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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와 청나라 황실의 성은 신라 김씨 (4/4부)
우리와 동족인 청나라 때 지금의 중국영토가 확정된다. 한족은 청에게 감사해야...
 
성훈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2/08/02 [16:44]
 
금 태조 아골타는 신라 김(金)씨의 후예로 마의태자의 후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아골타의 동생 태종은 송나라 수도인 개봉으로 진격하여 휘종과 흠종을 사로잡는다. 송의 두 황제는 금 태종 앞에 무릎을 꿇는다. 태종은 휘종에게 혼덕공(昏德公), 흠종에게 중혼후(重昏侯)의 칭호를 내렸다. 한마디로 엄청난 치욕이었다.

그런 금나라는 몽고의 원나라에게 망하고, 원나라는 한족의 명나라에게 중원을 내준다.
여진족은 명나라에 밀려 만주에서 부족 형태로 떠돌아 다니다, 드디어 영웅 누루하치가 나타나 후금(後金)이라는 나라를 세운다. 누루하치의 아들 태종 후앙타이지(皇太極)는 국호를 대청(大淸)으로 바꾸고, 중원을 도모하기 전 조선반도를 공격해 항복을 받는다. 그러나 중원정벌이라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고 아들 순치제가 즉위한다.

명나라가 이자성의 농민반란으로 망하자, 산해관을 지키던 명나라 장수 오삼계가 청나라에 투항을 해 청나라는 북경으로 진군해 도성을 점령한다. 명나라가 통치하던 중원 땅이 청나라 수중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청나라는 같은 계열의 민족인 내몽고, 티베트, 위구르 등을 청나라로 복속시켜 지금의 중국 땅을 확정한다. 청나라는 1911년 신해혁명으로 문을 닫는다.

▲ 고대 한족의 영토는 섬서성 또는 하남성 일대 뿐이다. 이로한 판도는 명나라 이전까지 이어진다. 현 중국 영토는 청나라 때 확정되는데, 명나라     ©편집부

(결언) 우리 민족은 대대로 중국대륙을 경영하고 있었다. 배달국과 단군조선을 거쳐, 삼국(고구려.백제.신라)시대와 남북국(후기신라,대진국)시대를 거칠 때도 대륙은 우리 민족의 주 활동무대였다. 고려 때도 대륙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단군조선의 적장자인 고구려는 대진국(발해)으로 발전하고, 대진국의 땅은 요나라가 접수하고, 요나라는 금나라에게 망하고, 금나라는 원나라에게 망하게 된다. 몽고(원)는 명나라에게 중원을 내주고 북쪽으로 쫓겨간다. 이 때 중국 대륙이 잠시 한족에게 넘어갔으나, 만주와 내몽고, 티베트와 위구르는 명나라 땅이 아니었다.
참고로 백제와 신라는 후기신라로 합쳐졌다가 고려로 어어지고 조선왕조로 이어진다.

현재 중국은 우리와 같은 민족계열인 청나라 덕택에 지금의 넓은 영토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고대 중국의 영토는 명나라 이전까지 섬서성이나 하남성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통일제국이었던 당나라와 수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말로 보잘것 없었던 한족의 명나라가 넓은 중원 땅을 차지한 이유도 다 아시아대륙을 지배했던 원나라 덕분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중국은 한족(漢族)만의 역사를 고집하다가는 지금의 땅과 국민을 못 지킨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그래서 한족 이외 소수민족(?)의 역사도 자기네 역사로 집어넣어야 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인 것이다.

동북공정의 핵심은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논리이다.
즉 이 말은 중국대륙을 경영했던 고구려와 대진국(발해)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의 표시인 것이다.
지금까지 (4부)에 걸친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는 신라의 후예" 시리즈는
이러한 중국의 동북공정이 얼마나 허황된 이론인가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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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8/02 [16:44]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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