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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의 산해관 서쪽 양하·석하 패수설의 맺음말 (9부)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 패수의 8가지 조건에 부합
 
김종서 역사모 회장 기사입력  2018/11/13 [16:30]

. 맺음말

 

한국고대사에 있어서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이었던 패수(浿水)가 실재했던 위치가 어디인지,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패수(浿水)가 실재했던 위치가 어디인지를 밝혀내는 것만큼 중요한 과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경선이었던 패수(浿水)와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패수(浿水)를 동일한 강으로 혼동한 연구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요동군 내부를 흐르던 늪 패()’자를 사용하던 패수(沛水)’와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강 이름 패(浿)’자를 사용하던 패수(浿水)와 동일한 강으로 생각하고 늪 패()’자와 강 이름 패(浿)’자를 동일한 글자를 뜻하는 것으로 주장하기도 하였고, 사기정의의 장수절처럼 아예 한서』「지리지의 요동군 패수(沛水)에 대한 문장과 낙랑군 패수(浿水)에 대한 문장을 한 문장으로 조작하는 사례까지 있었다.

 

패수의 위치를 논하는 학자들은 앞 장에서 논한 바처럼 패수의 위치를 고증하기 위해서 반드시 사마천이 직접 보고 듣고 기록한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이었던 패수(浿水)’가 되기 위한 8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강을 찾아야 함에도 필자 이전에 그러한 노력을 행한 학자가 아무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이었던 패수(浿水)’는 고조선 영토 안에 있던 강이었으므로 고조선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관자』『산해경』『여씨춘추』『사기』『전국책』『설원』『회남자』『염철론등을 철저히 연구 분석하여 했음에도 필자 이전에 이러한 역사지리서에 담긴 고조선의 위치를 제대로 규명해본 학자도 없었다.

 

또한 낙랑군 내부를 흐르는 패수(浿水)의 위치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낙랑군과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강인 패수(浿水)가 실존할 당시를 살던 학자들이 남긴 상흠의 수경, 허신의 설문해자, 반고의 한서등에 담긴 패수(浿水)의 기록을 철저히 연구 분석하고, 후한의 낙양에서 동북지역 군국들의 거리를 기록한 후한서』「군국지의 요서군, 요동군, 현도군, 낙랑군 등이 실재했던 위치를 고증하여 패수의 위치를 찾아본 학자도 없었다.

 

한서』「무제기진번군(眞番郡)’에 주석으로 실린 무릉서에 장안에서 임둔군 치소까지의 거리, 장안에서 진번군까지의 거리를 가지고 임둔군 진번군 위치를 찾고, 그 임둔군 진번군 위치를 가지고 패수의 위치를 추정해본 학자도 없었다.

 

이러한 학자들의 연구 행태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고대 역사지리를 연구한 학자들이 제 각각 자기가 배운 지식의 한도 내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적인 연구 풍토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어떻든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인 패수(浿水)의 위치는 사마천이 직접 보고 듣고 기록한 사기』「조선열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수천리 영토를 가진 조선의 국경선으로서의 패수, ()나라 수군이 제군을 출발하여 발해를 항해하여 닿은 수 있는 조선의 국경선 패수, 만이(동이) 제국(諸國)과 한()의 교통로 상에 있던 조선의 국경선 패수, 요동군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는 조선의 국경선 패수, ()()나라 영토의 동쪽 끝인 갈석산 바로 동쪽에 있던 조선의 국경선 패수,

 

갈석산과 갈석산 서쪽을 영역으로 한 요동군 요새의 동쪽에 있던 조선의 국경선 패수, 갈석산 바로 동쪽에 있던 진()나라 고공지와 상하장 동쪽에 있던 조선의 국경선 패수, 패수서군이 패수상군이 될 수 있는 강상류가 서쪽인 조선의 국경선 패수 등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 강이 하북성 진황도시 산해관서쪽을 흐르는 양하(洋河)와 석하(石河)’이고, 양하 보다 석하(石河)’가 패수의 실제 모습과 더 가깝다.

