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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수에 대한 기존 학설 비판 (7부)
요동군 沛水와 다른 浿水 위치는 한반도와 만주가 아니다.
 
김종서 역사모 회장 기사입력  2018/09/19 [12:27]

. 패수에 대한 기존 학설 비판 

1. 요동군 패수(沛水)가 낙랑군 패수(浿水)라는 주장의 진위

  

사기』「조선열전, “요동의 옛 요새인 패수(浿水)에 이르러 경계를 삼았다.”라고 하였다. 이 패수(浿水)에 대하여 남송(南宋, 서기 420~478)의 배인(裵駰)사기집해(史記集解)에서 한서의 글자의 음과 뜻에 대하여 말하기를, “(浿)자의 음은 패()자의 음과 가깝다. 되돌려야한다.”고 하였다. 사마정(司馬貞, 서기 679~732)사기색은(史記索隱)에서 위 배인의 말을 인용하지 않고 (浿)자의 음은 패()자의 음과 가깝다. 되돌려야한다.”고 배인과 똑같이 말했다. 표절(지식 도적질)을 한 것이다. 장수절은 서기 736년에 완성한 사기정의(史記正義)에서 지리지(地理志)에서 이르기를 패수(浿水) 요동의 새외에서 나와서 서남쪽으로 흘러서 낙랑현에 이르러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위 배인과 사마정의 (浿)자의 음이 패()자의 음과 가까우니 되돌려야한다.’는 말은 사기』「조선열전의 한()나라와 조선이 국경선인 패수(浿水)’한서』「지리지요동군 조 번한현의 주석인 패수(沛水)’로 바꾸어 써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주장은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인 강 이름 패(浿)’자를 사용한 패수(浿水)늪 패()’자를 사용하는 요동군의 패수(沛水)와 동일한 강으로 만들기 위한 주장으로 옳지 않다. 이들의 행태는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한서』「지리지요동군 번한현에 패수(沛水)가 새외에서 흘러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라는 주석과 낙랑군 패수현에 패수(浿水)가 서쪽으로 흘러 증지현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라는 주석을 단 사람은 반고(班固, 서기 32~92)이다. 반고는 요동군, 번한현, 패수(沛水), 낙랑군, 패수현, 패수(浿水) 등이 실존 할 당시를 살던 사람이다. 때문에 요동군의 패수(沛水)와 낙랑군 패수(浿水)의 이름, 위치, 강 흐름에 대하여 잘 알았던 사람이다. 그러한 반고가 요동군의 패수(沛水)’에는 늪 패()’ ‘성한 모양 패()’자를 사용하고, 낙랑군의 패수(浿水)’에는 강 이름 패(浿)’자를 사용하는 것을 모르고 혼동하여 기록하였을 리도 없다.

 

더욱이 늪 패()’자는 한나라를 건국한 고조 유방이 한왕(漢王)이 되기 전의 관직인 패공(沛公)’()’자이다. 사기본문에만 이 ()’자가 모두 317회 등장하고, 그 중에 227회는 패공(沛公)’()’이다. 반면 강 이름 패(浿)’자는 사기에 총 8회 등장하는 데 조선열전패수(浿水)’라는 강 이름으로 7회 등장하고, 1회는 초세가저녁에는 패구(浿丘)를 쏘고(무너뜨리고)’라는 단어에 1회 등장한다.따라서 사마천이 패수(浿水)’강 이름 패(浿)’자와 패공(沛公)’늪 패()’자를 혼동하여 사용하였을 리 없다.

 

반고가 쓴 한서본문에는 늪 패()’자가 총 322회 등장하고 그 중에 197회는 패공(沛公)’늪 패()’자이다. 한서에도 (浿)’자가 8회 등장하는데 7회는 국경선인 패수(浿水)이고, 1회는 낙랑군 패수현패수(浿水)’라는 강 이름이다. 따라서 반고가 요동군 영역 안에 있던 강인 패수(沛水)’()’자와 낙랑군 영역 안에 있던 패수(浿水)’(浿)’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용하였을 리 없다. 그것도 요동군조와 낙랑군조는 현도군조를 사이에 두고 바로 다음 면()에 붙어있는데 패수(浿水)’(浿)’자와 패수(沛水)’()’자를 혼동하여 사용하였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수절은 배인과 사마정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한서』「지리지요동군 조의 번한현(番汗縣)에 반고가 단 주석인 패수출새외(沛水出塞外) 서남입해(西南入海)’늪 패()’자를 강 이름 패(浿)’자로 바꾸고, ‘()’자와 새외(塞外)’ 사이에 요동(遼東)’을 끼워 넣은 후, ‘서남(西南)’입해(入海)’ 사이에 낙랑현서(樂浪縣西)’자를 끼워 넣는 역사 조작을 하였다. 서로 다른 두 강인 요동군을 흐르던 패수(沛水)’와 낙랑군을 흐르던 패수(浿水)’를 동일한 강으로 조작한 것이다. 이러한 장수절의 역사조작을 보면서 참으로 어리석고, 황당무계한 자라는 생각이 든다.

