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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당-신라 삼국전쟁과 돌궐의 관계 (1부)
 
전원철 고대사연구가 (변호사 법학박사)I. 서론 고구 기사입력  2019/10/27 [18:22]

I. 서론

 

고구려와 동·서돌궐, 위구르, 셀주크투르크, 호라즘제국, 이후의 오스만투르크

 

 

7세기 비잔틴(동로마)제국 역사가 쎄오필락토스 시모카테스(Θεοφύλακτος Σιμοκάτ(τ)ης)

 

고구려(Mukri)”와 당 태종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들은 강력하고 용감한 백성들이다고 한다.

 

요동지역에 원형을 둔 고구려 말편자는 러시아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러시아,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등 지역에서도 발견 된다. 그런데 우리 역사학자들에게는 알려 있지 않지만, 1310년대 라시드 웃딘이 쓴 <오구 즈의 역사>는 그 원형이 고구려(호구르) 으로 잡히는 인물과 그의 동방민족 오 구즈(*호구르=고구려)인들이 로마, 인도,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일대를 정복한 대서사시를 기록하고 있다.

 

동돌궐, 위구르, 서돌궐 제국사는 고구려-발해와 긴밀한 관계를 언급하고 있고, 셀주 크투르크, 호라즘샤 제국, 이후의 투르크 백양조 및 흑양조, 오스만투르크 등의 제국들의 칸(황제)들은 자기 선조들의 출자와 관련하여 고구려(마한)와 관련된 기록을 해두고 있다. 이 사실들은 고구려인의 직계 후손인 오늘날의 우리 코리안들과 투르크인들 사이의 어떤 관계를 보여주는가? 

  

 

▲ 고구려 시대 투르크 지역의 지도     © 편집부

 

II. 본론: 돌궐의 일부로 가입한 고구려 왕족과 유민

 

<구당서(舊唐書)> [고구려전]668년에 고구려가 망한 뒤 마지막 국왕인 보장왕 (寶藏王) 고장(高藏)이 영순년간(682~683)에 사망하자 고려의 옛 왕가와 유민 (高麗舊戶)은 돌궐(突厥, Turkistan) 과 말골(靺鞨, 말갈, 몰골, 馬郡, 震國, 渤海) 으로 들어갔다. 이리하여 고씨 군장(高氏君長)은 사라졌다.”고 기록한다. 곧 고구려 보장왕의 아들과 손자들, 그리고 그 유민들은 돌궐(Turkistan)과 말갈(靺鞨), 곧 진국(震國)-발해(渤海)-고려(高麗)로 들어가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한편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인 당()나라 시절 공주(鞏州) 에서 세상을 버린 보장왕 고장(高藏)의 무덤은 동돌궐(東突厥) 힐리 카간(頡利可汗, Illig qaγan, ? ~634)의 무덤 옆에 세워졌다. 이는 아마도 보장왕 자신이 아래서 보다시피 자기 사돈인 힐리 카간의 옆에 묻히고 싶다고 한 유언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1. 동돌궐(東突厥) 힐리 카간(頡利可汗)과 고구려 관계

장왕과 힐리 카간의 사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힐리 카간이 누구인지를 볼 필요가 있다. 힐리 카간은 <수서(隋書)> [돌궐전]이 전하듯이, 고구려 사신과 장막 안에서 만나다가 수양제와 부딪힌 적 있는 계민카간(啓民可汗, Yami Kaghan)의 셋째 아들이다.

 

이 힐리 카간은 돌궐의 말갈살(莫賀咄設, 막하돌설, 말골군장, Baghatur Shar)로 통치자의 길로 들어선 인물이자, 동돌궐의 마지막 카간이다. 당 무덕(武德) 3(620)에 손위 형 출뤄 카간(處羅可汗)이 사망하면서 일릭 카간으로 즉위했다가 당 정관 4(630) 이정의 공격을 받아 사로잡혀 항복했다. 이로써 동돌궐은 일시적으로 멸망했다. 

 

▲ 고구려가 돌궐과 교통하고 있던 사실을 뒷받침하는 개소문 시절 “서돌궐” 지역,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의 아프라시압 벽화.     © 편집부

 

2. 나라 때 고구려와 동돌궐의 친선관계

<수서> [돌궐전]<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양왕조]는 계민카간(啓民可汗) 이 고구려 사신과 자기 장막 안에서 만났다. 이 때 불시에 방문한 수 양제가 이를 보고 돌궐과 고구려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하였다.

 

 

3. 때 보장왕의 손자 고려왕 막리지 고문간(高麗王 莫離支 高文簡)”과 동돌궐 힐리카간의 손자인 바가투르(默啜, 묵철)카간의 딸 아시나 부인과의 혼인

이와 같이 수나라와 우여곡절을 거친 고구려는 수 문제 양견의 동서였던 당 고조 이연이 세운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공격에 패배하여 고려의 옛 왕가(高麗舊戶) 중 한 지파는 <구당서 (舊唐書)>가 전한 바대로 돌궐(突厥, Turkistan) 로 들어갔다. 그렇다면 돌궐로 들어간 고씨군장(高氏君長)의 가문과 그 속민들은 그 후 과연 어디로 갔을까?

