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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성과 백암성을 함락시킨 당태종 (4부)
드디어 안시성 앞 주필산까지 진군한 이세민
 
성헌식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9/05/07 [10:21]

510일 요수를 건넌 지 일주일 만에 당태종은 고구리의 관문으로 철옹성인 요동성을 함락시켰다. 그럴 수 있었던 첫째 이유는 고구리 석성의 견고한 성벽을 뚫기 위해 큰 돌을 300보 이상 날려 보낼 수 있게 특별 개발된 신무기인 포차(砲車)라는 거대한 투석기가 있었고, 또 다른 이유는 마침 남풍이 강하게 불어왔는데 이를 적절히 이용한 화공법이 큰 효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당나라 장수 이세적이 포차를 일렬로 세워놓고 큰 돌을 날려 보내니 돌이 맞는 곳마다 요동성의 성벽이 허물어졌다. 고구리군은 나무를 쌓아 누대를 만들고 그물을 쳤으나 날아오는 큰 돌에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마침 남풍이 세차게 불자 당태종은 민첩한 병사들에게 충차의 꼭대기에 올라가 성의 서남쪽 성루를 불사르라 명했다. 불이 성 안으로 타들어가자 당태종은 장병들에게 성에 오르라 명했다.

 

고구리 군사들은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패하고 말았다. 1만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1만여 명의 군사와 4만 명의 남녀 주민이 생포되고, 50만 섬의 양곡을 빼앗겼다. 당태종은 봉화를 올려 태자에게 승전보를 알렸다. 역시 당태종은 수양제에 비해 뛰어난 인물이었음이 확실하다. 요동성은 그동안 중국과의 숱한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그야말로 철옹성이었다. 수양제가 백만 대군으로도 함락시키지 못했던 요동성을 당태종은 정예병 10만으로 함락시켰으니까 말이다.

 

1) 고구려 요동성은 어디인가?

55일 요택을 지나고 10일 요수를 건넌 당 태종이 17일 요동성을 함락시킨 것으로 보아 요택과 요동성은 그다지 멀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요동성은 심수 하류에서 약 일주일간 행군거리에 있는 성일 것이다.그런 요동성이 만주에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일 것이다.

 

<삼국사기>대조대왕 3(55) 요서에 10성을 쌓아 한나라의 침입에 대비했다.”라는 기록에는 지명이 생략되어 있고,

 

태백일사조대기에서 말하기를 태조 융무 3년 요서에 10성을 쌓고 이로써 한의 10성에 대비케 했다. 안시(安市)는 개평 동북 70, 건안(建安)은 안시의 남쪽 70, 석성(石城)은 건안의 서쪽 30, 풍성(豊城)은 안시의 서북 100, 한성(韓城)은 풍성의 남쪽 200, 옥전보(玉田堡)는 한성의 서남쪽 60, 건흥(建興)은 난하의 서쪽, 요동(遼東)은 창려(昌黎)의 남쪽, 요택(遼澤)은 황하 북안 왼쪽, 택성(澤城)은 요택의 서남쪽 50.”라는 기록이 있다.

 

▲ 태조대왕 때 쌓은 요서 10성의 위치     © 편집부


 

2) 고구려 백암성주의 항복

당태종이 백암성으로 움직인다는 정보를 입수한 연개소문은 오골(烏骨)성의 1만여 병력으로 백암성을 지원했으나 쉽게 격파 당했다. 61, 이세적이 백암성 서남쪽에 도착하니 요동성 함락소식을 들은 성주 손대음(孫代音)이 항복하려다가 지세의 험준함과 오골성의 지원병을 믿고는 생각을 바꾸게 된다. 그런데 그들이 쉽게 격파당하고,

 

얼마 후 백암성 서북쪽에 도착한 당태종이 백암성주의 변심에 화를 내며 성을 빼앗으면 마땅히 빼앗은 사람과 물건을 모두 전사들에게 상으로 주리라.”고 하면서 큰 공격을 가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백암성주는 비밀리에 사자를 보내 항복하기를 청하면서 성 위에서 칼과 도끼를 던지는 것으로 신호를 삼겠다고 하면서 저는 항복하기를 원하지만 성 안에 따르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당 태종은 당나라 깃발을 주며 틀림없이 항복하겠다면 이 깃발을 성 위에 세우라.”라고 말했다.

