도패수(渡浿水)’동쪽으로 달아나 요새를 나가서 패수(浿水)를 건넜다.’고 하였으니 위만이 요동군 요새에 이를 때까지가 동쪽으로 달아난 것이고, 요새를 나가서는 어느 방향으로 패수를 건넌 것인지 알 수 없다. 남쪽으로 건넜을 수도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삼국지』「오환선비동이전에 수록된 위략에는 주출새(走出塞)’를 생략하고, ‘동쪽으로 패수를 건넜다.{동도패수(東渡浿水)}’라 고만 기록되어 있다.위략은 어환(魚豢)이 사사로이 쓴 위(, 서기 220 ~ 265)나라의 역사서이다. 어환은 위()나라의 낭중(郎中)을 지낸 사람이고, 위나라 때는 낙랑군이 실존할 때였다. 따라서 어환은 낙랑군의 위치, 낙랑군에 있던 조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조선과 낙랑군이 요동군의 남쪽에 있었다면 어환이 사기』「조선열전동주출새(東走出塞) 도패수(渡浿水)’()’자가 ()’자의 오자라고 보고, ‘남도패수(南渡浿水)’라고 하였을 것이다.

 

낙랑군의 위치, 옛 조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던 어환이 사기』「조선열전동주출새(東走出塞) 도패수(渡浿水)’에서 주출새(走出塞)’를 생략하고, ‘동도패수(東渡浿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어환은 조선이 요동군의 남쪽에 있던 나라가 아니라 요동군의 동쪽에 있던 나라이고, 낙랑군이 요동군의 남쪽에 있던 군이 아니라 요동군의 동쪽에 있던 군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황하(黃河)의 하류로부터 천진(天津) 사이에 있는 강들은 모두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거나 동북쪽으로 흐르는 강들이다. 때문에 이 강들은 모두 남쪽에서 북쪽으로 건너는 강이다. 따라서 황하의 하류로부터 천진 사이에 있는 강들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는 강인 패수가 될 수 없다.

 

필자는 2004년에 발표한 기자위만조선 연구에서 한()나라 좌장군 순체의 육군을 방어하던 패수상군과 패수서군의 기록을 근거로, 패수가 황하에서 영정하 사이에 있는 강들 중 상류가 서쪽에 있는 강들 중의 하나가 패수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필자가 패수의 위치를 잘못 본 것이다.

 

황하(黃河)의 하류로부터 한반도의 평양(平壤) 사이에 있는 강들 중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는 강은 영정하(永定河), 조백신하(潮白新河), 계하(薊河), 두하(陡河), 사하(沙河), 란하(灤河), 대포하(大蒲河) 양하(洋河), 석하(石河), 구하(狗河), 육고하(六股河), 여아하(女兒河), 소릉하(小凌河), 대릉하(大凌河), 요양하(繞陽河) 등 많은 크고 작은 강들이 있다. 그러므로 위 사기』「조선열전위략의 기록만으로는 이러한 많은 강들 중에 어느 강이 패수(浿水)인지 알 수 없다.  

 

5) ()()나라 영토의 동쪽 끝은 갈석산

 

‘2’절에서 보았듯이 사마천이사기』「화식열전에서 ()나라 또한 발해군(勃海郡)과 갈석산(碣石山) 사이에 한 나라(도읍)를 이루었다.’고 한 ()’자를 현재까지 조선한사군의 위치를 논하는 학자들은 주류학자, 비주류학자, 재야학자를 막론하고 발해(勃海, 渤海)’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고, 논의를 전개하여 왔다. 그러나 발갈지간()’자는 발해군(勃海郡)()’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발갈지간()’자는 하북성 진황도시에 있던 갈석산(碣石山)을 가리키는 것이다.

