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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수는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강 (6부)
국경선 패수와 낙랑군 패수와 평양성 패수는 각각 다른 강
 
김종서 역사모 회징 기사입력  2018/08/23 [10:13]

.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강 패수

 

한국 고대사에 있어서 패수(浿水)는 국경선으로서의 패수,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패수, 고구려 평양성을 안고 흐르던 패수 등 3 개의 서로 다른 패수가 있다.

 

사마천이 보고 듣고 기록한 사기』「조선열전의 패수, 사기』「조선열전의 기록을 대부분 그대로 전재한 한서』「조선전의 패수, 사기』「조선열전의 기록을 약간 수정하여 옮긴 위략의 패수는 모두 동일한 강으로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인 패수(浿水)이다.

 

반면 한서』「지리지의 패수, 설문해자의 패수, 수경의 패수는 낙랑군 내부를 흐르는 패수로서 사기』「조선열전, 한서』「조선전, 위략의 패수와 전혀 다른 패수 이다.

 

고구려 평양성 남쪽을 동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패수(浿水)는 고구려의 패수로서 낙랑군의 패수와 다른 강이고, 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선인 패수와 전혀 다른 강이다. 고구려 평양성 동북쪽에서 흘러와서 서남쪽으로 흘러가는 패수(浿水, 현 대동강)’의 강 이름이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인 패수(浿水)와 동일하다는 이유로 대동강을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인 패수나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패수로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마치 고구려, 신라, 백제의 국경선이었던 한수(漢水, 현 한강)가 고대 중국의 6대강인 한수(漢水)와 동일하다는 이유로 고구려, 신라, 백제가 중국의 한수(漢水)를 사이에 둔 나라였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어떻든 필자가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이었던 패수,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패수, 고구려 평양성 남쪽을 흐르던 패수가 서로 다른 3개의 패수라는 것을 증명하기 전에는 모든 학자들이 국경선으로서의 패수와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패수를 동일한 것으로 주장하였다. 근래에 패수를 국경선으로서의 패수와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패수로 구분하던 학자들이 생겼는데 이들은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패수를 고구려 평양성 남쪽을 흐르던 대동강으로 보는 오류를 범하였다.

 

허신이 설문해자에서, “패수는 낙랑군 누방현에서 흘러나와 동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허신은 후한(서기25~220)의 명제(서기58~75)때부터 화제(서기89~104)때까지 활동하던 학자이다. 그러므로 패수와 낙랑군 누방현이 실존하던 시대를 살던 사람이다. 따라서 허신의 패수에 대한 증언은 정확할 것이다.

 

수경주의 원전인 수경, “패수는 낙랑군 누방현에서 흘러나와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패수현 바로 옆을 지나서 동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 현재까지 리지린, 윤내현 등처럼 수경의 패수를 논해온 모든 학자들이 과임패현(過臨浿縣)’임패현을<임패현(臨浿縣)> 지나다<()>.’라고 해석하여 왔다.

 

그러나 낙랑군에 임패현(臨浿縣)’이라는 현은 존재하지 않는다. ‘임패현(臨浿縣)’임현(臨縣)’패현(浿縣)’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낙랑군에 임현(臨縣)’이라는 현이 없기 때문이다. ‘과임패현(過臨浿縣)’(浿)’패수(浿水)’의 약칭으로 보아야 한다. ‘()’자는 다다르다라는 뜻의 임할 림자로도 사용되고, ‘접근하다라는 의미로 다가붙을 림자로도 사용되기도 한다.따라서 과임패현(過臨浿縣)’패수현을 관통하여 지나간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패수현을 접하여 지나간다.’ 혹은 패수현 바로 옆을 지나간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수경주는 북위(北魏(, 386~534)의 력도원(酈道元, 서기470~527수경에 대하여 주()를 단 지리서이다. 수경은 본래 양자강과 황하를 비롯한 40개의 본류(本流)와 지류(支流)의 지리와 수도(水道)등을 기록한 책이다. 구당서』「경적지에서는 진()나라 곽박(郭璞, 276~324)이 지은 것이라고도 하였고,신당서』「예문지에서는 상흠(桑欽)이 지은 것이라고 하였다.상흠은 신(, 서기 8 ~ 25)나라를 세운 왕망 시대에 모든 학문을 정립한 사람이다.

