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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혼을 말살한 식민사학을 장려한 대한민국 (2부)
친일사학자 이병도의 엉터리 황해도 갈석산설
 
성헌식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07/10 [12:39]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겠다고 야심차게 출범한 반민특위가 이승만 대통령이 비호한 친일경찰에 의해 해체됨으로써 대한민국의 국가정의는 완전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침략지배자 일제의 견마(犬馬)가 되어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고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동족을 짓밟고 약탈하던 친일매국노들은 주인이었던 일제가 이 땅에서 물러갔음에도 그대로 기득권을 누리게 되었으며, 그 후손들은 조상이 남긴 막대한 부와 권력을 세습 받아 대대로 호강하며 잘 살게 되었다.

 

정상적이라면 해방된 나라에서 처형되거나 수감되었어야 할 친일부역자들이 그렇게 되기는커녕 오히려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에서 고위층으로 중용됨으로써 대한민국은 국가정의가 실종된 혼탁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친일청산보다 매국과 친일을 국가가 장려한 꼴이 되어버렸다. 만일 이 나라가 다시 한 번 나라를 빼앗긴다면, 앞으로 누가 있어 나라의 독립쟁취에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바치겠는가!

 

시중에서 친일파하면 자주 회자되는 인물로 노덕술과 김창룡이 있다. 노덕술은 일제 때 독립투사들을 체포·고문했던 악질 고등계형사였다가 해방 후 대한민국 경찰의 핵심간부로 활동했으며, 김창룡은 일본 관동군 헌병대 오장(하사) 출신으로 항일비밀조직을 체포하는 일을 하다가 제1공화국에서 방첩대장과 특무대장을 지내면서 보도연맹 등 각종 양민학살과 김구 암살의 배후가 된 인물이다.

 

이들은 해방 후 자신들의 친일전력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월남하여 친일파가 활개 치는 세상에서 반공투사로 변신해 이대통령의 반대파 숙청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탄압하는데 맹활약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 국립현충원에 있는 김창룡 특무대장의 묘                                                                                                © 편집부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 이병도는 친일사학자

 

만약에 필자더러 매국노 이완용보다 더 나쁜 가장 악질 친일파를 꼽으라면, 필자는 대한민국 사학계의 대부로 추앙받고 있는 우계 이병도(李丙燾) 박사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완용이 팔아먹은 나라는 다시 찾아올 수 있지만, 이병도가 말살해버린 역사는 영원히 되찾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매국노 이완용과 이병도는 본이 같은 우봉(牛峰)으로 이완용이 이병도의 할아버지 항렬이 된다.

 

그런 이병도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1896년생인 이병도의 장인은 일본 육군중장을 지낸 친일파 조성근이고, 이병도는 친일파 윤치형의 처남이다. 그는 중동학교와 보성전문학교 법과 3년을 마치고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 후 귀국해 교편을 잡고 있다가 1925년부터 조선사편수위원회에서 수사관보로 일하게 된다. 유학시절 지도교수는 일본 실증사학의 대부로 문헌비판과 언어학적 고증을 중시하는 쓰다 소우키치였다.

 

조선총독부의 산하기관인 조선사편수회는 일제의 조선침략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조선인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조선사왜곡을 목적으로 1922년 설립된 기구이다. 당시 위원장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 맡았으며, 고문에 친일파 박영효와 을사오적인 이완용과 권중현의 이름이 올라있는 것만 봐도 그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이곳에서 이병도는 이마니시 류(今西龍) 등 이 땅에 식민사학을 심기 위해 일본에서 온 여러 학자들과 교분을 맺는다.  

 

▲ 조선총독부가 식민사학을 조선인에게 심으려는 이유     © 편집부

 

조선사편수회는 결국 웅녀()의 아들 단군신화를 각색해 우리를 뿌리 없는 민족으로 만들었으며, 역년 2천년이 넘는 조선의 역사도 사라져버렸다. 옛 조선은 기자와 위만과 한사군으로 이어지는 이민족 지배의 역사로 시작하므로, 지금의 조선이 위대한 일본 민족의 지배를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그러면서 조선왕조 6백년을 이어왔던 반도사관을 학문적으로 집대성해 한반도 북부를 한사군의 땅으로 확정짓는다.

