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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의 굴레와 분서사건(焚書事件)의 음모 (7부)
남사당패는 굶주림이 탄생시킨 예인(藝人) 집단
 
한문수 성균관 석존교육원 교수 기사입력  2019/11/08 [18:28]

. 천민의 굴레와 분서사건(焚書事件)의 음모

 

1. 남사당패는 굶주림이 탄생시킨 예인(藝人) 집단

 

사대(事大)에 기인했던 절대자와 사대부들의 입장에서 보면 막일을 하던 이들의 모습이 천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을 터이고 이를 이용, 천민의 굴레를 씌우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었다. 이로써 고조선과의 단절을 통해 역사를 뭉개버리고, 변란방지와 함께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남사당패는 조선 말기쯤에 생겨났다. 굶주린 배를 구걸하기 위해 여사당(女寺黨)을 모방하여 남자들로 구성된 떠돌이 예인 집단이다. 규모가 늘어나면서 조직화되고, 50명 내외의 많은 인원이 뒤따랐다. 우두머리를 꼭두쇠라 하고 풍물, 버나(대접) 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보기(탈놀이), 덜미(꼭두각시놀음) 등 여러 가지 놀이를 세분화하여 조직을 유지했다. 이 외에 대광대패, 솟대쟁이패, 사당패, 걸립패, 중구매 등이 있었으나, 남사당패가 규모면에서 제일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일 지방마다 사당골이란 지명이 생긴 것은 이와 연계되며 한자를 빌어 寺黨/ 社黨‘/ 社堂으로 적기도 한다. 

 

▲ (좌)남사당놀이, 모동놀이 (우)김홍도 그림 무동의 춤     © 편집부

 

2. 줄타기, 탈춤은 고난도의 훈련자들 만이 할 수 있는 기예이다

 

이들의 전승 기예는 백정으로 명칭 변경된 타타르인들, 즉 고조선의 기예가 고스라니 전승된 사실적 관계로 보는 것은 이들의 기예가 범인이 할 수 없는 높은 기능에서 찾을 수 있음이다. 수초를 따라 흐르며, 버들고리를 만들어 팔고 악기와 연주, , 기마술, 재주넘기, 창칼쓰기, 줄타기, 탈춤 등은 고난도의 훈련자들 만이 할 수 있는 기예이다. 격변하는 전장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도(符都)의 나라에서는 모두가 한바탕 어우러짐으로 천손민족임을 자랑스러워했다. 하늘을 경외하고 서로가 창()과 가무(歌舞)를 뽑냈다. (), 굴욕도 없었다. 가면놀이와 북소리 "얼씨구" "좋다" 추임새만 이어졌다.

 

우리 민족이 한 판 굿거리에 흥이 더함은 천손의 유전인자가 짙게 배어 있음이다.

농악(農樂)의 원 말이 굿이다. 파종과 추수를 축복하고 그 해 농가의 안녕을 신에게 기원하기 위해 한바탕 어우러짐으로 춤과 노래가 자연스럽게 뒤따랐을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농악은 민속놀이가 포함된 음악으로 고을마다 고유한 특색을 띠고 다채롭게 변화를 거듭했다. 

 

더 푸르고, 더 차가운 인자가 일만 년 면면히 이어 옴이 아닌가. "청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 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에서 나왔지만 물보다 더 차다(靑出於藍 靑於藍 氷水爲之 寒於水)" 라는 순자(荀子)의 말을 새겨 볼 필요가 있음이다.

 

3. 남아공의 사물놀이, 동이문화 각인

 

시간의 흐름과 인간을 연결시키는 매개체는 다름 아닌 노래(이야기)이다. 그래서 개인적이건 집단적이건 이야기는 인간의 삶을 구성하고 더 나아가 역사를 구성하기 때문에 노래를 통해 인간은 정체성을 얻는다고 한다. 폭압 속에서 숨겨 사라져 가는 역사를 몸짓으로 표현해 내는 춤과 노래는 그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함이리라.

 

지구의 남단 아프리카 남아공 월드컵 현장에서 치우천황을 상징하는 붉은 악마의 포효가 일어났다. 사물놀이로 전 세계를 진동시켜 동이문화를 각인시켰다. 설사 그들이 한민족의 처절한 고통과 아픔을 실재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는 천손의 정체성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리라 생각된다.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에 전승되는 민속놀이인 ()장군놀이에서 백정의 탈로 한바탕 굿판을 벌이고 있다. 추쇄되어 작별도, 하소연도 못한 체 처참하게 죽어 갔을 백정들, 그 옛 사람들은 없건만 지금 그 사람들은 탈속에 서서 지금도 오열하고 있음이다. 조선의 탈은 해학이 아닌 슬픔의 산물이다. 

 

▲ 마케토니아에 살아 있는 ‘강강수월래’ 터    ©편집부

5백 년 동안 행동이, 생각마져도 족쇄로 채워져 치유할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이유 있는 분노 또한 가슴에 담아야 했다. 삶의 극한 언어가 죽음임을 알고서도 죽을 수 없어 하늘만 보아야 했다. 고조선의 후예이며 우리 모두의 가족인 것을, 누가 함부로 그들을 백정 놈이라 부르는가. 오히려 쇠고기를 먹는 당신 또한 간접 살생자일 것이다.

천손민족의 맥인 고조선을 부정하고 비하하는 현대판 신종 사대부들로 인해 백정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가 가슴을 시리게 한다. 어디서 보았던가? 차라리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금지된 사회였다면...

 

4. 새 고려사, 시비(是非)를 알까 두렵다

 

고려사는 60여 년의 세월을 건너 단종 2년인 14541013일 인간(印刊)된다. 고려전사(高麗全史)는 출간되면 사람들이 모두 시비(是非)를 알까 두려워하여 다만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만을 인간(印刊)하여 반사(頒賜)하고, 고려전사는 조금 인간하여 다만 내부(內府)에만 간직하였습니다.”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문명의 나라 고조선과 고려 역사를 철저히 지우고 깔아 뭉게 버린 고려의 사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음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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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08 [18:28]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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