 

장수절이 패수가 요동군에서 서남쪽으로 흘러 낙랑군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는 조작은 사기』「조선열전, 한서』「조선전, 염철론등의 기록에 반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들 사서들은 조선, 요동군이 실존할 당대의 기록이다. 이 사서들에 조선이 요동의 동쪽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한나라가 조선을 멸하고 낙랑군을 설치하였으니 낙랑군은 요동군의 동쪽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장수절은 패수가 요동의 새외에서 흘러와서 서남쪽으로 흘러 낙랑군에 이르러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여 요동군의 동쪽에 있던 낙랑군을 요동군의 서남쪽에 있었던 것으로 역사 기록을 임의로 조작하였다. 이러한 장수절의 역사지리 조작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윤내현은 첫째로, 서한시대의 요동군 번한현에 패수(浿水)가 있었다. …… 둘째로, 서한시대의 낙랑군 패수현에도 패수(浿水)가 있었다. ……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을 이루었던 패수(浿水)한서』「지리지에 기록된 요동군 번한현의 沛水(浿水)로서 그 강은……라고 하였다. ()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이었던 패수와 낙랑군의 패수와 요동군의 패수가 모두 같은 패수라는 것이다. 이러한 윤내현의 주장은 배인, 사마정, 장수절 등의 예처럼 당연히 옳지 않다.

 

‘3’절의 대릉하 패수설의 진위(眞僞)에서 보듯이 정인보는 윤내현 보다 앞서 패수(浿水)와 패수(沛水)가 같은 음()이었기 때문에 한서』「지리지요동군 번한의 패수(沛水)’가 본래는 수경(水經)패수(浿水)가 동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東入于海).’는 기록의 패수(浿水)가 바로 번한현 역내를 흐르는 물인 패수(沛水)였다.”고 주장하였다.당연히 배인, 사마정, 장수절 등의 예처럼 옳지 않다. 박준형이 요동군 번한현의 패수(沛水)’를 조선과 한()나라와의 국경선 이었던 패수(浿水)라고 한 주장도 옳지 않다.배인, 사마정, 장수절, 윤내현 등의 예처럼 서로 다른 강인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 이었던 패수와 요동군 내부를 흐르는 패수를 동일한 강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배인, 사마정, 장수절, 윤내현, 박준형 등이 요동군 패수(沛水)와 낙랑군 패수(浿水)를 동일한 강이라고 한 주장은 후한서』「군국지의 기록에 반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후한서』「군국지에는 요동군은 낙랑군 동북쪽 3,600리에 있고, 현도군은 낙양 동북쪽 4,000리에 있고, 낙랑군은 낙양 동북쪽 5,000리에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요동군의 서쪽 군계와 동쪽 군계 사이는 400리 이고, 요동군 동쪽 군계에서 1,000리 동쪽에 낙랑군 서쪽 군계가 있다. 따라서 서남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는 강인 요동군 패수(沛水)가 요동군 동쪽 군계에서 1,000리 동쪽 밖에 있는 낙랑군에 있을 수 없다. 

 

▲ 여러가지 패수설     © 편집부

  

2. 대동강, 청천강, 압록강, 태자하, 혼하, 한우락, 요하 패수설의진위

 

()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인 패수를, 이병도노태돈송호정백겸은 청천강으로 주장하였고,약용철준은압록강으로 주장하였으며신채호는 요동반도의 한우락(蓒芋濼)으로 주장하였고,일본인 서천권(西天權)은 요하로 주장하였으며,일본인 대원이무(大原利武)는 사하(沙河)로 주장하였고,서영수박준형은 혼하로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앞 ‘3’절에서 보았듯이 사마천이 본 패수가 되기 위한 8가지 조건에 반하는 주장들이고, ‘4’절에서 보았듯이 고조선과 한군현 위치로 본 국경선이었던 패수 위치로 본 11가지 조건에 반하는 주장들이다.