 

그런데 문제는 일제를 위해 동족의 영혼을 말살했던 이병도는 해방 이후에도 친일 어용역사학회인 조선사편수회를 계속 존속시켜 나갔음에도 처벌은커녕 오히려 서울대학교 사학과 창립교수가 되어 1961년 정년퇴직까지 도서관장·박물관장·대학원장을 두루 역임하며 많은 후학들을 양성했다. 교수시절 일본에서 황국사관을 신봉하는 덴리대학교에서 신도 도복을 입고 예식에 참석해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1960년 허정 내각에서 문교부장관과 학술원 회장을 맡았으며, 1955년부터 1982년까지 국사편찬위원으로 선임되는 등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조선사편수회에서 같이 수사관보로 근무했던 신석호는 고려대 사학과 교수가 된다. 물론 이들의 강의 이론은 조선사편수회에서 일본학자들에게 배운 식민사학 그대로였다. 이렇듯 일제식민사학이 현재도 청소년들에게 그대로 교육되고 있어 우리의 혼을 스스로 말살시키고 있는 중이며, 중국의 동북공정을 이론적으로도 적극 뒷받침해주고 있다. 문헌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더라도 일단 이병도가 지명비정하면 그 누구도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그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최고대부였던 것이다.

 

이병도는 <한국고대사연구>‘낙랑군고에서 고대 한중간 경계였던 갈석산을 황해도 수안으로 비정했다. 수성(遂城)자세하지 아니하나, 지금 황해도 북단에 있는 수안(遂安)에 비정하고 싶다. 수안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산천조에 요동(遼東)산이란 산명이 보이고, 관방조(關防條)에 후대 소축(所築)의 성이지만 방원진(防垣鎭)의 동서행성의 석성(石城)이 있고, 또 진서지리지(晋志)의 이 수성현조에는 -맹랑한 설이지만- ‘진대장성지소기(秦代長城之所起)’라는 기재도 있다. 이 진장성설은 터무니없는 말이지만 아마 당시에도 요동산이란 명칭과 어떠한 장성지(長城址)가 있어서 그러한 부회가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릇된 기사에도 어떠한 꼬투리가 있는 까닭이다.”  

 

▲ 고대 한중간 국경선 갈석산 황해도 수안설은 잘못된 비정     © 편집부

 

이병도가 수성현을 황해도 수안으로 본 이유는 수()자가 같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일말의 학자적 양심은 있었는지 자세하지 아니하나’ ‘맹랑한 설이지만’ ‘터무니없는 말이지만등의 수식어를 썼는데, 이는 한마디로 수성현은 수안이 아니라는 고백이나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더 기가 막힌 것은 승람의 수안군조의 역사연혁에 고구려의 장색현이었다가 신라 때 서암군의 속현이 되었으며, 고려 초기에 수산(遂山)으로 고쳤다.”라고 되어 있어 그곳은 고려 이전에는 아예 자가 없었던 지명이라는 사실이다. 이렇듯 아무런 근거도 없이 비정된 역사이론이 지금까지 대한민국 강단주류사학계의 정설로 되어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하겠다

 

진시황, 한무제, 위무제(조조), 수양제, 당태종 등 9명의 중국황제가 갈석산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이병도의 평양성이 황해도 수안(갈석산) 북쪽에 있다는 지리비정에 대입하면 이상한 결과가 나타난다. 수양제의 30만 선봉대가 평양성까지 왔다가 북쪽으로 후퇴하면서 살수(청천강)에서 거의 전멸을 당했고, 당 태종은 평양성보다 훨씬 북쪽에 있는 서만주 안시성에서 양만춘 장군에게 패해 후퇴하는 상태에서 당시 수양제와 당태종이 어떻게 평양성 남쪽에 있는 황해도 수안 갈석산에 오를 수 있단 말인가! 당시 강력 헬리콥터라도 있었단 말인가? 

