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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처럼 군사력이 막강했던 고구려 (3부)
당태종은 디젤엔진을 장착한 항모, 당시 고구려는 핵항모수양제는 탁군(涿郡)에 300만 대군을 모아놓고 612년 정월 3일부터 제1군을 출발시켜 다 끝날 때까지 40일이 걸렸다. 이후 3월 14일에 수양제가 군사들이 있는 요수에 도착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2
 
성헌식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12/12 [14:31]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듯이, 중국은 육지와 해상으로 유럽까지 연결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위해 인도양 연안도시에 해군기지들을 확보해 해상영향력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또한 일단 유사시 중동으로부터의 원활한 원유공급을 위해서는 인도양과 남중국해의 해상권을 장악할 강력한 원양해군이 필요하다. 게다가 최악의 경우 미국에게 남중국해를 봉쇄당하게 되면 중국 본토까지 미국의 항모에게 폭격당할 위험도 있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중국은 항공모함 건조를 추진해 첫 번째 항모인 랴오닝호를 20129월 남중국해에 배치했으며, 금년 건군 90주년을 맞이해 두 번째 항모인 산둥호를 진수시켜 2년 후 취항시킬 예정이고 현재 3번째 항공모함을 설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의 항공모함 건조는 자신들의 국가위상과 군사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함이고 궁극적으로는 미국 제7함대를 견제하려는 것이다.

 

중국의 첫 항모는 구소련에서 70% 가량 건조되다가 재정난으로 중단된 항모를 우크라이나로부터 들여다가 개조한 랴오닝호이다. 두 번째 항모인 산둥호는 랴오닝호와 달리 모든 과정이 중국의 독자기술로 건조되었다. 산둥호는 길이 315m 75m 배수량 7만 톤으로 랴오닝호보다 약간 크며, 관제탑의 면적과 위치를 조정해 갑판이 1.5배로 넓어졌다. 그러나 동력장치는 랴오닝호와 같은 디젤엔진이다.

 

▲ 중국의 항모는 미국의 핵추진항모에 비해 전투력이 열악하다.     ©


이러한 중국의 항모전단이 만일 미 제7함대와 막상 실전에서 붙는다면 그 결과는 중국이 백전백패일 것이다. 그 이유는 중국의 항모는 수시로 연료공급을 받아야 하는 디젤엔진이라 주변 항구에 기항하던가 보급선이 수시로 왕복해야 하는 반면에, 미국의 항모는 25년간 연료공급이 불필요한 핵추진 항공모함이다. 만일 중국의 보급선이 해상에서 잡히거나 폭격을 당하면 그 항모는 그야말로 바디 위를 떠다니는 섬 즉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또한 미국 항모는 핵 추진엔진에서 나오는 강력한 증기나 전기의 힘으로 이륙하려는 함재기를 뒤에서 힘차게 밀어주는 반면에, 디젤 동력을 쓰는 산둥호는 뱃머리가 스키점프대처럼 살짝 들려있는 구소련 방식이라 추진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중국의 함재기들이 연료와 무기를 많이 적재할 수 없다는 말로 장거리 임무를 수행하기가 매우 제한적이다.

 

현재 중국이 건조한 항공모함들은 그야말로 국가의 위상과시용으로 속 빈 강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원양해가 아닌 자신의 근해에서는 이 항모들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상대가 미국이 아닌 가까우면서 항모가 없는 한국이나 일본일 경우에는 그야말로 괴물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중국의 군사강국화는 우리에게는 생존이 걸린 위험요소가 아닐 수 없다.

 

고구려는 지금 미국과 같이 막강한 존재

 

수양제와 당 태종 당시 고구려는 지금의 미국과 같이 막강한 존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을 통일한 수양제가 300만이라는 대군을 동원해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내호아의 수군이 대패한 이유는 중국의 디젤엔진 항모와 미국의 핵추진 항모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나라 선봉대 30만 대군이 살수에서 전멸한 이유도 고구려에게 보급선이 끊겨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법.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는 천하의 명군으로 칭송받는 당 태종이었지만 그 역시 디젤엔진을 장착한 항모에 불과했고, 당시 고구려는 핵추진 항모를 보유한 군사강국이었다. 게다가 이를 첨단 소프트웨어로 운영하는 총사령관이 천하의 영웅 연개소문이었다. 애당초부터 상대가 되지 않은 전쟁이었으나, 그럼에도 당 태종이 무모하게 객기를 부려본 것이다.  

 

드디어 6441014일 당 태종의 거가가 낙양을 향해 출발하며 가는 도중에 29일에 면지(澠池)에서 사냥을 하고 112일 낙양에 도착했다. 앞서 출발했던 장수 장검으로부터 요수(遼水)의 물이 불어 건널 수 없다는 보고를 받은 당 태종은 장검을 낙양으로 오라고 명했다. 도착한 장검이 당 태종에게 지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니 흡족해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의 요수는 현재 서만주를 흐르는 요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만일 위 요수가 현재 요녕성 요하였다면 당 태종이 장검에게 낙양으로 돌아오라는 명도 내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또 설사 명을 그가 낙양으로 돌아오려면 몇 개월은 족히 걸려야 한다. 당 태종이 명을 내리자마자 장검이 바로 돌아온 것을 보면 요수는 낙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강임을 알 수 있다. 또한 11월 겨울에 범람하는 강은 황하인지라, 요수는 낙양 북쪽을 흐르는 황하 또는 큰 지류로 판단된다.   

