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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이세민에게 붙잡혔다가 풀려났을까? (9부)
일인독주체제를 구축한 연개소문은 당나라에겐 두려움의 대상
 
성헌식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06/25 [22:48]

 시진핑 국가주석은 취임 이후 부패척결과 정년퇴직 등으로 공석이 된 67개 고위직에 29명을 자신의 측근들로 채우면서 일인독주체제를 확고하게 다지고 있다. 게다가 중국 혁명원로의 2~3세대 자녀들 일명 태자당(太子黨)이 정치권력화를 시도하자 격노하며 이를 분쇄했다. 시 주석도 속한다는 태자당은 개혁·개방 시기 경제 분야에 대거 진출해 권력형 비리로 치부했다는 평을 들어왔다.

 

자신을 덩샤오핑(鄧小平)의 수준을 넘어 마오쩌둥(毛澤東)과 같은 반열의 국부(國父)급으로 격상시키려는 시 주석은 지난 8월 초 중국 전·현직지도자들이 모이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1982년에 폐지된 중국공산당 중앙위주석직의 부활을 제안했다. 당 주석은 1949년 중국을 건국한 마오쩌둥이 세상을 떠난 1976년까지 27년간 한시도 놓지 않았던 자리로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막강권력과 개인숭배의 원천이었다.

 

▲     © 편집부

 

그동안 시 주석의 이러한 일방적인 독주를 견제해 왔던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은 베이다이허 회의에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덩샤오핑에 의해 후계자로 발탁된 장쩌민은 총서기 취임 이래 덩샤오핑을 대표로 하는 원로들의 영향으로 15차 당 대회에서 원로들이 지명한 후진타오를 후임으로 임명할 수밖에 없었다.

 

후진타오는 총서기 취임 2년이 지난 뒤에야 장쩌민으로부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물려받았고, 정치국의 인사문제도 장쩌민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후 전 주석은 18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에게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등 모든 권력을 한꺼번에 양도했다.

 

그런 상태에서 현재 장쩌민의 세력들은 이미 부패척결로 대거 몰락위기에 처해 있고, 후진타오의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세력 역시 잇따른 낙마로 후 전 주석 홀로 독야청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 주석이 후진타오 전 주석이 천거한 쑨정차이(孙政才) 전 충칭시 당서기를 해임한 것만 봐도 권력의 공유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이다이허 회의가 시 주석을 견제했다기보다는 그의 일인독주체제를 원로들에게 확인시킨 무대에 불과했다. 중국이 점점 더 분열의 형국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에겐 더없이 좋은 일이다.

 

청년시절 연개소문의 모습
 
고구리에서 일인독주체제를 구축한 연개소문에 대한 역사기록은 현재 전하는 것이 별로 없고, 중국고대소설인 ‘갓쉰동전’이나 당나라 때 장열이 지었다는 ‘규염객(虯髥客)’ 속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연국혜라는 재상이 나이 쉰 살이 되도록 슬하에 자녀가 없었는데, 하늘에 아들의 점지를 기도하는 제사를 올려 한 옥동자를 얻었기에 이름을 갓쉰동이라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짧은 수명을 타고났기에 그 액을 면하기 위해서는 15년 동안 부모와 서로 상면해서는 안 된다고 하기에 등판에 먹실로 ‘갓쉰동’이라는 이름 석 자가 새겨진 상태로 7살 때 내버려졌다. 소년에서 청년이 된 갓쉰동은 달딸국에 들어가 말도 배우고 풍속도 익힌 후 그 내정을 상세히 알기 위해 이름을 돌쇠라 고치고는 달딸국 왕의 종이 되었다.

 

돌쇠는 영리하게 행동해 달딸왕의 신임을 듬뿍 받았는데, 둘째 왕자가 영명해 사람을 잘 알아보았다. 그는 갓쉰동이 달딸의 종자도 아닐 뿐만 아니라 비상한 영걸임이 틀림없으므로 지금 죽여서 그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하면서 철책 안에 가둬 굶어 죽이려고 했다. 갓쉰동이는 자기의 몸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별다른 뾰족한 계책이 없어 무척 답답해했다.