 

백암성주 손대음이 당나라 깃발을 세우자 성 안에 있던 남녀 1만여 명은 당나라 병사가 이미 성 안에 들어왔다고 판단하고는 모두 손대음을 따라 물가에 장막을 치고 항복했다. 백암성주의 항복에 대해 <태백일사>성주 손대음은 속여서 사신을 보내 항복을 청하게 했는데, 실은 틈을 엿보아 반격하고자 했다.”라는 기록이 있으나 추가 자료가 없어 가짜 항복 여부는 알 방도가 없다.

 

그런데 당나라 군대가 요택과 요수를 지날 때도 아무런 수비가 없었고, 관문이며 철옹성인 요동성이 함락당하고 이어 백암성주까지 항복해 큰 성들이 차례로 당나라 군대에게 넘어가고 있음에도 아직도 고구려 총사령관인 연개소문은 아무런 작전명령을 발동하지 않고 있다. 그가 병법에 능한 뛰어난 인물이라는 당나라 이정 장군의 평가는 과연 옳은 것인가?   

 

▲ 당 태종 이세민의 진군로                                                              © 편집부

 

안시성 앞 주필산에 다다른 이세민 

 

64562일 백암성까지 접수한 당태종은 파죽지세로 620일 안시성까지 진군했다. 당태종은 이세적 장군에게 내가 들으니 안시성은 성이 험하고 병사가 강할 뿐만 아니라, 그 성주의 재주와 용맹 역시 막리지의 난에도 성을 지키고 항복하지 않았을 정도이다. 당시 막리지가 그를 공격했다가 굴복시킬 수 없기에 안시성을 그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건안성은 병력이 약한데다가 군량미도 적은 관계로 기습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으니 그대는 먼저 건안성을 공격하라. 성이 함락되면 안시성은 이미 우리 수중에 들어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이세적이 건안성은 남쪽에 있고 안시성은 북쪽에 있는데, 우리의 군량은 전부 요동에 있습니다. 안시성을 지나 건안성을 공격하다가 만약 고구리에서 우리의 군량수송로를 차단하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해서 먼저 안시성을 공격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안시성이 함락되면 당당하게 북을 울리며 행군해 건안성을 쉽게 빼앗을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당태종이 따랐다고 한다.

 

사태를 관망하던 연개소문은 북부욕살 고연수와 남부욕살 고혜진에게 고구리와 말갈의 15만 군사를 거느리고 안시성을 구원하도록 했다. 지원군이 왔다는 소식에 당태종은 신하들에게 지금 고연수에게는 세 가지 전략이 있다.

 

첫째, 안시성과 연결되는 보루를 쌓고, 높은 산의 험한 지세에 의지해 성 안에 있는 식량을 먹어가며 말갈병사들을 풀어 우리의 가축을 약탈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공격한다 해도 빨리 함락시킬 수 없고, 되돌아가려 해도 늪지에 가로막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군사들은 가만히 앉아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되니, 이것이 상책이다.

 

둘째, 성 안의 무리를 이끌고 숨어버리는 것이 중책이다

 

셋째, 자신의 지혜와 재능을 모르고 우리와 대적하는 것이 바로 하책이다.

그대들은 두고 보라. 그는 반드시 하책을 가지고 나올 것이니, 그들을 사로잡는 작전이 내 눈 앞에서 벌어질 것이다.”라며 만약 고구리가 지구전을 편다면 당나라 군대가 무척 괴로울 것이라는 스스로의 치명적인 약점에 대해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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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07 [10:21]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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