 

4. “요서군왕국(遼西郡王國)” 국왕인 고려왕 막리지 고문간(高麗王 莫離支 高文簡)”과 그 왕비인 아시나 부인(阿史那 夫人)”

보장왕 고장(高藏)의 아들, 손자 가문은 668년 이후 돌궐로 들어간 것이 확실하다. 동돌궐의 힐리 카간(頡利可汗)과 이 가문이 화친관계를 맺은 것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한 사례는 그 성씨와 칭호로 보아 그의 손자로 추정되는 고려왕 막리지 고문간(高麗王 莫離支 高文簡)”이 고구려가 망한 지 49년이 지나고 이미 발해마저 건국된 지 17년 후인 715년 동돌궐 힐리 카간(頡利可汗)의 손자 뻘인 바가투르 카간 (默啜, 묵철)의 딸 아시나 부인(阿史那夫人, Ashina Khatun)을 그 아내로 하여 함께 요서(遼西)로 돌아온 것으로 보아도 확인된다.

 

바가투르 카간(默啜, 묵철)은 그 유명한 빌게 카간(Bilge Kağan)과 퀼테긴(Kül Tigin, 684~731)의 작은 아버지이다. 그러므로 아시나 부인은 이 둘과 4촌 형제자매다. 고려왕 막리지 고문간과 그 부인은 각각 당나라에서 요서군왕(遼西郡王)과 그 왕비인 요서부인(遼西夫人)으로 책봉 받아 요동과 한강 이북의 조선반도에 건설된 독립국 발해(震國, 渤海)와 나란히 반독립국을 이루었다.

 

 

5. “통일신라는 존재하지 않고, 조선민족의 3조시대와 4국시대가 존재

이처럼 고구려가 망한 지 49년이 지난 715년에 요서지방으로 돌아온 고려왕 막리지 고문간(高麗王 莫離支 高文簡)”의 예를 볼 때, 고구려 왕족은 바로 고구려 구토 그 자리에 698년에 세워진 진국(震國, 발해)과 요서군왕국(遼西郡王國, 715~? *이른바 소고구려”)이라는 2개의 나라를 건설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기 우리 조선민족은 남의 신라(新羅), 북의 발해-고려(渤海-高麗), 서북의 요서군왕국(요녕골 및 하북골)3개국을 이루고 살던 조선민족의 동··3조시대의 역사이다.

 

이후 765년에 오늘날 지나대륙의 요서(遼西), 하북(河北), 산동(山東)과 하남(河南) ()까지 걸쳐 고구려 유민 출신의 장군 이정기(李正己, 732~781)와 그 손자 이사도(李師道, ?~819) 일가가 세운 제국(齊國, 765~819)까지 끌어 안아보자. 그러면 이 시대는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우리 역사는 이른 바 ·북국(신라-발해) 시대가 아니라, 조선민족의 동···4국 시대이다! 

 

▲ 괵투르크 칸국 (𐰜𐰇𐰛:𐱅𐰇𐰼𐰰 Kök Türük; 突厥汗国 Göktürk Khaganate)-552–659 및 682–744년 사이 돌궐한국 판도     © 편집부

 

 

6. 신라계 사학자들이 우리역사를 왜곡한 통일신라는 존재한 적 없는 허구!

본격적으로 고구려와 돌궐관계를 보기 전에 우선 우리 역사관을 잠시 돌아보자. 세간에 만연한 이른바 통일신라라는 개념에 관한 것이다. 고려를 세운 왕건에 관해 역사서들은 자주 통일신라시대” “개성호족이었다는 식으로 가르친 것을 기억한다. 과연 통일신라시기는 있었던가? 아니다! “통일신라는 전혀 존재한 적이 없는 허구의 시대이다.

 

우선 3국 중 백제를 보자.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660년에 망했다. 그러나, 백제가 정말 망했을까?

아니다. 백제가 망하자, 비록 당의 허수아비로서나마 백제왕자 부여융(扶餘隆)을 수장으로 하는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 665~677)가 들어섰다. 이 땅이 아직 신라 땅이 된 것은 아니다.

 

이어서 당과 신라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668년에 망했다. 그러나, 고구려가 정말 이 때 망했을까?

아니다. 당이 고구려를 붕괴시킨 직후 옛 고구려 땅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 676~705/756, 소고구려)를 설치했다. 그러나 이 땅의 반당, 반 신라 운동 때문에 결국 보장왕, 그 손자, 아들 등이 통치하도록 조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 땅도 비록 고구려왕가를 빌린 당나라의 총독부가 설치된 것이라고는 볼 수는 있지만, 결코 통일신라땅이 된 것은 아니다.