 

한서』「예문지에 책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전한시대 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런데 수서』「경적지에 곽박이 주해한 수경3권이 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수경주의 원전인 수경곽박 이전에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어떻든 곽박 이전시대 학자인 상흠은 물론 곽박조차도 낙랑군이 존속할 당시의 학자이다. 따라서 수경의 기록은 낙랑군과 패수의 위치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학자들에 의하여 편찬되었음을 알 수 있고, “패수가 낙랑군 누방현에서 흘러나와 동남쪽으로 흘러가서 패수현 바로 옆을 지나 동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수경의 기록은 패수의 실재했던 위치를 증언해주는 기록인 것이다.

 

한서』「지리지에는, “낙랑군패수현물이 서쪽으로 흘러 증지현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라는 기록이 있다. 반고는 패수현에 대한 주석으로 (패수)이 서쪽으로 흘러 증지현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만 하였지 어디서 흘러나왔는지, 증지현에서 어느 방향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갔는지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반면 설문해자패수가 누방현에서 흘러나와 동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여 패수가 흘러나오는 곳과 어느 방향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지에 대해서는 언급하면서도 지나가는 경유지는 전혀 언급하기 않았다. 

 

그러나 수경패수가 낙랑군 누방현에서 흘러나와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패수현 바로 옆을 지나서 동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여 패수가 흘러나온 곳을 누방현으로, 패수가 지나가는 경유지로 패수현으로,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방향이 동쪽이라고 하였다. 수경의 패수가 설문해자보다 자세하고, 한서』「지리지보다 훨씬 더 자세하다. 이는 수경이 강에 대한 전문 지리서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 낙랑군 패수로 추정되는 대릉하와 소릉하 위치도                                         © 편집부

 

따라서 낙랑군에 패수(浿水)’라는 강이 실존할 당시의 기록 중에 가장 자세한 기록을 남긴 수경의 패수(浿水)를 중심으로 설문해자의 패수(浿水), 한서』「지리지의 패수(浿水) 기록을 모두 종합하면, 패수가 어떠한 흐름을 가지고 어디를 지나는 강인지 알 수 있다.

 

, ‘패수는누방현에서 흘러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동남쪽으로 흘러서 패수현 옆을 지나서 서쪽(혹은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증지현에 이르러 동남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는 강()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경의 낙랑군 패수, 설문해자의 낙랑군 패수, 한서』「지리지의 낙랑군 패수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강은 낙랑군 패수로 추정되는 대릉하와 소릉하 위치도에서 보듯이 대릉하이다. 소릉하도 낙랑군 내부를 흐르는 패수의 조건을 어느 정도 충족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요서군(천진당산시 서부 지역)과 요동군(당산시 동부진황도시)의 동쪽에 있는 강들 중에 동쪽으로 흐르다가 패수현 바로 옆을 지나서 동남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갔다.’고 할 수 있는 강은 대릉하 혹은 소릉하 밖에 없다.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흐르는 요하혼하태자하압록강청천강대동강 등은 수경설문해자의 강 흐름과 정반대의 흐름을 가진 강들이므로 낙랑군 내부를 흐르는 패수가 될 수 없다.

 

 < 위 논문은 작년에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가 주최한 국제학술대회의 '패수(浿水)의 위치 찾기 토론회'에서 3인의 집중토론자로 나온 역사모 회장 김종서 박사의 발제문입니다. 본지의 주된 편집방향과는 다소 다르나 다양한 학설소개 차원에서 게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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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23 [10:13]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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