 

뿐만 아니라 석하(石河)’관중이 본 8천리 영토의 발조선의 서쪽지역에 있었을 패수, ② 『산해경』「해내북경의 조선의 서쪽지역에 있었을 패수, ③ 『산해경』「해내경의 조선의 서쪽지역에 있었을 패수, ④ 『회남자의 요수와 회남자의 주석서인 회남홍렬해의 요수의 요동 동쪽에 있었을 패수, ⑤ 『설원의 제환공과 관중이 건넌 강인 요수의 동쪽에 있었을 패수,

 

⑥ 『한서』「지리지의 요서군 영지현(고죽성) 동쪽 지역에 있었을 패수, ⑦ 『후한서』「군국지의 요동군 동쪽 지역에 있었을 패수, ⑧ 『후한서』「군국지의 현도군 서쪽 지역에 있었을 패수, ⑨ 『후한서』「군국지의 낙랑군 서쪽 지역에 있었을 패수, ⑩ 『무릉서의 임둔군 서쪽 지역에 있었을 패수, ⑪ 『무릉서의 진번군 서쪽 지역에 있었을 패수 등의 11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강이기도 하다.

 

국경선으로서의 패수 후보군의 범위를 좀 더 멀리 잡을 경우 구하(狗河), 육고하(六股河)여아하(女兒河)를 패수 후보군에 포함시킬 수 있지만 석하(石河)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이었던 패수가 될 가능성은 희박해 진다.

 

수경의 상흠, 설문해자의 허신, 한서』「지리지의 반고 등은 낙랑군의 패수가 실존할 당시의 학자들로 낙랑군 내부를 흐르는 패수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이들이 남긴 기록은 정확할 것이다. 다만 이들은 패수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를 기록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필자가 이 세 학자들이 남긴 패수 기록은 종합해보니 대릉하의 강 흐름과 일치하였고, 소릉하도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패수로 볼 수 있었다.

 

고조선한사군 재한반도설’, ‘낙랑군 재한반도설’, ‘낙랑군대방군 재한반도설을 주장해온 주류학자들이 패수라고 주장해온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은 앞 ‘5’절의 조선의 국경선 패수가 되기 위한 19가지 조건을 갖춘 강에서 본 19가지 조건 중에 단 1가지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다만 일본강점기 이래 현재까지 국경선으로서의 패수나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패수를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이라고 주장해온 학자들은 평양 유역에서 발굴된 세칭 낙랑유물들을 그 증거로 제시해왔다.

 

그러나 필자가 세칭 낙랑유물들을 철저히 연구 분석해본 결과 낙랑호구부, 점제현신사비, 낙랑봉니, 낙랑와당, 상당수의 인장 등 유물 상당수는 조잡한 위조품이었거나 평양평안도황해도 지역이 한()()서진(西晉)으로부터 독립적인 국가가 존재했다는 증거라는 점을 증명한 바 있다.

 

패수가 요하, 혼하, 태자하가 패수라는 주장 또한 조선의 국경선 패수가 되기 위한 19가지 조건중에 단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란하가 패수라는 주장 또한 조선의 국경선 패수가 되기 위한 19가지 조건에 배치되는 주장이었다. 따라서 란하, 혼하, 태자하,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등이 패수라는 주장은 확증편향적 주장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패수가 란하 이서지역에 있었다는 주장들은 더욱 심각한 확증편향적 주장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고조선과 연나라의 국경선이었던 요수가 란하라는 주장도 옳지 못하지만 란하가 요수도 되고, 패수도 되고, 열수도 된다는 주장도 옳지 못하고, 요동군 번한현을 흐르던 늪 패()’자를 사용하던 패수(沛水)’가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강 이름 패(浿)’자를 사용하는 패수(浿水)’와 동일한 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더욱 옳지 못하다.  

 

김 종 서 문학박사 (한국고대사 전공)

역사모(역사교육을 바로 잡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

www.yeoksam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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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13 [16:30]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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