 

▲ 요수는 낙양 근처를 흐르는 황하 또는 큰 지류     © 편집부

 

 

수양제는 탁군(涿郡)300만 대군을 모아놓고 612년 정월 3일부터 제1군을 출발시켜 다 끝날 때까지 40일이 걸렸다. 이후 314일에 수양제가 군사들이 있는 요수에 도착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2월에 양제가 도착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오기로 보인다. 탁군에서 약 한 달 만에 요수에 도착했다는 말인데 그 요수가 현 요녕성 요하였다면 도저히 한 달 만에 갈 수가 없는 거리이다. 중국은 유비·관우·장비가 도원결의를 맺은 탁군을 지금의 북경이라고 하며 남쪽에 동상과 유적지를 만들어놓았으나 이는 지명이동을 통한 명백한 역사왜곡이고, 원래 탁군은 하남성과 하북성과 산동성이 만나는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 산동성 하택시 견성현에 있는 요릉     © 편집부

 

▲ 산서성 임분시에 있는 가짜 요릉                                                                                   © 편집부


아래 <한서지리지>에 의하면, 유주(幽州)에 속하는 탁군에 역수가 나오는 염향(閻鄕)현이 있고, 기주(兾州)에 속하는 중산국에 역수가 나오는 곳이 서북쪽인 북신성현이 있다. 또한 탁군에 고양(高陽)현이 있는데, 중산국의 망도(望都)현의 박수가 동쪽으로 고양까지 흘러 황하로 들어간다. 요임금의 탄생지이며 무덤이 있는 망도현은 지금의 산동성 하택(菏澤)시 견성(鄄城)현이다. 따라서 탁군은 하택시 견성현의 서북방면 일대이다. 중국은 산서성 임분시 동쪽에 가짜 요임금의 무덤을 만들어놓고 상고사를 왜곡하고 있다.

 

涿郡(탁군)高帝置莽曰垣翰屬幽州戶十九萬五千六百七口七十八萬二千七百六十四有鐵官縣二十九涿()桃水首受淶水分東至安次(안차)入河應劭曰:「涿水出上谷涿鹿縣。」 師古曰:「淶音來。」 莽曰逎屏師古曰:「逎古遒字音字由反。」 穀丘故安閻郷易水(역수)所出東至范陽入濡也并州浸水亦至范陽入淶師古曰: 「言易水又至范陽入淶也濡音乃官反。」 南深澤范陽(범양)莽曰順陰應劭曰:「在范水之陽。」 蠡吾師古曰:「蠡音禮。」 容城莽曰深澤廣望侯國莽曰言符應劭曰:「音莫。」 高陽(고양)莽曰高亭應劭曰:「在高河之陽。」州郷侯國安平都尉治莽曰廣望亭樊輿侯國莽曰握符侯國莽曰冝家良郷侯國垣水南東至陽郷入桃莽曰廣陽利郷侯國莽曰章符臨郷侯國益昌侯國莽曰有袟陽郷侯國莽曰章武西郷侯國莽曰移風饒陽應劭曰:「在饒河之陽。」 中水應劭曰:「在易滱二水之間故曰中水。」 武垣莽曰垣翰亭應劭曰:「垣水出良郷東入桃。」 阿陵莽曰阿陸阿武侯國高郭侯國莽曰廣隄親昌侯國

 

中山國(중산국)高帝郡景帝三年為國莽曰常山屬兾州(기주)應劭曰:「中山故國。」 戶十六萬八百七十三口六十六萬八千八十縣十四盧奴應劭曰:「盧水出右北平東入河。」 北平徐水東至高陽入博又有盧水亦至高陽入河有鐵官莽曰善和北新成桑欽言易水(역수)出西北東入滱莽曰朔平(당현)堯山在南莽曰和親應劭曰:「故堯國也唐水在西。」 張晏曰:「堯為唐侯國於此堯山在唐東北望都(망도)。」 孟康曰:「晉荀吳伐鮮虞及中人今中人亭是。」 深澤莽曰翼和苦陘莽曰北陘應劭曰:「章帝更名漢昌陘音邢。」 安國莽曰興睦曲逆蒲陽山蒲水所出東入濡又有蘇水亦東入濡莽曰順平張晏曰:「濡水於城北曲而西流故曰曲逆章帝醜其名改曰蒲陰在蒲水之陰。」 師古曰:「濡音乃官反。」 望都博水東至高陽入河莽曰順調張晏曰:「堯山在北堯母慶都山在南登堯山見都山故以為名。」 新市應劭曰:「鮮虞子國今鮮虞亭是。」 新處毋極陸成安險莽曰寧險應劭曰:「章帝更名安熹。」  

 

▲ 광개토태왕의 유주와 점령지, 탁군은 하남성 동단 산동성과 하북성이 만나는 일대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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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2/12 [14:31]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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