 

마침 달딸 왕 부자가 사냥을 나가고 공주가 대신 돌쇠를 지키고 있을 때였다. 돌쇠가 새장을 부수고 그 안에 있던 매를 날려 보내자 공주가 돌쇠에게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물었다. 돌쇠는 “나를 가두고 풀어주지 않는 사람을 원망하고 있으면서, 내가 곁에 갇혀 있는 매를 날려 보내지 않는다면 매가 얼마나 나를 원망하겠느냐?”라고 설명했다. 

        

▲ 2006년 방영 SBS드라마 연개소문에서, 중국에서 이화낭자와 결혼한 청년 갓쉰동     © 편집부

 

공주는 측은히 여기면서 “둘째 오빠는 네가 달딸을 멸망시키려고 태어났다고 하던데, 어찌 달딸을 망치려고 하느냐?”라고 물었다. 돌쇠는 “하늘이 나로 하여금 달딸을 망치려고 했다면 네 오빠가 날 죽이려 해도 난 죽지 않을 것이고, 또 나를 죽일지라도 나 같은 사람이 또 나올 것이다. 네 오빠에게 이렇게 잡혀 죽게 된 몸이 어찌 달딸을 멸망시킬 수 있겠는가? 만일 공주가 날 풀어준다면 난 저 매와 같이 산으로 물로 훨훨 날아다니면서 나무아미타불이나 읊으며 공주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할 뿐 다른 생각이 없소이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에 공주는 더욱 측은해지더니 “오냐, 내 아무리 무능한 여자지만 국왕의 딸이요 왕자의 동생인데 어찌 너 하나를 못살려주겠느냐? 잠시 후 아버지와 오빠가 돌아오시거든 너의 무죄함을 아뢰어 풀려나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돌쇠는 공주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니 “공주께서는 애쓰지 마시오. 이 한 몸 죽는 게 뭔 대수인가! 내가 듣기론 부처님은 사람을 구할 때 아버지와 오빠에게 아뢴 일이 없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공주가 그 말에 얼굴빛이 더욱 변하더니 내전 불당에 들어가 기도하고는 열쇠를 가져다가 철문을 열고 돌쇠를 풀어주었다.

 

공주는 돌쇠의 손목을 부여잡고는 “오늘 처음 봤지만 내 마음도 널 따라간다. 네 몸은 비록 가더라도 네 마음은 내게 주고 가거라.”라고 말하자, 돌쇠는 “공주가 나를 잊을지언정 내가 어찌 공주를 잊을 수 있단 말이로?”라고 말하고는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쳐 풀뿌리를 캐먹으며 낮에는 숨고 밤에는 걸어 달딸의 국경을 벗어나 귀국했다. 달딸의 둘째 왕자가 돌아와 공주가 사사로이 돌쇠를 풀어준 것을 알고는 크게 노해 단칼에 여동생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당나라 장연은 규염객전에서 “규염객은 부여국 사람으로 중국에 와서 태원에 이르러 이정(李靖)과 서로 친교하며 이정의 아내 홍불지와도 남매의 정을 맺고 중국의 제왕 자리를 손에 넣고자 했다. 그러나 당공 이연의 아들 세민(훗날 당 태종)을 만나보고는 그 뛰어난 기상에 눌려 이정에게 ‘중국의 제왕이 되려는 뜻을 버렸다’고 말하고는 귀국해 난을 일으켜 부여의 왕이 되었다.”라고 했는데, 여기서 부여국은 곧 고구려요, 규염객은 곧 연개소문이라는 말이다.

 

▲ 중국 경극에 등장하는 수염이 긴 규염객은 바로 연개소문이다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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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25 [22:48]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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