 

필자는 또한 발갈지간(勃碣之閒)’()’자를 태행산맥과 항산산맥이 만나는 북경 북서쪽에 있던 산으로 오인한 연구 내용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사기』「화식열전의 갈석을 사기』「하본기태항상산지우갈석(太行常山至于碣石)’의 갈석으로 오인한 잘못된 판단이다. 독자에게 유감을 표한다. 사기』「화식열전갈석사기』「하본기협우갈석(右碣石)’갈석진황도시의 갈석산(碣石山, 해발 695m), 조산(祖山, 해발 1,428m), 장수산(長壽山, 해발 약 907m)으로 연결된 산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2’절에서 보았듯이 사마천이사기』「화식열전에서 연나라 동쪽과 북쪽에 호()가 있다.’고 하였고, 이어서 연나라는 북쪽으로 오환부여와 이웃하였고, 동쪽으로는 예조선진번과의 이익이 얽혀 있었다.’고 하였으니 북쪽의 ()’는 오환과 부여이고, 동쪽의 ()’는 예조선진번 등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연나라는 발해군(勃海郡)과 갈석산(碣石山) 사이를 영역으로 하였으므로 갈석산이 연나라의 동쪽 국경지역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연()나라는 진()나라에 멸망당하였고, ()나라는 그 진나라 영역을 전부 차지하였다. 따라서 한나라 동쪽 국경 지역은 연나라의 국경 지역이었을 것이므로 한나라 요동군의 동쪽 요새는 갈석산 이었을 것이고, 패수는 갈석산의 동쪽에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란하 서쪽의 평야지대를 흐르는 강들로 현재의 갈석산 서쪽에 있는 강들인 영정하(永定河), 조백신하(潮白新河), 계하(薊河), 두하(陡河), 사하(沙河), 란하(灤河) 등은 패수 후보에서 제외하고, 대포하(大蒲河) 양하(洋河), 석하(石河), 구하(狗河), 육고하(六股河), 여아하(女兒河), 소릉하(小凌河), 대릉하(大凌河), 요양하(繞陽河) 등 중에서 패수를 찾아야 할 것이다.  

 

6) 요동군 요새의 동쪽에 있던 패수

 

‘2’절에서 보았듯이 사마천이 ()나라가 요동()고새(故塞,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浿水)에 이르러 국경으로 삼았고, 위만이 무리 1,000여명을 모아서 동쪽으로 달아나 (요동군) 요새를 나가 패수(浿水)를 건너 진()나라의 옛 공지인 상하장에 살았다.”고 하였으니 패수는 요동군의 옛 요새 동쪽에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요동의 고새는 패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또한 요동군 고새는 진시황이 쌓은 진장성(秦長城)이 아니다. 만약 요동군 고새가 진장성 이었다면, 사마천은 진장성을 수리하고’, ‘진시황이 쌓은 장성을 수리하고’, ‘몽념이 쌓은 장성을 수리하고등처럼 기록했을 것이다.

 

또 앞 ‘2’절에서 보았듯이 사마천이 섭하가 자신을 전송하던 조선의 비왕 장()을 죽이고 즉시 패수를 건너서 말을 달려 요새로 들어갔다.”라고 하였으니 패수는 요동군 요새와 바로 접한 것이 아니라 요동군 요새와 패수 사이에는 말을 달려야 할 만큼 거리가 떨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한()나라 육군의 선봉부대를 완패시킨 조선군의 승전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사기』「조선열전의 네 번째 패수 기록인, “좌장군 순체가 (위만조선의) 우거왕을 정벌하기 위하여 요동으로 출병하였다. 그러자 우거왕도 군사를 일으켜서 험준한 요새에서 방어했다. 좌장군의 졸정 다()가 요동군을 거느리고 앞서서 진군하다가 조선군에게 패하여 흩어져서 달아났다. ()가 도망하여 돌아오자 ()’를 군법대로 목 베어 죽였다. …… 좌장군은 조선의 패수서군(浿水西軍)을 공격하였지만 아직 깨트리지 못했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좌장군이 거느린 한나라 육군의 선봉장인 졸정(卒正) ‘()’가 요동군을 거느리고 앞장서서 진격하다가 조선군에 패하여 달아났다고 하였고, 그 이후에 좌장군이 패수서군을 공격하였다고 하였으니 요동군 요새와 패수 사이에는 조선의 영토가 적게는 수십 리에서 많게는 100여리 이상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1만 명 내외의 요동군이 요동군 요새를 나서서 진격할 공간, 조선군과 요동군이 전투를 할 공간으로 최소한 수십 리는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패수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는 강이고, 요동군 요새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는 패수의 서쪽 수십 리 지점 혹은 100여리 내외의 거리에 있었을 것이다. ‘2’절에서 본 것처럼 사마천이 본 요동군의 요새는, 한나라가 건국된 후 다시 수리한 요동군의 옛 요새, 위만이 동쪽으로 달아나며 나간 요동군 요새, 섭하가 조선의 비왕 장을 죽이고 말을 달려 들어간 요새 등 3개의 요새가 있다. 그러나 이 3개의 요새는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서로 다른 요새가 아니라 동일한 요새일 것이다.