 

최태영 박사의 설득으로 1986109일 이병도는 죽기 얼마 전에 "단군은 신화 아닌 우리 국조 - 역대왕조의 단군제사 일제 때 끊겼다"라는 제목으로 단군조선의 실재 가능성을 조선일보에 기고해 눈길을 끌기도 했는데, 그러자 후학들은 우리 선생님께서 노망이 들어 헛소리한 것이다.”라고 받아쳤다. 지금은 선생보다 그 후학들이 더 뼈 속까지 식민사학이다.  

 

▲ 학자적 양심은 있었는지 죽기 전 단군역사의 실체에 대해 고백한 이병도     © 편집부

 

또한 이병도는 1956년에 암살당한 김창룡의 묘비명을 썼다고 한다. 일제의 견마였다가 해방 이후에는 독재자의 반공투사로 변신해 온갖 전횡을 저지른 김창룡을 호국의 영웅으로 찬양하고 미화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아마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기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이병도는 주체적인 철학도 없이 해만 보고 살아가는 해바라기 성향이 농후한 학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국 치안의 중책을 띠고 반역분자 적발에 귀재의 영명을 날리던 고 육군특무부대장 김창룡 중장은 4289(1956) 130일 출근 도중에 돌연 괴한의 저격을 입어 불행히도 순직하였다. 이 참변을 듣고 뉘 아니 놀래고 슲어 하랴. ! 이런 변이 있을가. 나라의 큰 손실이구나 함이 이구동성의 외침이었다.

 

그는 본시 영흥 출생으로 80(1947)에 육사를 마치고 그후 육군본부 정보국 방첩과장에 취임하여 이래 누차 숙군을 단행하여 군의 육성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특히 동난 중에는 군검경합동수사본부장으로 맹활동을 개시하여 간첩오렬 부역자 기타를 검거 처단함이 근 25천명 전시 방첩의 특수 임무를 달성하였다

 

84(1951) 육군특무부대장에 부임하여서는 더욱 헌신적 노력과 탁월한 지휘로써 국가 및 군사 안전 보장에 기여하였다. 그 중요한 적발만으로도 85(1952) 대통령 암살 음모의 김시현 사건 87(1954) 남도부 등의 대남 유격대 사건 88(1955) 대통령 암살 음모자 김재호 일당을 미연에 일망타진한 그것이다. 그는 이렇듯 나라에 유공하였다

 

그 사람됨이 총명하고 부지런하고 또 불타는 조국애와 책임감은 공사를 엄별하여 직무에 진수하더니 급기야 그 직무에 죽고 말았다. - 그는 죽었으나 그 흘린 피는 전투에 흘린 그 이상의 고귀한 피였고 그 혼은 기리 호국의 신이 될 것이다. 그의 생년은 단기 4253(1920) 1123. 향년은 37. 순직과 동시에 육군 중장에 승진되었다.“

 

단기 428923일 문학박사 이병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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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10 [12:39]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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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와 그 자식들, 아니 손자들까지 지나다 18/07/16 [12:31]
매국노 이병도는 물론이거니와 이병도의 자식, 그리고 그 손자들까지 잘 처먹고 잘 살고 있는 나라다. 매국노 이병도의 자손들은 죄 다 서울대 총학장을 해처먹고, 그 손자를 문화재청장으로 쓰는 나라다. 이병도는 文(역사)으로서 역사를 왜곡하는 역적질을 했고 그 손자는 物(문화재)로 역사를왜곡하는 역적질을...??? 왜??? 언제까지 매국노 부역자, 역적들을 우리사회의 기득권자로 그냥 인정하고 가야 하는가? 또다시 국난의 시기가 오면 온 국민 전부를 변절자로 만들어 한민족을 해체하게???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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