 

한편 옛 고구려 남부에서는 보장왕 셋째 아들 안승(安勝)이 이미 668년에서 6년 후인 674년에 전북 익산을 근거로 보덕국(報德國, 674683)을 세워 고구려를 이었다. 이 땅 역시 아직 신라 땅이 된 것은 아니다. 이 보덕국의 협조로 당을 몰아낸 신라는 683년에 보덕국왕(報德國王) 안승을 속임수로 경주로 소환하고 그에게 소판(씨족의 왕, 문중장)”으로 자리를 주고 병합하였다. 남방의 고구려 보덕국이 사라진 것이다.

 

이 사실을 보면 신라는 오늘날 전북 익산을 중심으로 한 충청도 등 제2고구려 보덕국의 땅을 병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땅은 원래 백제 땅이었으나 고구려와 백제가 서로 빼앗고 빼앗기던 땅이다. 이른 바 삼국통일을 통해 신라의 땅은 한 치도 불어 난 것이 없다!

 

그로부터 15년 만인 698년에는 대조영 일가에 의해 오늘날 서울의 강북(江北)을 포함하여 거의 고구려 전토에 발해(698~926)가 건국되었다. 이 땅이 신라 땅이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렇게 세워진 발해는 이 698년 이래 신라와 남·북으로 맞서며 또 당나라(618~907)에 맞서서 당나라가 망한 때보다 더 이후인 926년까지 228년간이나 고구려 전토를 다스렸다. 이 땅은 처음부터 935년 신라 멸망 시까지 단 한 번도 신라 땅이 된 적이 없다.

 

668년 고구려가 망한 뒤 발해와 신라로 나뉘어 산지 229년이 지난 뒤, 892년 이래 발해 이남의 신라 땅이 갈라져 이른바 후삼국(後三國, 892~936)”으로 나뉘었다. 북의 발해를 끌어안아 세어본다면 우리 조선민족의 4국 시대이다. 왜 우리 역사에서 존재하지도 않은 통일신라라는 허구 속에서 발해는 빠져 있는가? 고구려-발해 땅은 단 한 번도 신라 땅이 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7. 신라계 사학자들이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여 지어낸 허구의 시대 통일신라대신 조선반도 내 진정한 통일시대는 474년간 존재한 통일고려

고구려를 이은 발해가 약 220년 간 북에서 건재한 이 시기에 남쪽의 세 나라는 고구려 왕손의 가닥족속으로 고구려 회복을 주지로 한 왕건이 자기 주군이었던 궁예의 “()고구려-마진-태봉을 궁정혁명으로 무너뜨리고 918년 고려를 건국함에 따라 점차 다시 통일되었다. 중요한 사실은 []고구려를 세운 궁예는 보장왕의 외손이었고, 왕건도 발해왕가의 외손이었다. [전원철 저 <고구려-발해인 칭기스 칸 참조>] 이 당시 ()고구려와 고려가 신라 땅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북의 진국-발해-고려의 오늘날 만주지역 영토는 궁예의 []고구려를 기반으로 왕건이 고려를 세운 918년에서 8년 후인 926조선(朝鮮)의 유풍을 이어 받았다(<요사>)졸루지 아보키(Joluji Aboki: 야율아보기, 耶律阿 保機, 朝鮮-乞哥/大賀-)가 세운 거란(契丹, 코루지 키타이 구르, Koruji Kitay Gur, 곧 고려인 걸씨 고려)에게 무너졌고, 오늘의 북한 땅 지역 발해 땅은 생여진 (生女眞, 독립적인 주션[Jurchen, 朝鮮]”)으로 남았다. 다시 말해 이 때에도 발해 땅은 일부는 거란 땅이 되었지만, 일부는 독립적 조선(女眞, Jurchen, 朝鮮)으로 남아 단 한 번도 신라 땅이 된 적이 없다.

 

그러나 남의 후삼국 중 신라도 발해가 무너진 지 9년 만인 935년에 마침내 고구려-발해 왕가의 가닥족속 고려 태조 왕건에게 경순왕이 나라를 들고 항복해 옴으로서 끝장이 났다. 그러므로 통일신라는 한 번도 전혀 존재한 적이 없는 허구의 시대이다!

 

오히려 이 결과 고구려 계 왕건이 통일고려(Unified Korea, 918~1392)”를 지어 이후 조선 창건까지 474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이어졌다. ‘4 세대 고구려(高句 麗)’통일된 고려(高麗) 왕조인 것이다. 통일신라는 우리 강단사학계 곧 대학 교수들- 및 이들로 구성된 국사편찬위원회 등이 스스로 우리 역사를 왜곡하여 지어낸 허구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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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27 [18:22]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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