 

()’는 적을 방어하기에 유리하고 적은 공격하기에 불리한 산과 강 등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만드는 방어 시설이다. 중국의 평야 지대에는 흙으로 성()을 쌓는다. 그런데 사마천이 사기』「조선열전에서 ()’이라고 하지 않고, ‘()’라고 한 것으로 보아 요동군의 요새는 산과 강 등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건설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북성 창려의 갈석산 서쪽지역은 해발 10m 내외의 광활한 평야지대이다. 따라서 요동군의 요새가 있을 만한 곳이 없다. 물론 강폭이 넓은 란하의 강가를 따라서 요새를 쌓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나라 때의 길이로 2,100리의 란하의 하류 부분만도 약 400여리나 되어 요새를 쌓아 지키기에는 너무 길다.

 

또한 사기』「조선열전, “이에 무제가 마침내 해상(海上)을 따라 가서 북쪽으로 갈석산에 이르렀다. 요서군으로부터 순행하여 북쪽의 변경지역을 지나 구원에 이르렀고, 5월에 감천궁으로 돌아왔다. 유사가 말하기를 보정(寶鼎)이 출현한 해의 연호를 원정(元鼎)으로 하시고, 금년으로서 원봉(元封)원년으로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무제가 갈석산을 방문한 후 요서군으로부터 북쪽의 변경지역을 지나 구원에 이르렀다고 하였으니, 무제가 지나간 곳은 요서군상곡군대군안문군 등의 한()나라의 북쪽 변경 지역이다. 따라서 무제가 방문했던 갈석산은 한()나라 영토의 맨 동북쪽에 있는 요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무제가 갈석산을 방문한 해는 원봉 원년인 서기전 110년이고, 조선을 침공한 해는 원봉 2년인 서기전 109년이다. 따라서 갈석산은 한나라의 맨 동쪽에 있던 군인 요동군에 속한 요새였음을 알 수 있다.

 

한대(漢代)의 갈석산은 현재 창려에 있는 갈석산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황도시의 갈석산(碣石山, 해발 695m), 조산(祖山, 해발 1,428m), 장수산(長壽山, 해발 약 907m)으로 연결된 산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갈석산 중에서도 가장 동쪽에 있는 바위산인 현 장수산과 바다를 연결하여 요새를 쌓아 조선을 방어했을 수도 있고, 갈석산과 장수산 사이에 있는 바위산인 조산(祖山)과 바다를 연결하여 요새를 쌓았을 수도 있고, 현 갈석산과 바다를 연결한 요새를 쌓았을 수도 있다.

 

어떻든 갈석산을 갈석, 조산, 장수산 중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갈석산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좁게 보더라도 영정하(永定河), 조백신하(潮白新河), 계하(薊河), 두하(陡河), 사하(沙河), 란하(灤河), 대포하(大蒲河) 등은 갈석산 서쪽에 있는 강들이 되어 패수 후보에서 제외하여야 한다. 이제 현 갈석산의 동쪽에 있는 양하(洋河), 석하(石河), 구하(狗河), 육고하(六股河), 여아하(女兒河), 소릉하(小凌河), 대릉하(大凌河), 요양하(繞陽河) 등 중에서 패수를 찾아야 할 것이다.

 

 

< 위 논문은 작년에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가 주최한 국제학술대회의 '패수(浿水)의 위치 찾기 토론회'에서 3인의 집중토론자로 나온 역사모 회장 김종서 박사의 발제문입니다.

본지의 주된 편집방향과는 다소 다르나 다양한 학설소개 차원에서 게재합니다. >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8/04/23 [17:36]  최종편집: ⓒ greatcorea.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최근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