 

신채호는 패수를 한우락(蓒芋濼)’이라고 하였다.대청일통지한우락(蓒芋濼)’이라는 강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청나라 때는 한우락(蓒芋濼)이라는 강이 없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신채호가 패수를 한우락(蓒芋濼)이라고 한 것은 위 요사』「지리지동경도 편의 패수(浿水)가 니하(泥河) 또는 한우락(蓒芋濼)’이라고 한 기록을 보고 한 주장이다. 따라서 요사』「지리지를 인용하지 않고 패수(浿水)가 한우락(蓒芋濼)’이라고 주장한 것은 옳지 않다.

 

일본인 학자 서천권(西天權)1910년에 출간한 일한상고사의이면권에서 사기』「조선열전에 한()나라 사신과 군사들이 왕래와 교통에 지리적으로 적합하여야 하므로 왕험성은 금일의 해성(海城)이고 패수현은 영구(營口) 부근에 해당하고, 패수는 대요수(현 요하)라고 하였다.그러나 사신과 군사들의 왕래와 교통이 적합한 곳은 이곳 말고도 많은 곳에 있으니 서천권(西天權)의 주장은 비논리적이다.

 

일본인 학자 대원이무(大原利武)1933년에 출간한 한대오군이수고에서 요사』「지리지에서 패수(浿水)가 사하(沙河)라고 비정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요사』「지리지에는 패수(浿水)가 니하(泥河) 또는 한우락(蓒芋濼)이라고 하였다따라서 대원이무(大原利武)의 주장은 요사』「지리지의 패수(浿水) 기록을 왜곡한 것으로 옳지 않다.

 

패수(浿水)를 서남쪽으로 흐르는 압록강, 청천강, 한우락(어니하), 태자하, 요하, 혼하, 요수 등으로 주장한 첫째 근거는 한서』「지리지낙랑군(樂浪郡) 패수(浿水)현에 반고가 단 수서지증지입해(水西至增地入海)’라는 주석이다.이 기록을 패수의 위치를 논하는 모든 학자들이 패수가 서쪽으로 흘러 증지현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갔다.’고 해석하여 왔다. 필자조차도 그렇게 해석하여 왔다.

 

그러나 반고의 주석은 물이<()>서쪽으로 흘러<(西)>증지현에<중지(增地)>에 이르러 바다로<()>들어갔다<()>.’라고만 하였을 뿐, 물이 어디에서 흘러온 강인지를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서쪽(혹은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다. 이러한 필자의 이의 제기에 대하여 앞에 패수현의 패수(浿水)’가 있기 때문에 (浿)’자를 생략하고, ‘()’만 쓴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주장할 수도 있다.

 

때문에 한서』「지리지에 다른 강들은 어떻게 표시하였는지 조사하여 보았다. 그런데 반고는 한서』「지리지무도군(武都郡)조의 무도군……저현저수(沮水)가 동쪽 낭곡(狼谷)에서 나와서 남쪽으로 흘러 사선(沙羨)에 이르러 남쪽으로 흘러 강으로 들어간다.”에서 보듯이 강 이름 앞에 오는 지명과 강 이름이 동일함에도 강 이름 ()’자를 생략하지 않았다. 따라서 패수현을 흐르는 강이 꼭 패수(浿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또한 한서』「지리지에서 이 ()이 증지현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갔다고만 하였지,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갔는지,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갔는지 그 방향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고 있다. 서쪽으로 흘러 증지현까지 온 강물이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갔을 수도 있고,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갔을 수도 있고,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갔을 수도 있다. 때문에 한서』「지리지의 패수를 가지고는 패수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한서』「지리지의 패수현에서 증지현을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는 강을 근거로 패수가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패수를 요하, 혼하, 태자하, 한우락,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라는 주장은 사마천이 직접 보고 듣고 기록한 사기』「조선열전의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인 패수(浿水)가 요동 고새에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는 강이라는 기록에 반()하는 등 앞 ‘5’절의 조선의 국경선 패수가 되기 위한 19가지 조건을 갖춘 강19가지 조건 중에 단 1가지의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한 반역사적, 비실증적, 비과학적인 주장이다. 지면관계상 이들의 주장이 잘못된 주장임을 밝힌 필자의 연구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하지 못함을 양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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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19 [12:27]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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